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듀얼 - 전건우 장편소설
전건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건우 작가가 참여한 공포 소설 단편 모음집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을 읽던 중 작가의 신작 소식을 접했다. 출판사 래빗홀에서 나온 장편소설 ‘듀얼’은 죽음을 넘어서까지 연쇄살인마를 쫓는 프로파일러의 이야기다.

주인공 최승재는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리퍼를 쫓는 프로파일러로 집요한 수사 끝에 리퍼를 찾지만 마주한 순간 모종의 사건으로 두 사람 다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후 시작된다.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고 작가의 단편을 재밌게 읽어 바로 다음 책으로 선택했다. 환생이란 판타지적 설정이 극의 주요 흐름을 주도하지만 전반적으로 범죄 스릴러 장르에 충실한 편이다.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살인 도구와 현장을 직접 설계하는 리퍼의 범행수법은 2004년에 등장해 20년 가까이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영화 ‘쏘우’의 살인마 직쏘를 떠올리게 한다.

추격전은 군더더기 없이 진행 되 답답함이 없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촘촘하지 않아 어설프게 보이기도 한다. 특히 극 전체를 보면 이질적일 수 있는 환생이란 소재를 대담하게 갖고 온 시도는 참 좋았는데 매끄럽게 녹아들진 못했다. 전건우 작가의 글은 ‘듀얼’까지 포함해 3편 읽었는데 현재까진 스릴러보단 공포 장르에서 더 노련하단 인상을 받았다. 다음은 공포 소설로 만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앤드 앤솔러지
전건우 외 지음 / &(앤드)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은 출판사 넥서스에서 만든 문학브랜드 앤드의 두 번째 단편 모음집이다. 현재까지 3권의 책이 출판된 이 시리즈물은 각 권 마다 ‘23살’, ‘집’, ‘메타버스’라는 주제로 여러 작가들의 단편을 선보이고 있다. 출간 순으로 하면 ‘이상한 나라의 스물 셋’이 가장 먼저 나오고,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메타버스의 유령’ 순인데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으로 처음 접하게 됐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공포라는 장르와 제목 때문이었다. 익숙해서 당연시되는 것들을 뒤트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집과 공포라니 보자마자 관심이 갔다.

책은 두려움과 불안을 일으키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주제로 4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단편인 전건우 작가의 ‘누군가 살았던 집’은 ‘내가 이사 오기 전 이 집에서는 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다’는 데서 느낄 수 있는 불안을 다룬다. 새로 지은 건물로 입주하는 게 아닌 이상 우리는 모두 타인이 살았던 공간에서 살게 된다. 알 수 없는 과거에 괜한 두려움을 느끼는 건 한국 뿐만은 아닌지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벽에 숨겨져 있던 시체’ 괴담을 접할 수 있다. 이유 없이 두려워지진 않는다. 원인 모를 악취, 얼룩과 같은 과거의 흔적들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이 이어질수록 최악의 경우가 뇌리를 파고든다. 신축이 아닌 이상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은 모두 각자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평범함이 ‘누군가 살았던 집’을 더 공포스럽게 만든다.

정명섭 작가의 ‘죽은 집’은 특수청소를 업으로 삼은 주인공들을 내세워 고독사와 전세 사기라는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단편의 제목은 문자 그대로 사람이 죽은 집을 표현하는 말로도 쓰이지만 작가는 누군가의 이기적인 욕망에 의해 하루 아침에 내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집도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결말은 지극히 소설적이지만 그래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세 번째 단편인 정보라 작가의 ‘반송 사유’는 수록작 중 가장 불가사의한 공포물로 재미있게 읽었다.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이메일만 기술하는 작법도 흥미로웠다. 인물들에게 무슨 사건이 벌어졌는지 독자는 이메일이 발송된 시간, 내용을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고 제한된 단서들이 퍼즐처럼 맞춰질 때 서늘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단편집의 마지막 문을 닫는 정해연 작가의 ‘그렇게 살아간다’는 딸의 시점에서 엄마를 의심하게 만들며 습자지 위에서 퍼지는 먹물처럼 불안을 키운다. 장기 투병환자 가족의 삶을 다룬 이 마지막 단편의 서술방식은 공포 장르적이지만 장르를 걷어내 보면 꽤 서정적이다. 섬뜩하다가 안타까워진다. 그래서 긴 여운을 남긴다.

