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 우리에겐 애쓰지 않고도 사랑하며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김유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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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실상 별반 다를 것 없이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하지만, 머릿속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을 나만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는 건 아닌지,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고, 노력하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문득 공허함이 찾아온다. 온전히 나로 살아가려 하지만 다양한 역할의 내가 생겨나면서 길을 헤매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는 것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중 만난 이 책의 작가는 "오늘, 퇴근하고 뭐 하세요?'라고 물어온다. 집, 회사, 집, 회사를 반복되고 있는 요즘이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뭘 하더라? 항상 반복되는 일상, 습관처럼 익숙해진 일상이라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퇴근해서 저녁 먹고, 간단히 집안일, 시간이 남으면 미드를 보거나 책을 읽는 정도 사실 평일 퇴근 이후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지 오래다. 운동도 해봤었고, 공부도 하며, 알차게 보내보려 했던 퇴근 후 삶은 어느 순간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회사 업무, 사람 관계에 에너지를 다 쏟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함과 귀찮음이 동시에 찾아오기도 하고, 갖은 핑계와 합리화를 대며 외면하기도 했다. 다만, 그 안에서 놓지 않으려 애쓴 건 독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잔뜩 쌓아놓고, 좋아하는 군것질거리와 커피만 있어도 행복했다. 그 시간 또한 너무 쏜살같이 지나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다음날을 생각해 억지로 잠을 청한다. 그리고 나면 또 출근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새로운 것에 퇴근 후 시간을 내어주는 건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시간의 중심에, 내 삶의 중심에 오롯이 섰다.

삶이 조금이라도 더 풍요로워지고 기쁨으로 넘칠 수만 있다면 그림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도 좋을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푹 빠져버려서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나와 당신의 취미 생활을 예찬한다.

"오늘, 퇴근하고 뭐 하세요?"

 

10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고 나서 내린 결론이다. 연애와 취미는 최대한 숨길수록 이롭다. 연애사는 회식 자리에서도 안줏거리가 된다. 취미 활동은, 자칭 상사가 같이하자고 덤벼들 수가 있다. / 008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잠시 현실을 망각하게 했다. 선과 색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돼서 진정한 자유를 누렸다. 가끔씩 텅 빈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를 돌아보게 됐다. 그림은 살면서 잊고 있던, 혹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나다움'의 발견이었다. / 009


혼자 있는 시간이 싫었던 작가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새로운 취미를 찾기로 한다. 누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닌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 말이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질문에 그림을 배우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바로 행동에 옮긴다. 퇴근 후 작은 화실로 다시 출근도장을 찍는다. 멈춰있던 어릴 적 시간이 다시 흐른다. 설렘과 걱정으로 다시 마주한 그림은 선 긋기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 그다음 단계, 한 단계씩 올라간 그곳에서 성취감과 함께 자신이 그려낸 세계에 푹 빠져들게 된다. 하얀 도화지에 선과 선으로 면을 만들어 내고, 그 안을 강약으로 채워나가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 손끝에서 무언가 완성이 되간다. 종이와 연필 하나로 완성돼가는 그림을 경험해 본 적이 있기에 작가가 여러 재료들로 각기 다른 작품들을 완성해 갈 때마다 작은 두근거림과 함께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들이 틈을 만들고, 자꾸 비집고 튀어나왔다.

 

어둠 속에도 어둠이 있다며, 더 짙은 어둠을 강하게 눌러주라고. 알 파치노의 눈동자, 빛이 든 머리카락의 반대편인 오른쪽 부분에 목탄을 주고 있는 손에 힘을 줘 어둠을 더했다. 한참 동안 어둠을 찾고, 눈치껏 밝음을 찾아 지우개로 지워냈다. / 042

 

꾸준히 지속해서 한다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림을 통해서 배웠다. 물론,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도. / 043

 

징그러울 정도로 켜켜이 담겨 있는 몽당연필들을 그의 지난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처음 그림을 시작하면서 품었을 그의 열정과 몰입의 시간이 묻어났다. 노력 없는 결과는 없었다. / 047

 

