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안전가옥 오리지널 27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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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소설을 좋아한다. 장르물은 가리지 않고 읽는데 그중에서도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는 인생의 동반자 같다. 취침 시간이 지나 억지로 눕혀진 이불 위에서 실눈을 뜨고 몰래 훔쳐보던 토요명화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셋 중 하나였다. ‘카피캣(1995)’, ‘세븐(1995)’, ‘도망자(1993)’, ‘컨스피러시(1997)’ 등등 어린 시절 영화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던 영화들은 죄다 무언가를 쫓고 있다.

현실에선 굳이 돈주고 스릴감을 경험하는 게 0.1%도 이해가 안되지만 숨겨진 음모나 잔혹한 살인마를 쫓는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느끼는 스릴감은 그 어떤 놀이보다 즐거웠다. 이런 취향은 책으로도 이어져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 비채의 모중석스릴러클럽 등 출판사에서 기획하는 장르물 시리즈는 시리즈의 존속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성실히 챙겨 읽었다. 안전가옥의 책들은 뒤늦게 알게 됐는데 출간한 책 목록들을 보는 내내 잭팟이 터진 기분이었다. 밀린 방학숙제를 하듯 안전가옥의 책들을 읽어가다 당연한 수순으로 조예은 작가의 ‘칵테일, 러브, 좀비’를 접했고, 강렬하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사회 고발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예의와 재미를 잃지 않는 작가의 필력에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됐다.

다음은 어떤 이야길 들고 나타날까 궁금했는데 도끼를 든 테디베어라니. 표지만 보고도 속에 담겨 있을 이야기에 흥미가 갔다. 이야기는 가공의 도시인 ‘야무시’에서 일어난 독극물 테러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화영은 복수를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다 위기에 빠지고 생사의 고비 앞에서 테디베어를 만난다. 화영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이야기는 테디베어의 등장과 함께 그에게 바턴을 넘기는데 그 속에는 화영과 같이 독극물 테러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도화가 있다. 화영은 복수를, 도화는 자신이 왜 곰인형으로 변했는지 찾기 위해 서로 돕기로 하는데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서로가 더 상대의 사건에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이사떡으로 포장한 독극물 테러와 화영이 복수를 위해 불법까지 불사하는 도입부는 범죄스릴러, 추리물로 보이지만 도끼를 든 테디베어가 나타나는 순간 장르의 변주를 일으킨다. 엉성하면 이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도임에도 염려가 무색할 만큼 조화롭게 이야길 진행해간다. 다음 챕터가 궁금해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책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화영이 독극물 테러 사건과 사건에 얽힌 범죄들을 추리해가는 과정은 예상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다음이 예측된다 하더라도 재미가 반감되진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호러 장르적 구성이 두드러지는데 공포라는 장치 속에 사회고발적인 내용을 담아 여운을 남긴다. 이야기에 귀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 소설이 공포물인 이유에는 현실적인 공포도 있다. 엄마와 단 둘이 살던 화영이 유일한 보호자였던 엄마를 잃고 세상 속에 표류하며 겪는 일들은 하나같이 너무 현실적이다. 당장 매일의 먹고 사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십대 소녀에겐 귀신보다 더 끔찍한 위협이 지천에 널려 있다.

책의 홍보문구에 적힌대로 ‘여름 밤 괴랄하고 사랑스러운 호러 청춘 로맨스’도 재미 중 하나다. 여름 휴가철 동행 도서로 최고 적합한 책이다. 장르소설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읽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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