네 개의 단편 모두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안전가옥 오리지널 27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르 소설을 좋아한다. 장르물은 가리지 않고 읽는데 그중에서도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는 인생의 동반자 같다. 취침 시간이 지나 억지로 눕혀진 이불 위에서 실눈을 뜨고 몰래 훔쳐보던 토요명화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셋 중 하나였다. ‘카피캣(1995)’, ‘세븐(1995)’, ‘도망자(1993)’, ‘컨스피러시(1997)’ 등등 어린 시절 영화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던 영화들은 죄다 무언가를 쫓고 있다.

현실에선 굳이 돈주고 스릴감을 경험하는 게 0.1%도 이해가 안되지만 숨겨진 음모나 잔혹한 살인마를 쫓는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느끼는 스릴감은 그 어떤 놀이보다 즐거웠다. 이런 취향은 책으로도 이어져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 비채의 모중석스릴러클럽 등 출판사에서 기획하는 장르물 시리즈는 시리즈의 존속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성실히 챙겨 읽었다. 안전가옥의 책들은 뒤늦게 알게 됐는데 출간한 책 목록들을 보는 내내 잭팟이 터진 기분이었다. 밀린 방학숙제를 하듯 안전가옥의 책들을 읽어가다 당연한 수순으로 조예은 작가의 ‘칵테일, 러브, 좀비’를 접했고, 강렬하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사회 고발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예의와 재미를 잃지 않는 작가의 필력에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됐다.

다음은 어떤 이야길 들고 나타날까 궁금했는데 도끼를 든 테디베어라니. 표지만 보고도 속에 담겨 있을 이야기에 흥미가 갔다. 이야기는 가공의 도시인 ‘야무시’에서 일어난 독극물 테러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화영은 복수를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다 위기에 빠지고 생사의 고비 앞에서 테디베어를 만난다. 화영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이야기는 테디베어의 등장과 함께 그에게 바턴을 넘기는데 그 속에는 화영과 같이 독극물 테러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도화가 있다. 화영은 복수를, 도화는 자신이 왜 곰인형으로 변했는지 찾기 위해 서로 돕기로 하는데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서로가 더 상대의 사건에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이사떡으로 포장한 독극물 테러와 화영이 복수를 위해 불법까지 불사하는 도입부는 범죄스릴러, 추리물로 보이지만 도끼를 든 테디베어가 나타나는 순간 장르의 변주를 일으킨다. 엉성하면 이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도임에도 염려가 무색할 만큼 조화롭게 이야길 진행해간다. 다음 챕터가 궁금해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책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화영이 독극물 테러 사건과 사건에 얽힌 범죄들을 추리해가는 과정은 예상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다음이 예측된다 하더라도 재미가 반감되진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호러 장르적 구성이 두드러지는데 공포라는 장치 속에 사회고발적인 내용을 담아 여운을 남긴다. 이야기에 귀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 소설이 공포물인 이유에는 현실적인 공포도 있다. 엄마와 단 둘이 살던 화영이 유일한 보호자였던 엄마를 잃고 세상 속에 표류하며 겪는 일들은 하나같이 너무 현실적이다. 당장 매일의 먹고 사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십대 소녀에겐 귀신보다 더 끔찍한 위협이 지천에 널려 있다.