퇴근 후 시간은 나에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들이었지,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간이 아닌지 오래였다. 워라벨을 지향하지만, 사실은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 하던데, 나는 완전히 지고 말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취미에서 시작한 그림으로 작가에 등록을 하고 책을 출판하게 된 것도 부러운 일이긴 하지만, 내가 부러웠던 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과 그 시간을 꾸준히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에 집중하는 그 순간 무척이나 반짝반짝 빛나며 행복해 보였다. 그림을 그리며 인생을 배워 나가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걸어주는 것, 단순히 그림을 그리면서 얻는 성취감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얻었다는 것.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듯 그림에 쏟았던 시간과 고민들은 다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한 부러움은 동기부여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놓치고 있었던 좋아하는 일, 내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일, 너무 애쓰지 않아도 진짜 나다움을 느끼는 시간을 만들어 줄 취미 생활을 찾아봐야겠다. 삶을 지탱해줄 이유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깐.

 

불꽃같은 삶을 사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평범한 삶이다. 삶에 순응하면서 자아를 찾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다. 무엇이든 균형이 필요한 법이다. / 186

 

파란만장하지 않더라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것을 공유하고 느끼는 삶을 살고 싶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20대 시절을 지나, 느려도 괜찮다는 요즘의 추세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무얼 더 바라는 삶은 없다. 오늘도 무사한 일상에 감사하다. / 190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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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식당의 밤
사다 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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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변두리 요쓰기 일 번가 한복판에 자리한 색다른 술집 '은하 식당'

조금은 미스터리하지만 마음씨 좋아 보이는 마스터가 있고, 맛있는 안주와 술 한 잔,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로 가득했던 '심야 식당'은 만화책이든 영화든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 맛과 멋, 그리고 정이 느껴지는 공간

은하 식당의 밤을 읽고 싶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심야 식당'과 닮았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매력의 마스터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첫 페이지를 넘겼다. 시작은 꽤 많이 '심야 식당'을 닮았지만, 한 편으로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홀연히 요쓰기 일 번가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오픈한 '은하 식당'은 동네 주민들의 발길을 사로잡으며, 다수의 사람들의 단골집이 된 이곳은  이름처럼 식당이라 하기엔 모호한 카운터석만 있는 선술집이다. 맛있는 안주와 술,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그곳을 자주 찾는 단골손님들은 자신의 이야기도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주변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초등학교 동창인 테루, 붐, 헤로시, 후토시 등 은하 식당 단골들로 인해 전해진다.


단골들의 사랑방 격인 은하 식당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소식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곳이다. 그중 제일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는 경찰관 헤로시가 전해준 <첫사랑 연인의 동반 자살>이었다. 제목부터 어떤 이야기가 전개되리 머릿속에 그려졌지만, 그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빗나간 이야기였다. 혼자 지내다 외로이 삶을 마감한 할머니는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이 됐고, 할머니의 죽음에 숨겨진 사랑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잊지 못할 풋풋한 첫사랑은 커다란 아픔과 상처투성이로 가득 찬 사랑으로 끝나버린 듯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계속 이어져 있었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서로를 그리워하며, 그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해피엔딩은 결코 아니었지만, 남은 사람들에게 슬프지만, 애틋하고 순수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남게 됐었다. 그리고 아쉽지만, 이 이야기를 끝으로 다른 단편들은 조금씩 아쉬움이 남는 이야기들로 남아버렸다.

 

자유란 어려운 것. 무조건 뭐든지 다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 라는 건 한 줄기 빛조차 없는 암흑 속에서 어디로든 걸어도 좋다. 라는 말과 같아서 코조는 실제로 자신이 어디로 향해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좋을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을 느꼈다. / 29~30


총 6편의 단편으로 진행되는데, 조금은 내키지 않거나 공감이 되지 않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특히 전쟁의 숨은 사연을 이야기하는 <요괴 고양이 삐이>는 흥미롭게 시작했지만, 가미카제의 등장 때문인지 불편함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대화의 진행에 있어 "~"라는 누구.라는 덧붙인 말이 자주 등장해 글을 읽는 흐름을 방해하는 느낌에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은하 식당의 단골로 한자리 차지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었다.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안타까워했고, 마스터의 정체가 궁금해지기도 했으며, 마지막에 그 궁금증이 해결됐을 땐 그래서 처음에 첼로가 등장했구나! 하고 무릎을 치기도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우리 집 근처에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함과 따뜻한 이야기들이 넘실대고, 같이 울고 웃어주는 치유의 공간 말이다.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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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비웃는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걷자
우에마쓰 쓰토무 지음, 이정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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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던,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느려도 꼼꼼히, 누가 뭐래도 꾸준히 걷자.'

