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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괴물들 - 드라큘라, 앨리스, 슈퍼맨과 그 밖의 문학 친구들
알베르토 망겔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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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애서가가 자신이 잊지 못하는 캐릭터들에게 바치는 말과 그림들.” _<뉴욕타임스> 북리뷰
띠지의 카피가 이 책의 내용을 짧고 정확하게 말해줍니다.

일생껏 책 한번 대차게 읽었다는 작가가 동서고금, 장르불문 소환한 37가지 문학 속 캐릭터들을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고 철학과 역사를 젓가락 삼아 물고 뜯고 씹고 맛봅니다. 아는 맛은 더 맛있게, 모르는 맛도 군침이 돌게 만들어 기어이 앞치마를 두르거나 배달앱을 켜게 하는 먹방러처럼 말이죠.

책속의 문장을 빌리자면 “괴물은 천재, 괴짜, 특이한 것, 예기치 못한 것, 거의 또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뜻한다”고 하는데요,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로 구성된 각 장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면면은 무척 다채롭습니다. 드라큘라, 릴리트, 키마이라, 카지모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사오정 등 익히 아는 괴물의 이미지부터 앨리스, 슈퍼맨,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성진, 네모 선장, 하이디의 할아버지와 신드바드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인물들까지 아우릅니다.

책을 좋아하나요? 얼마나 많이, 깊이, 빠르게 읽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작가이자, 번역가, 편집자, 비평가, 국제펜클럽 회원이며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했지만, 스스로는 ‘독서가’라고 소개하는 알베르트망겔의 이 책이 도로시의 마법구두가 되어 방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안내할 테니까.

📚알베르토 망겔, <끝내주는 괴물들> 중에서
p. 25 저자 서문
망설임의 순간, 고뇌의 순간, 의혹의 순간에는 어두운 숲에 다다른 도로시에게 허수아비가 해준 조언에 담긴 기본적인 상식이 늘 도움이 되었다. “들어가는 길이 있으면 나가는 길도 있지. 에메랄드시가 길의 한쪽 끝에 있으니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어디로든 가는 수밖에 없어.”

p. 59 앨리스
앨리스는 난센스를 이해하고 그 은밀한 규칙을 발견해낼 수단이 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며, 웃어른들이나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공작 부인이나 모자 장수를 상대할 때도 가차 없이 논리를 들이댄다. 그리고 논쟁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이 드러나면 앨리스는 최소한 그 상황이 부당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부득부득 지적하고야 만다. 하트 여왕이 법정에서는 “처형이 먼저고, 평결은 나중”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앨리스는 즉시 “말도 안 돼, 헛소리야!”라고 대꾸한다. 우리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부조리에 걸맞은 유일한 대답이라 하겠다.

p. 141 키마이라
monster(괴물)라는 단어는 “경고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인 monere에서 유래했다. 괴물은 천재, 괴짜, 특이한 것, 예기치 못한 것, 거의 또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뜻한다.

p. 197 카지모도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렸다”는 오래된 속담이 있는데, 추함도 마찬가지다.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는 명제의 변형이라 할 만한 이 속담은 확실히 참일 것이다. 그러나 추함이란, 무언가의 반대 개념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인식 체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중략)
미학의 크나큰 역설은 관습적으로 아름답거나 추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오히려 정반대의 관점에서 보려 한다는 것이다.

