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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눈물은 닦지 마라
조연희 지음, 원은희 그림 / 쌤앤파커스 / 2021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연희] 흐르는 눈물은 닦지 마라
주황색 표지의 선명한 눈물자국에 자꾸 마음에 걸렸다. 이 책은 가난했던 1970년~1990년에 서울 산동네 서민 아파트에서 한 여성 시인이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을 보내며 느꼈던 감정들과 인생에 대한 기록을 시와 산문으로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기도 전에 그녀의 삶이 그리 녹록치 않음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표지 속의 눈물 때문이리라.
지지리도 가난했던 1970년에 저자는 서울 산동네 서민 아파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그 시절을 거쳐 1990년에 대학생이 되어서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에세이 형식을 띄고 있지만 시와 사실에 상상을 보탠 성장소설이다. 너무나 가슴 아프고 힘든 시기를 거친 그녀의 이야기 사이 사이에는 위로를 건네는 그림들이 삽입되어 있다.
직업군인이었던 저자의 아버지는 군수물자를 빼돌린 부하 때문에 전역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도 군무원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이어가지만 정리해고가 된 후 파친코(슬롯머신)에 빠져 전 재산을 탕진하게 되고 저자의 어머니는 이를 악물고 돈을 벌어 세 자매를 키운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들은 감수성 깊은 소녀가 보기에는 너무 절망스러운 현실이엇을 거다. 게다가 아버지가 은행에서 융자 받은 저자와 언니의 학비까지 파친코 기계에 쳐넣을 때 힘으로는 도저히 당할 수 없었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눈물을 흘리며 증오의 눈빛으로 노려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아버지의 일탈과 가난은 폭력이었던 거다. 그 시절 가난과 폭력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저항은 '응시'하는 거였다는 고백에 자꾸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녀의 먹먹한 고백 옆에 실린 그림. 왠지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나무 위의 노란 새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 그 시절 너무 힘들었던 그녀와 어머니를 위로해주는 듯하다.
그리고 고난하고 힘들었던 처절한 응시의 기록과 같은 산문과 함께 저자가 직접 적은 시들도 함께 수록 되어 있다. 산문과 함께 수록된 시들은 그 시절 그녀의 살모가 감정들을 너무 잘 담고 있어서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하는데 특히, 시 <워킹 푸어>는 그 시절 너무나 힘들었던 저자의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 더욱 먹먹하게 만든다.
벗어나기 힘든 가난과 가족이기에 더 날카로웠던 상처들. 그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의 이야기는 암울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공감이 된다. 그 시절에 많은 이들이 아마 이토록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처절하도록 아픈 이야기들이지만 왠지 동정이나 연민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 시절 그 시대에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기에 지금의 모든 것이 넉넉하고 빨리 변하는 시대가 왔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들 덕분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나의 부모님들도 고된 삶을 사셨기에, 지금의 내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이토록 편안함이 감사해진다.
선생님의 호출로 학교에 오게 된 저자의 어머니. 파란 슬리퍼에 몸빼 바지를 입은 어머니가 부끄러웠지만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신발가게에 들려 하얀 운동화를 사 주신다. 그리고 저자는 엄마의 파란 슬리퍼를 자신이 신고 엄마에게 새 운동화를 신긴다. 그렇게 서로를 기댄 채 집으로 걸어가는 모녀. 상상만해도 자꾸 눈물이 나는 대목이다.
이 책은 산문과 시가 섞여 저자의 어린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서를 쓰고 삭발까지 시도하였던 저자가 마음을 고쳐 먹고서 작가가 되기를 결심하고 문예창작과에 진학한다. 여대생이 된 저자의 앞에는 가난보다 더 위험한 독재와 폭력이 기다리고 있다. 이른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최류탄이 난무하는 거리. 그리고 그 속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문학을 이야기하고 불의와 싸웠던 그 젊음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이 다 처절하고 암울하다. 그 시절 자체가 너무나 암울하고 처절했기 때문이다. 그런 시절을 보내온 여성 시인인 저자의 응시를 담은 이 책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삶이란 진정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처절한 시간을 거쳐온 그녀의 다른 이야기들도 궁금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