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이라는 개념은 으레 그렇듯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한 의구심은 전혀 없이 말이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유럽, 미국까지 이어진 일관된 문명의 계보로 인식되어 온 서양의 감춰진 이면을 들춰내어 진짜 서양 문명사에 대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만들어지고 덧씌워진 서양사의 모습을 통해 서양이라는 개념을 다시금 통찰할 수 있는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어쩌면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역사서를 쓴 역사가의 개인적인 역사관이 묻혀 있을 수도 있고, 잘못된 정보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누가> 서양사를 대표하느냐를 선택하는 것 역시 분명 주관적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 또한 서양사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을 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이 책을 바탕으로 좀 더 깊이 있게 알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다면 저자는 아마 무척 기뻐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총 14인의 인물을 만난다. 이들을 중심으로 현재 우리에게 인식된 서양이라는 개념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저자는 기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현재 서양을 뒤흔드는 문화 전쟁의 핵심으로 기원과 정체성 사이의 교차성을 꼽는다.
- <서양>은 어떤 지리적 위치나 문화적 공동체를 가리키는 낱말이지만 보통은 어떤 문화적 요소 및 정치적, 경제적 원칙을 공유하는 근대적 국민 국가를 일컫는 데 사용된다. 대의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라는 발상, 유대-기독교의 도덕적 기층 위에 놓인 세속 국가,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경향 등이 그 요소와 원칙 중 일부이다. p 12
서양의 출발점으로 지목하는 그 장소야말로 서양이 근본적으로 <무엇>인지를 특징짓는 한 가지 방식이라는 저자는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시는 사실과 다르며, 그것의 보급, 지속이 이념적 유용성을 지닌 탓에 이루어졌음을 피력한다. 저자는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에 딴죽을 거는 것으로, 먼저 그것을 구성하는 미시 서사들을 풀어헤치고 다음으로 그 위에 놓인 이념적 응어리들을 분석'한다.
저자는 그의 주장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주관적 관점에서 풀어 나간다. 나의 경우는 서양사에 대해 박식한 것도 아니고 인물과 시대, 사건을 연결 짓지도 못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에 대한 지식을 다시금 쌓을 수 있어 좋았고, 저자의 설득력 있는 주장도 분명 흥미로웠다. 서양이라는 개념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인식의 기회를 가져다준 도서이다.
'서양이란 이름에 숨겨진 진짜 역사'가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한다. 신선한 시각을 선사하는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