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독서에 의한 경험은 진정한 경험이 될 수 있는가, 독서에 의해 훈련된 상상력은 현실 속의 상상력일 수 있는가'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저자는 독서로 단련된 상상력은 확실한 실체로 존재한다는 답을 내린다. 작가 스스로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자 확답, 독자들에 대한 선험자로서의 제언이 담긴 책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읽는 걸 좋아하지만 저자와 같은 질문을 해 본 적이 없기에 매우 신선한 주제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래서 생경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다소 모호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이 독서 경험에는 들어 있는 듯하다. 또 현실로 향하는 상상력의 근원에서 독서로 단련된 상상력은 결코 맥없이 물렁한 것이 아니라 명확한 실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글 읽는 행위에 불과한 독서 경험으로 얻어지는 상상력은 생명을 북돋는 것이며, 현실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자가 지닌 상상력과는 다른 뿌리를 갖고 있다는 의식도 완전히 떨쳐 버릴 수는 없다. p 14
저자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책과 현실 생활 사이에 이어진 연결 통로를 확실하게 끊어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죽음은 활자로 읽었던 어떠한 죽음과도 비슷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실은 동일한 실체를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려 타인에 의한 죽음이라는 말이 책에 나오는 죽음이란 활자처럼 가공의 단어로 느껴졌다고 한다. 감정의 유무에 따른 죽음이 지닌 의미는 이렇게나 다르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나와는 반대로 활자로 인쇄된 것이 아닌 이야기는 그대로 받아들여 가공이 아닌 현실 그 자체라 믿었다 말한다. 골짜기 마을의 역사 이야기는 계속 저자의 인생에 깊숙이 파고들어 때때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 나는 골짜기 마을 사람들이 고양감과 상상력을 해방시켰던 옛이야기를 모두 거짓말이라고 거부하는 이들과 함께 현실에서 뒤섞여 미래를 살아야 한다는 두려운 예감으로, 이러한 현실 세계보다 완전한 가공으로서의 책이 더 낫다고 깨닫게 된 것이었다. p 40
이 책을 읽으니 불현듯 나의 어린 시절 소문이 떠올랐다. 내가 책을 좋아하기 전 유년 시절 학교에서 떠돌던 괴담 이야기가 나를 엄청난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적이 있다. 유독 실체가 없는 귀신 이야기는 혹여나 그 존재가 나의 눈에 띌까 하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기우가 컸다. 사실 그것은 그저 생각으로만 존재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캄캄한 골목길을 유달리 싫어하고 무서워한 이유도 하필이면 그때 떠오르는 귀신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읽는 행위와 듣는 행위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읽는 행위에서 보다 듣는 행위에서 더 상상력이 발휘되었던 것 같다.
- 나는 이제까지 반복해서 이야기한 것처럼, 진정한 말을 상실하면서 활자 너머 어둠을 향해 나 자신을 추방시켰다. 그리고 한번 그 세계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만나는 것들을 새로운 현실 세계와 대조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p 52
조금은 난해하기도 한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직접적인 고백이 담긴 도서이다. 그 고백의 매개 역할이 되는 숲은 그가 숲속 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인데 저자에겐 그곳이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이었다고 한다. 저자에게 있어 읽는 행위에 담긴 의미가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한다. 그의 작가 정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