pp. 323-324 신드바드
우리는 ‘바다’를 말하는 순간 ‘땅’을 떠올린다. 선원 신드바드는 더 이상 땅에 매이지 않는 사람이자, 해안에서 떠나간 사람이요, 저 끊임없이 변화하는 평원을 누비며 지도를 그려가는 활동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다. 단단한 뭍에서 신드바드의 삶은 평화롭고 반복적이며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정반대다. (중략) 우리 모두가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미지의 영토를 마주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미지의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신드바드는 알고 있다. 점점 강렬해지는 해양 모험 한가운데에서 그는 언젠가 다시 흙이 되어 영원히 땅으로 돌아갈 최후의 순간을 대비해 훈련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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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 저녁 공기가 제법 서늘해서 긴 팔을 꺼내 입었습니다. 한낮은 조금 덥네요. 그래도 공기의 촉감이 달라요. 두번 접어 올린 소매 사이로 들어오는 가을을 느껴 봅니다. 느끼지 않으면 금세 지나가 버릴 테니까요.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며칠 전 출근길에 대뜸 떠오른 문장. 산문집 <아침의 피아노>에서 본 니체의 말, 이라는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이 다음에 어떤 글이 이어졌더라(긁적긁적).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꺼내 다시 읽어 보는데, 이 책이야말로 가을의 무화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이 간암 말기 선고를 받고 임종 직전까지 휴대폰 메모장에 쓴 일기 200여 편을 담고 있어요. 스스로의 글에 엄격해 번역서 1권 외에는 아무것도 출간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입니다.

시한부의 일기라지만, 문장은 간결하고 감정은 담백합니다. 그 안에 담긴 사색은 아침 출근길에 고개 들어 바라보는 가을 하늘처럼 맑고 깊습니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일상의 풍경 속에 곁들인 아름답고 밀도 높은 생의 기록. 마음에 스며드는 문장을 좇아 적다 보면 거의 모든 페이지를 적게 되는 책. 다시 읽어도 너무 좋고, 이 계절에 더 읽기 좋습니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중에서
p. 13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낼 뿐이다.

p. 67
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삶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것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p. 81
긴 아침 산책.
한 철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

p. 97
아침 산책. 또 꽃들을 들여다본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p. 112 중에서
문득 자라투스트라의 한 문장: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온 세상이 가을이고 하늘은 맑으며 오후의 시간이다." 무르익는다는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두가 무르익었다. 니체는 그 순간을 '조용한 시간(Der Stille Stunde)'이라고 불렀다. 조용한 시간-그건 또한 거대한 고독의 순간이다. 사람은 이 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평생을 사는가.

p. 182
“얼마나 걸어가야 절이 나오나요?”
라고 물으면 촌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자뿌리고 그냥 가소. 그라믄 나오니께…”

p. 196
생은 불 꺼진 적 없는 아궁이. 나는 그 위에 걸린 무쇠솥이다. 그 솥 안에서는 무엇이 그토록 끓고 있었을까. 또 지금은 무엇이 끓고 있을까.

p. 216
늙은 제주 해녀들. 리포터가 묻는다. “물에 올라오면 그렇게 허리가 아픈데 어떻게 바다 일을 하시나요?” 늙은 해녀가 말한다. “물질을 사람 힘으로 하는가. 물 힘으로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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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 저녁 공기가 제법 서늘해서 긴 팔을 꺼내 입었습니다. 한낮은 조금 덥네요. 그래도 공기의 촉감이 달라요. 두번 접어 올린 소매 사이로 들어오는 가을을 느껴 봅니다. 느끼지 않으면 금세 지나가 버릴 테니까요.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며칠 전 출근길에 대뜸 떠오른 문장. 산문집 <아침의 피아노>에서 본 니체의 말, 이라는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이 다음에 어떤 글이 이어졌더라(긁적긁적).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꺼내 다시 읽어 보는데, 이 책이야말로 가을의 무화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이 간암 말기 선고를 받고 임종 직전까지 휴대폰 메모장에 쓴 일기 200여 편을 담고 있어요. 스스로의 글에 엄격해 번역서 1권 외에는 아무것도 출간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입니다.

