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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프라이버시가 있다 ㅣ 초록달팽이 동시집 44
윤현자 지음, 김순영 옮김 / 초록달팽이 / 2026년 6월
평점 :
오랜 시간 시와 시조를 써 온 시인의 동시는 정겹고 구수하면서도 아이처럼 순수하고, 귀엽고, 발랄하다. 그래서일까, 한 편 한 편을 읽다 보면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며 어느새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 동시집은 4부로 나뉘어 있는데, 특히 1부에 실린 「숨구멍」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내 아이의 하루가 떠오른다. 방과 후 학원을 오가며 바쁘게 이어지는 시간들, 그 사이에서 숨을 고르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얼마나 지치고 고단할지 짐작이 되어 마음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문득 내 아이에게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숨구멍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2부의 냉장고 소리를 아빠의 코골이로 바꾸어 놓은 「코골이 냉장고」는 소소한 웃음을 건네고, 달팽이를 의인화하여 존중을 이야기하는 「프라이버시」는 유쾌하면서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정답」에서는 고3 아이의 마음이 잔잔히 전해지고, 「212-1=211」의 엉뚱한 발상은 웃음을 자아낸다. 「미역」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부분 역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있는 유머가 돋보인다.
3부에 「편식」, 「양면테이프」, 「독차지」, 「보물 1호」는
아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해 자연스레 공감하게 된다.
4부에 실린 「성묘」를 읽으며 나를 유독 예뻐해 주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구, 우리 강아지.” 그 한마디에 담겨 있던 따뜻함이 다시 살아나듯,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 「주름이 웃는다」, 「비싼 거」를 읽을 때는 친정엄마의 마음이 겹쳐진다. 값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 뒤늦게 마음 깊이 스며든다.
동시를 읽는 동안 함께 웃고, 때로는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위로를 건네고,
신선한 상상력을 자극해 감동을 전하고 싶다는 시인의 말이 오래 남는다.
「나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다」는 마치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아이뿐 아니라 나 역시 지켜지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동시는 읽는 사람의 마음결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새롭게 피어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