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의 신'을 예찬하다? 저자 에라스무스의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한 이 책은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에게 영감을 준 역작으로 알려져 있다. '라틴어 원전 완역본'으로 책 표지의 그림마저 이 책이 품고 있는 내용과 너무 잘 어울린다.
- 아울러 신랄하게 물어뜯었다는 비난에 대답하자면,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에서 풍자할 수 있는 자유는 언제나 근본적으로 허용되었고, 풍자가 광분함에 이르지만 않는다면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진지한 주제가 아니면 아예 귀 기울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 내게는 한층 더 의외입니다. 게다가 적지 않은 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말에는 가만히 있다가 교황이나 군주를 조금이라도 해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싶으면 즉시 화내며 본말이 전도된 반응을 보입니다. 특히 자신들이 먹고사는 것과 직결된 문제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p 15~6
어리석음의 신인 우신을 예찬하는 연설을 위해 연단에 선 우신, 그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우신을 가까이하며 그를 예찬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여전히 우신을 예찬한다. 나 또한 그러한 사람 중 하나이겠지만 조금이나마 그를 멀리하고자 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선택한 도서이다.
원문에는 장과 단락의 구분이 없는 긴 연설문이나 독자의 편의를 위해 각 장마다 적절한 제목을 붙여 놓았다. 제목만 쭉 훑어봐도 우신에 대해 예상 가능한데 역설적인 내용들이 나와 세상을 돌아보게 했다.
- 여러분은 나와 같은 부류이므로 사실 내 이름을 따라서 불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p 30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다 보니 엄청나게 등장하는 신들이 그저 반갑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끝없이 고전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언젠가 그 계보를 확실히 외우게 되면 고전 속 신들이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우신은 그의 족보에 대해 설명한다. 그의 아버지는 부와 재물의 신 플루토스로 인간 세상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은 말해 뭣할까. 또한 우신은 바쿠스의 딸 만취와 판의 딸 무지의 젖을 먹고 자랐다. 우신의 시종들을 보면 하나같이 우신스럽다. 우신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온 세상을 지배하고 위대한 통치자들조차 그의 명령에 복종하게 만든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만 봐도 우신의 시종들이 얼마나 위대(?) 한 지 실감할 수 있다.
- 사실 노인은 주름이 많고 생일을 더 많이 지냈다는 것 말고는 어린아이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머리색이 옅고, 치아가 다 있지 않고, 체구가 작고, 젖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말을 더듬고, 자꾸 이야기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곧잘 잊어버리며, 생각이 부족합니다. 거의 모든 점에서 비슷하지요. 사람은 늙을수록 점점 더 어린아이에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삶의 고단함을 느끼지 않고 죽음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p 47
- 그들은 결국 서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독수리나 에피다우로스의 뱀보다 더 날카로운 눈으로 친구들의 잘못을 기막히게 찾아내 신랄하게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결점이나 잘못을 보는 눈은 말할 수 없이 어두워 자기 등에 매달린 짐은 전혀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p 66
- 그런데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모든 업적의 씨앗이자 원천은 전쟁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전쟁을 하면 양쪽 모두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큽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전쟁을 합니다. 왜 그런지 영문을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전쟁에 열 올리는 사람들은 메가라 사람들처럼 '이성이 없는'자들입니다. p 74
우신이 스스로를 예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어리석음을 해학과 비판, 풍자로 풀어 놓았다. 어리석음이란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그도 때때로는 유익한 면이 있다.
세상에 만연한 어리석음에 대한 통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도서로 과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가 명백한 도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치 있는 내용이 재미를 주는 동시에 삶에 대한 교훈도 얻을 수 있다. 술술 잘 읽히는 현대지성 「우신예찬」이었다.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