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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괜찮아? 괜찮아.
책을 여는 작가의 말 속 문장을 빌리자면 ‘하는 사람도, 그것을 듣는 존재도 그 순간만큼은 괜찮아지게 만드는’, ‘마침내 나를 살게 만드는 다독임”의 말입니다.
짧고 가벼운 이 말 한마디 주고받기가 참 어렵습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는 것이 능력처럼 여겨지는 사회 생활에선 특히 더 그래요. ‘할많하않’이란 줄임말이 직장어로 통용되는 이유겠죠.
엘리베이터,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괜찮아?” 물어주던 선배가 생각났어요.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지쳐 있을 때였는데, 앞뒤 사정도 모르면서 그냥, 괜찮냐고만 묻는 그 말이 참 다정하게 느껴졌어요.
몇 번인가를 그러고 나서 농반진반 “괜찮은 사람은 괜찮냐고 안 물어보는데… (선배는) 괜찮아요?” 하고 물었더니 곧 퇴사한다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내 탓도 남 탓도 아닌 “나와 주변을 돌볼 시간이 필요해서”라는 말과 함께.
먹고사니즘에 치여 살게 되면 생각은 흩어지고 마음은 부서지기 쉬워요. 그러지 않으려고 입과 귀를 걸어 닫게 되구요. 그럴 때 이 책을 열어보면 좋겠어요. 조금이라도, 잠깐이라도 나와 남과 세상을 돌아보고 다독일 수 있도록.
오은 작가님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여러 매체에 쓴 글을 모으고 버리고 다듬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이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고 해요. 표지를 장식한 신소영 작가님의 그림, <너랑 같이>가 주는 안온한 느낌처럼 편안하고 따스한 문장들로 채워진 책입니다.
📚오은, <다독임> 중에서
P8. 작가의 말 중에서
다독다독은 의태어지만 다독이거나 다독임을 당할 때, 우리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어떤 소리를 듣는다. “괜찮아, 괜찮아”라는 뭉근하고 다정한 위로가 들릴 때도 있고, “괜찮아? 괜찮은 거지?”라는 다급한 물음이 들릴 때도 있다. 어느 것이든 괜찮은 사람이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건네는 말이다. 하는 사람도, 그것을 듣는 존재도 그 순간만큼은 괜찮아지게 만드는 말이다.
마침내 나를 살게 만드는 다독임이다.
P. 18 입고픈 사람 귀고픈 사람
얼마 전에 알게 된 순우리말이 있다. ‘입고프다’와 ‘귀고프다’가 바로 그것이다. 입고프다는 “자유롭고 숨김없이 말을 하고 싶다”는 뜻이고 귀고프다는 “실컷 듣고 싶다”는 뜻이다. 어른이 되니 입고픈데도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입을 닫는 일이 많아졌다. 귀고픈데도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많아졌다. 입고픈 사람이 귀고픈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이 길 위에 부디 많아졌으면 좋겠다.
P. 33 다시 한 판 하라는 거예요
화면 위로 ‘You failed’란 문구가 떴다. 한 아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뜻이야?” “실패했다는 거야.” 다른 한 아이의 표정이 덩달아 어두워졌다. 그 모습이 몹시 귀여워서 나는 둘에게 다가가 물었다. “실패가 무슨 뜻인지 아니?” “다시 한 판 하라는 거예요.” 야무지게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P.276-277 다독이는 안녕 (닫는 글)
“안녕”이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헤어지는데,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그것은 다독이는 안녕이었기 때문이다.
“아까 인사가 힘이 됐어요. 안녕히 가요.” 카페 밖으로 나오는데 등 뒤에서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소 곤란한 감정’이 잔뜩 넉넉한 감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물웅덩이 바닥에서 가만가만, 하지만 분명히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