책의 홍보문구에 적힌대로 ‘여름 밤 괴랄하고 사랑스러운 호러 청춘 로맨스’도 재미 중 하나다. 여름 휴가철 동행 도서로 최고 적합한 책이다. 장르소설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읽어볼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웰의 장미 -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물 농장이나 ‘1984’는 학교 문턱을 잠깐이라도 드나든 사람들에겐 운수 좋은 날만큼 익숙한 소설이다. 실제로 읽었는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두 소설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소설이 알려진 것에 비해 작가 조지 오웰은 두 소설의 저자라는 사실 외에 바로 떠오르는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동했다. 장미와 조지 오웰이라는 조합도, 글을 쓴 작가가 리베카 솔닛이라는 점 모두 읽기 전까진 대체 어떤 글을 읽게 될지 가늠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조지 오웰이 누구인지 설명한다면 답은 간단하다. 소설 동물 농장‘1984’의 저자. 그 외 다른 어떤 수식이 필요할까. 다른 말을 덧붙이지도 않아도 될 만큼 유명하고 유명세가 당연시되어도 좋은 걸작을 집필한 작가에게 걸 맞는 명료한 소개라고 생각했다. ‘오웰의 장미를 읽기 전까진. 제목에서 읽을 수 있듯이 리베카 솔닛은 전체주의의 위험성과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를 주제로 하면서 우리를 그의 펜촉이 아닌 정원으로, 그가 심었던 장미 앞으로 이끈다.

 

두 번의 세계 대전과 그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와도 같은 러시아혁명과 아일랜드독립전쟁, 스페인내전까지 조지 오웰의 삶은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그가 목도한 세상은 참혹한 곳이었고, 폐해를 딛고 선 그의 글은 사회적 문제들을 정 조준한 날카로운 칼과도 같았지만 동시에 그의 손에는 언제나 장미가 들려 있었다. 오웰은, 조금의 비약을 보탠다면 선행과 악행을 얼마나 했던지 간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행위가 앞선 선악의 행위보다 세상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라 평만큼 자연애호가였다.

 

디스토피아적인 두 대표작은 그를 낙관하는 법이 없는 비관주의자로 보이게도 하지만 솔닛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장미 정원을 시작으로 솔닛이 찾아 떠난 오웰은 곱게 피어난 꽃봉오리에 기쁨을 느끼고 무용한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줄 알던 사람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단순한 작가 전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웰의 장미가 훌륭한 점은 단순히 오웰의 알려지지 않은 면을 찾아내서가 아니다. ‘장미라는 소재를 통해 오웰의 글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중심으로 전개하면서 인종차별, 국력에 따른 불평등하고 열악한 노동환경, 환경문제까지 다방면의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기 때문이다. 모든 챕터들이 갸웃거리게 할 만큼 뜬금없는 이야기로 시작해 천연덕스럽게 오웰로 돌아간다. 기초 지식이 부족해 다소 어려운 내용도 있었지만 유려한 전개로 저도 모르게 감탄하며 끝까지 읽게 만든다.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더 깊이 이해하고자 다시 책을 펼치게 만드는 책이다.

 

전쟁터와 탄생과 진창길을, 또는 냄새를-오웰은 그의 책들에 묘사된 악취로 유명해지게 된다-묘사할 수는 있지만, 그래 봤자 그것은 진짜 피도, 진흙도, 삶은 양배추도 아닌, 백지 위의 검은 글자들일 뿐이다. 정원은 글쓰기의 육체 없는 불확실성과는 정반대인 것을 제공한다. - P68

뜻깊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옛 친구를 다시 방문하는 것과도 같다. 다시 만날 때면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깨닫게 되고, 자신이 그렇게 달라졌기 때문에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 다시 만나보면, 어떤 책들은 더 자라고 어떤 책들은 시들어버린다. 묻는 질문이 달라지기 때문에 돌아오는 대답도 달라지는 것이다. - P3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만의 꿈들 - 장소, 풍경,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양미래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만의 꿈들>1994년도에 출간된 책으로 20년도 더 지나 2022년이 되어서야 한국에 소개됐다. 이 책은 솔닛이 네바다주 핵실험장과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란 두 장소를 통해 환경 문제와 자연과의 공생에 대해 고찰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솔닛은 서문에서 네바다 핵실험장은 글쓰기를,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희망을 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썼다. 글을 따라가면서 저자가 말한 그대로 두 장소를 통해 그가 받아들이고 깨우친 가르침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새삼 놀라웠다. 그의 말처럼 죽음의 장소는 새로운 것을 낳는 풍경이기도 했다.

