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어본 뻔한 이야기라고? 초록달팽이 그림책 7
김순영 지음 / 초록달팽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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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들어본 뻔한 이야기라고?』 독자에게 생생하게 말을 건네는 듯한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서사로 시작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창작 그림책이다. 처음에는 토끼가 등장해 『토끼와 거북이』의 패러디인가 싶지만,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뜻밖에도 악어다.
호시탐탐 토끼를 노리던 악어가 번번이 토끼를 잡아먹으려다 실패하고 다치게 되는데 억울함과 분함에 울다 지쳐버리는 악어의 모습은 묘한 연민을 자아낸다. 위협적인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토끼들은 다친 악어를 외면하지 않고 따뜻한 친절을 베푼다. 예상치 못한 호의에 악어는 서서히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 마치 '은혜 갚은 호랑이'처럼 토끼들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로 거듭난다.

이 책의 독특한 지점은 시점의 분리에 있다. 전반부가 악어의 입장에서 전개된다면, 후반부는 온전히 토끼의 시선으로 사건을 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은 옛이야기가 오버랩되기도 하지만, 악어를 길들이기 위해 토끼들이 고안해낸 방법들은 무릎을 탁 칠 만큼 신박하고 유쾌하다.

장면 곳곳에서 미야니시 타츠야의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결말이 주는 반전과 여운의 결은 전혀 다르다. 익숙한 전래 동화의 구조를 빌려와 편견을 비틀고, 호의와 신뢰가 어떻게 관계의 질감을 변화시키는지 뭉클하게 그려낸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악어의 변화다. 친구가 되기 위해 자신의 거친 고유성을 내려놓고 다가가는 악어의 행동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토끼의 감동 어린 눈빛은 이 그림책이 선사하는 최고의 명장면이라 할 만하다. 서로 다른 존재가 공생하는 과정을 통해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인간관계에서도 진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우정을 꽃피울 수 있음을 나지막이 보여준다.

악어의 희생으로 친구가 된다는 설정은 조금 안타까운 마음을 남기기도 하지만, 해피엔딩을 예고하며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피켓은 독자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를 번지게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마주하는 법을 일깨워주는 참으로 따스한 반전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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