시한부의 일기라지만, 문장은 간결하고 감정은 담백합니다. 그 안에 담긴 사색은 아침 출근길에 고개 들어 바라보는 가을 하늘처럼 맑고 깊습니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일상의 풍경 속에 곁들인 아름답고 밀도 높은 생의 기록. 마음에 스며드는 문장을 좇아 적다 보면 거의 모든 페이지를 적게 되는 책. 다시 읽어도 너무 좋고, 이 계절에 더 읽기 좋습니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중에서
p. 13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낼 뿐이다.

p. 67
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삶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것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p. 81
긴 아침 산책.
한 철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

p. 97
아침 산책. 또 꽃들을 들여다본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p. 112 중에서
문득 자라투스트라의 한 문장: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온 세상이 가을이고 하늘은 맑으며 오후의 시간이다." 무르익는다는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두가 무르익었다. 니체는 그 순간을 '조용한 시간(Der Stille Stunde)'이라고 불렀다. 조용한 시간-그건 또한 거대한 고독의 순간이다. 사람은 이 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평생을 사는가.

p. 182
“얼마나 걸어가야 절이 나오나요?”
라고 물으면 촌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자뿌리고 그냥 가소. 그라믄 나오니께…”

p. 196
생은 불 꺼진 적 없는 아궁이. 나는 그 위에 걸린 무쇠솥이다. 그 솥 안에서는 무엇이 그토록 끓고 있었을까. 또 지금은 무엇이 끓고 있을까.

p. 216
늙은 제주 해녀들. 리포터가 묻는다. “물에 올라오면 그렇게 허리가 아픈데 어떻게 바다 일을 하시나요?” 늙은 해녀가 말한다. “물질을 사람 힘으로 하는가. 물 힘으로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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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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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 공기가 제법 서늘해서 긴 팔을 꺼내 입었습니다. 한낮은 조금 덥네요. 그래도 공기의 촉감이 달라요. 두번 접어 올린 소매 사이로 들어오는 가을을 느껴 봅니다. 느끼지 않으면 금세 지나가 버릴 테니까요.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며칠 전 출근길에 대뜸 떠오른 문장. 산문집 <아침의 피아노>에서 본 니체의 말, 이라는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이 다음에 어떤 글이 이어졌더라(긁적긁적).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꺼내 다시 읽어 보는데, 이 책이야말로 가을의 무화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이 간암 말기 선고를 받고 임종 직전까지 휴대폰 메모장에 쓴 일기 200여 편을 담고 있어요. 스스로의 글에 엄격해 번역서 1권 외에는 아무것도 출간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입니다.

시한부의 일기라지만, 문장은 간결하고 감정은 담백합니다. 그 안에 담긴 사색은 아침 출근길에 고개 들어 바라보는 가을 하늘처럼 맑고 깊습니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일상의 풍경 속에 곁들인 아름답고 밀도 높은 생의 기록. 마음에 스며드는 문장을 좇아 적다 보면 거의 모든 페이지를 적게 되는 책. 다시 읽어도 너무 좋고, 이 계절에 더 읽기 좋습니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중에서
p. 13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낼 뿐이다.

p. 67
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삶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것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p. 81
긴 아침 산책.
한 철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

p. 97
아침 산책. 또 꽃들을 들여다본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p. 112 중에서
문득 자라투스트라의 한 문장: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온 세상이 가을이고 하늘은 맑으며 오후의 시간이다." 무르익는다는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두가 무르익었다. 니체는 그 순간을 '조용한 시간(Der Stille Stunde)'이라고 불렀다. 조용한 시간-그건 또한 거대한 고독의 순간이다. 사람은 이 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평생을 사는가.

p. 182
“얼마나 걸어가야 절이 나오나요?”
라고 물으면 촌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자뿌리고 그냥 가소. 그라믄 나오니께…”

p. 196
생은 불 꺼진 적 없는 아궁이. 나는 그 위에 걸린 무쇠솥이다. 그 솥 안에서는 무엇이 그토록 끓고 있었을까. 또 지금은 무엇이 끓고 있을까.

p. 216
늙은 제주 해녀들. 리포터가 묻는다. “물에 올라오면 그렇게 허리가 아픈데 어떻게 바다 일을 하시나요?” 늙은 해녀가 말한다. “물질을 사람 힘으로 하는가. 물 힘으로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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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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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책을 여는 작가의 말 속 문장을 빌리자면 ‘하는 사람도, 그것을 듣는 존재도 그 순간만큼은 괜찮아지게 만드는’, ‘마침내 나를 살게 만드는 다독임”의 말입니다.