 

1부에서는 핵실험장을 통해 국가 안보라는 목적으로 핵을 사용한다면 인간의 삶의 터전인 지구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네바다 핵실험장은 길에서 자주 접해 알고 있지만 명칭만으로는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정확히 모르는 간판 같은 단어의 조합이었다. 네바다주는 라스베가스라는 도시로, 핵실험장은 영화 힐즈 아이즈나 인디아나 존스3편의 장면들로 기억했다.

 

히로시마나 체르노빌은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 되었고, 후쿠시마의 재난은 솔직히 말하자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방사능 낙진이란 단어가 갖는 위력은 벌거벗은 세계사나 세계 다크 투어의 한 에피소드 정도로 한시적이었다.

 

솔닛은 1부의 네바다 핵실험장을 주제로는 무엇보다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핵실험의 파장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긴 시간 지속되는지에 대해 현실감을 갖게 만든다.

 

네바다의 사막을 걸으며 자연 속에서 발견한 지식으로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나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 문제까지 통찰한다. 한 예로 그 앞에서 양초로 달려드는 나방은 핵실험 책임자들과 방관자들이 핵실험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로 이어진다.

 

핵실험이 자연을, 결국엔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은 24000년이라는 플루토늄의 반감기처럼 멀게 느껴져 당장엔 없는 사실처럼 취급된다. 단어가 실제로 갖는 의미와 체감하는 정도의 차이에 대해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은 그의 훌륭한 저작 <시간과 물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구온난화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를 속속들이 감지할 수 있다면 이 단어는 아이들이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와 같은 반응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야 한다. 새로운 단어와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

 

<야만의 꿈> 1부는 핵실험이란 단어와 개념을 이해하는데 걸릴 시간의 길이를 단축시키고 우리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한다.

 

2부에서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통해 자연을 보존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단순히 자연보호를 말하는 게 아니라 장소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힌 미국의 역사를 면밀히 파고들어 더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로 그려냈다. 국립공원 조성으로 자연을 보호하는 일면만 보고 있던 이들에게 같은 이유로 고향에서, 삶의 터전에서 내몰린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는 식이다. 낯설어 어렵게 느껴지는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주제와 동떨어진 같으면서도 결국 중심에 가 닿는다. 눈을 감고 여기저기 만져보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더듬었던 대상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과 같은 독서였다. 솔닛이 말했듯 이야기는 우리가 그걸 들을 준비가 될 때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내게 희망이란 낙관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낙관주의는 비관주의와 마찬가지로 미래가 예측 가능하고 개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다. 내게 희망이란 미래의 인지 불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며, 미래에 나타나 결과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그 결과에 개입할 수도 있다는) 감각이다. 어쩌면 희망이란 나만의 불확실성 원칙일지도 모른다. - P23

내 생각에 네바다 핵실험장에서의 핵폭발은 실험보다는 리허설에 가까웠다. (…) 군비경쟁에서 미국 측의 군비를 관리한 물리학자와 관료 들은 바로 그곳에서 세상의 종말을 거듭 리허설하고 있었다. - P34

보통 위대한 깨달음의 산물로 간주되는 국립공원이라는 개념의 탄생은 너무나도 급속히 황폐화하고 변형되는 땅을 아주 일부만이라도 보존하기 위한 시도의 결실이었다. 국립공원은 몇 안되는 장소라도 다른 많은 장소가 맞이한 운명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한 시도, 아름다움이 퇴색된 나머지 장소들로부터 벗어나 일의 풍경과 분리된 여가의 풍경을 지켜내기 위한 시도였다. - P3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