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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 사용법
출판 전 표지 디자인 투표가 독자들을 상대로 있었다. 그리고 책이 출간되어 나왔을 때 내가 한 표 던졌던 그 디자인을 곱게 입고선 세상에 나온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 중 하나이지만, 괜스레 애정이 가는 책이 되었다.
책 속에 책이 등장하고 독서 노하우를 겸비한 책이며, 말랑말랑한 위로를 던져주는 에세이까지 내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더 많았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부터 쿵 하고 와닿는 시를 만났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았던 것으로 보이는 비스와바 쉼보르카 시인의 <두 번은 없다>라는 시이다. 시를 읽는 순간 내가 한 행동은 꾹꾹 눌러 쓰며 필사를 한 것이고,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시와 거리감이 꽤 있던 나에게 의외적인 일이었지만 왠지 이 시만큼은 머리로 외고, 마음에 새겨두고 싶을 정도로 기분 좋은 두근거림은 안겨주었다.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렸을 때
네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을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빨간 머리 앤이 하는 말>로 위로받은 사람이라면 이번 책은 더없이 반가웠을 것 같다. 저자는 1년에 500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독서량이 말해주듯이, 책을 통해 위로를 건넸다. 작가가 만난 많은 문장들은 차곡차곡 수집되어 인생의 문장들로 다듬어졌고,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 사고부터 일상에서 소소하게 겪을 수 있는 일까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상 위에 위로의 말을 살포시 얹어주었다. 건네는 위로는 책 속의 밑줄일 수도 있고, 저자의 경험과 생각들이 주는 토닥거림일 수도 있다. 같은 책을 읽어도 밑줄을 긋는 부분이 다르 듯 저자의 위로는 담담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툭하고 붙잡고 있던 슬픔을 놓쳐 눈물이 핑 돌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슬프면 슬픈 대로, 감정이 넘쳐흐른다면 넘치는 대로 지금 본인의 감정에 충실해도 괜찮다고, 그게 눈물이든 기쁨이든 다 괜찮다고 말이다.
나를 지나간
내가 지나간 세상 모든 것들에게
'잘 지내냐'고 묻고 싶어서
당신을 만난 거겠다.
- 이병률, 묻고 싶은 게 많아서
그저 그 사람 곁에 있어주세요. 말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에는 특유의 온도가 있어서, 약해진 사람에게는 얼음처럼 박힐 때가 많아요. (...) 가장 좋은 건 그냥 안아주는 겁니다. 가장 큰 위로는 말이 아니라 함께 한 많은 '그냥'들로 증명됩니다. / 98
"인간 만사에서는 오랫동안 당연시해왔던 문제들에도 때때로 물음표를 달아볼 필요가 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평균적 행복이란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닌 타인의 취향에 나를 대입한 것일 뿐이에요. / 147
삶이 규칙적이고 단순해서 뇌가 선택이라는 값비싼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어질 때, 우리 뇌는 전혀 다른 일을 하기 시작해요. 비슷한 것들 속에서 '다른 것'을 찾아내기 위해 작동하는 거죠. / 181
희망이라는 말은 꼭 희망 속에만 있지 않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그걸 기억해야 해요.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려도, 삶은 계속될 테니까요. / 251
어느 정도의 온도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우리에게 적당한 걸까요?
자신만의 색으로 위로를 건네는 백영옥 작가의 그 시선이, 마음이 참 따스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을 감성으로 잘 다듬어 내놓은 위로들, 찬바람에 옷깃을 야무지게 여미게 되는 이 계절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인 것 같다. 중간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따스한 느낌의 일러스트와 문장들 사이에 빼꼼히 자리 잡은 아기자기한 그림들까지 더없이 온기로 차곡차곡 채워주는 느낌이 좋았다. 나 또한 책을 읽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나게 되면 주저 없이 필사나 흔적을 남겨두는데, 그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과 밑줄 친 이유 등을 함께 남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밑줄 처방전을 전해주는 작가처럼 나는 나만의 밑줄 처방전을 만들어 보는 것도 내 마음을 다독여 줄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한 번 읽고, 책장으로 바로 넣어놓지 않았다. 머리맡에 두고 생각이 날 때 무심코 펼쳐 마주한 글을 읽어보았다. 처음과는 다른 문장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걸 보면, 한동안 머리맡 자리는 이 책이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그 사람 때문에 변해가는 자기 모습이 절망스럽다면, 그런데도 지금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사귀는 게 아니라 헤어지는 중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면, 당신은 지금 나쁜 연애에 중독된 겁니다. / 25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 던지는 많은 질문에 평생 답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오답이라도 말이죠. / 37
그냥 지금 네 모습 그대로 있는 건 어때? 외롭고, 아무것도 확신 못하고, 조금은 불안한 대로. 그렇더라도 조금은 행복하지? / 69
사과를 두 개 가진 사람이 행복할까요, 사과를 한 개 가진 사람이 행복할까요? 물론 한 개가 되었든 두 개가 되었든 그걸 깨물어 먹으며 사과를 먹는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겠죠. / 151
행복의 다른 이름에 대해 생각했어요. 고마움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귀함을 아는 마음. 주위에 이미 존재하는 행복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예민한 더듬이를 가지고 싶습니다. /152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