4년 전 TED 강연 중 희망하면 이루어진다(Hope Invites)라는 주제로 340만 뷰를 기록한 강연자가 있었다. 주제만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방법을 제시하고, 자신의 성공담을 이야기했을 것 같은데 왜? 어째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은 강연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생겼다. 모두가 불가능하다며 비웃었던 꿈, 그들의 비웃음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간직한 꿈을 이루게 된다. 여기까지만 봐도 너무 뻔한 스토리잖아? 너무 많이 보고 들은 성공자의 성공담이었다. 악의가 없었다 할지라도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의해 꿈이나 희망이 망가져버리거나 상처받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오는 것 같다. 그 사람을 탓하기도 자신을 탓하기도 하며 꿈마저 접어버리거나, 그 일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거나 두 가지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그런데 작가는 조금은 특별한 깨달음에 도달한다. 바로 타인에 의해 희망을 빼앗긴 경험이 있는 사람은 후에 다른 사람의 꿈까지 짓밟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자신보다 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선 보이지 않는다. 자신보다 약하고,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향하며, 대부분 아이들에게 향한다는 것이다. 그런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그런 일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욱 집중해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어릴 적 그런 경험이 있었고, 무심코 하는 말로 또 다른 피해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가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곤란한 상황도 생기고, 나의 꿈을 비웃고 무시하는 누군가도 매번 나타날 수도 있고, 현실에 부딪혀 마구 길을 헤맬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그만 포기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포기 끝엔 후회가 남는다. 더 열심히 하지 못한 후회, 끝까지 가보지 못한 후회, 가보지 못한 다른 미래에 대한 후회와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갔다면 하는 또 다른 기대까지

그런 후회가 남지 않도록 포기보다는 또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저자는 말한다. 목표까지 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 꼭 한 가지 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꼭 그 길이 아니더라도 조금 돌아갈 수도 있고,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완주를 해야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있는 법이다. 이 책은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었던 작가의 다짐이 적혀있다. 어떻게 해야 성공한다는 책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걸었다. 그대들은 이런 이유들로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총 34개의 질의응답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거창한 노하우도 화려한 입담으로 채워져 있지 않아 더 편하게 읽었다.


목적지와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도, 막다른 길을 만나 막막하고 절망스러워도 그 이유를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찾을 수 있기를 내가 바라고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멈추지 말자. 길은 어디든 어디로든 통하게 돼있고,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 날이 올 테니깐.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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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살짝 기운다
나태주 지음, 로아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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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곁에서 그렇게 좋은 말을 하면 제가 그 말을 훔쳐다 시로 쓸 것입니다.”

TVN 드라마 남자친구의 두 남, 여 주인공 수현과 진혁의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독백

<꽃을 보듯 너를 본다>에 수록되어 있던 시 '그리움',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던 2권의 책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와 <마음이 살짝 기운다> 이 3권의 책의 공통점은 모두 많은 사람들에게 '풀꽃 시인'이라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의 시집들이다.

아직 나에게 '시'란 어렵고, 때론 난해하거나 와닿지 않아 가까이 두고 싶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예외가 존재하듯 나태주 시인의 시들은 나에게 예외에 속한다. 전혀 어렵게 생각되지도, 공감하기 어려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하는 구절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늘과 풍경, 꽃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 애틋함, 그리운 마음을 가득 담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꾸밈없이 순수하게 전해져온다.

시인이 건네는 다정한 안부와 소소한 일상을 조금은 특별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의 위로와 다독거림에 꽤나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내려갔다.

짧은 글 안에 마음을 담은 단어와 어휘로 진하게 우려내놓은 시구절들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은 그림뿐만 아니라 시인의 문장과 문장 사이 어절과 어절 사이 곳곳에서 향기롭게 피어났다.

언제나 봄은 봄이 아니었다. 언제나 가을도 가을이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나 봄은 봄이었고 가을은 또 가을. 봄을 가슴에 품고 가을 생각 잊지 않으면 봄이 아니어도 봄이었고 가을이 아니어도 가을이었다. 사랑도 인생도 그러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해도 그것을 사랑으로 기꺼이 용납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별도 또한 이별이 아니다. / 004


때로는 달달한 꽃향기에 읽는 동안 설레기도 하고, 잔향만 짙게 남기고 떠난 그리운 이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인간관계, 자연, 풍경들은 사실은 내 일상의 일부가 된지 오래였고, 내 삶을 완성해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퍼즐 조각들이었다.