짧고 가벼운 이 말 한마디 주고받기가 참 어렵습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는 것이 능력처럼 여겨지는 사회 생활에선 특히 더 그래요. ‘할많하않’이란 줄임말이 직장어로 통용되는 이유겠죠.

엘리베이터,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괜찮아?” 물어주던 선배가 생각났어요.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지쳐 있을 때였는데, 앞뒤 사정도 모르면서 그냥, 괜찮냐고만 묻는 그 말이 참 다정하게 느껴졌어요.

몇 번인가를 그러고 나서 농반진반 “괜찮은 사람은 괜찮냐고 안 물어보는데… (선배는) 괜찮아요?” 하고 물었더니 곧 퇴사한다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내 탓도 남 탓도 아닌 “나와 주변을 돌볼 시간이 필요해서”라는 말과 함께.

먹고사니즘에 치여 살게 되면 생각은 흩어지고 마음은 부서지기 쉬워요. 그러지 않으려고 입과 귀를 걸어 닫게 되구요. 그럴 때 이 책을 열어보면 좋겠어요. 조금이라도, 잠깐이라도 나와 남과 세상을 돌아보고 다독일 수 있도록.

오은 작가님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여러 매체에 쓴 글을 모으고 버리고 다듬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이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고 해요. 표지를 장식한 신소영 작가님의 그림, <너랑 같이>가 주는 안온한 느낌처럼 편안하고 따스한 문장들로 채워진 책입니다.

📚오은, <다독임> 중에서
P8. 작가의 말 중에서
다독다독은 의태어지만 다독이거나 다독임을 당할 때, 우리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어떤 소리를 듣는다. “괜찮아, 괜찮아”라는 뭉근하고 다정한 위로가 들릴 때도 있고, “괜찮아? 괜찮은 거지?”라는 다급한 물음이 들릴 때도 있다. 어느 것이든 괜찮은 사람이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건네는 말이다. 하는 사람도, 그것을 듣는 존재도 그 순간만큼은 괜찮아지게 만드는 말이다.
마침내 나를 살게 만드는 다독임이다.

P. 18 입고픈 사람 귀고픈 사람
얼마 전에 알게 된 순우리말이 있다. ‘입고프다’와 ‘귀고프다’가 바로 그것이다. 입고프다는 “자유롭고 숨김없이 말을 하고 싶다”는 뜻이고 귀고프다는 “실컷 듣고 싶다”는 뜻이다. 어른이 되니 입고픈데도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입을 닫는 일이 많아졌다. 귀고픈데도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많아졌다. 입고픈 사람이 귀고픈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이 길 위에 부디 많아졌으면 좋겠다.

P. 33 다시 한 판 하라는 거예요
화면 위로 ‘You failed’란 문구가 떴다. 한 아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뜻이야?” “실패했다는 거야.” 다른 한 아이의 표정이 덩달아 어두워졌다. 그 모습이 몹시 귀여워서 나는 둘에게 다가가 물었다. “실패가 무슨 뜻인지 아니?” “다시 한 판 하라는 거예요.” 야무지게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P.276-277 다독이는 안녕 (닫는 글)
“안녕”이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헤어지는데,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그것은 다독이는 안녕이었기 때문이다.
“아까 인사가 힘이 됐어요. 안녕히 가요.” 카페 밖으로 나오는데 등 뒤에서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소 곤란한 감정’이 잔뜩 넉넉한 감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물웅덩이 바닥에서 가만가만, 하지만 분명히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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