소소함에 익숙함에 속아 중요한 것들을 자의반 타의 반으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놓치고 있는 요즘, 마음이 살짝 기운다는 나에게 쉬어가라. 숨 고르기 할 일상의 틈을 만들어 주었다. 조금 더 느리게 읽어내려가며 나태주 시인의 시를 나만의 감성으로 이해하며, 나를 위로했다. 책을 읽으며 이토록 많은 여백과 틈을 만들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마구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너무 멀어지지 말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에 대해 당연함이 아닌 감사함임을 잊지 말자.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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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을 좋아합니다 - 초록 지붕 집부터 오건디 드레스까지, 내 마음속 앤을 담은 그림 에세이
다카야나기 사치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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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을 좋아하는 당신에게 보내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빨간 머리 앤 독서기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앤을 떠올리기만 해도 자연스레 입안을 맴도는 가사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아주 사랑스럽고 조금은 특별했던 어린 시절 친구이다. 상상력이 아주 뛰어났고, 그것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앤은 다양한 출판사에서 또는 다양한 모습으로 꾸준히 많은 이들의 추억 속에서 사랑을 받는 친구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앤은 각 각의 추억과 기억에 세월이 덧입혀 자기만의 앤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 무수히 많은 앤 중에 이 정도 애정과 관심으로 바라볼 수도 있구나 싶은 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난 그저, 아주 조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친구였지만, 내가 하는 건 아주 극히 일부일 뿐이었고, 다른 사람이 소개하는 내 친구를 만나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처럼 다가왔다.


빨간 머리 앤 시리즈는 물론이고, 루시 모드 몽고 베리의 여러 소설의 삽화를 그린 삽화가이자 수필, 아동 문학 작가인 저자는 루시 모드 몽고 베리의 유머를 좋아하는 독자이자 책의 책의 제목 그대로 앤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자신의 방식대로 책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그 정도의 관심과 애정을 쏟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살짝 부러워지기도 했다. 살짝 겉표지를 벗겨내면 180도 펼쳐 볼 수 있게 하는 '누드 사철 제본'을 볼 수 있는데, 애정의 정점을 찍듯이 직접 쓰고, 그리고 기록한 문서들을 손수 책으로 엮어 놓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만큼 책 어느 한 곳 앤에 대한 애정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듯했다.

아름다움은 깨닫지 못하면 그대로 지나쳐버리고 결국 사라질 따름입니다. / 31

"침실은 잠을 자기 위한 방이니까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도록 해라." 이렇게 말하는 마릴라에게

어머, 침실은 꿈을 꾸기 위한 방이기도 해요. 하고 반론을 편 열한 살 소녀 앤. / 39

"있잖아요. 마릴라 아주머니, 난 '황홀하게 멋진 시간'을 보냈어요. 황홀하게 멋지다는 말은 오늘 막 새로 배웠어요. 정말 느낌이 좋은 말 아닌가요?"


에이번리 초록 지붕 집, 앤이 지냈던 동쪽 방에서 내려다보는 벚꽃과 사과꽃, 라일락 향기와 푸른 들판, 평화로워 보이는 시냇물, 자작나무 숲, 처음 앤을 데리고 초록 지붕으로 가는 매슈의 마차, 우정을 맹세하는 다이애나와 앤 등등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이미지로 그려지는 그곳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꽃을 피울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의 앤보다 만화영화로 첫 대면을 한 나는 저자가 느꼈던 소소함을 꽤 많이 놓쳤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그 사소한 것들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었다. 앤이 좋아했다는 산사나무 꽃의 생김새가 덩달아 궁금해져 검색도 해보고, 그 꽃을 내가 좋아하는 타샤 튜더도 좋아했던 꽃이라 잔뜩 그려놓았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글 속에 갇혀있던 등장인물, 주인공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건 이 책의 저자처럼 잊지 않고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주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시금 앤의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가 기록한 앤의 모습이 아닌, 나만의 앤 셜리를 다시 만나고픈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앤, 너의 낭만을 완전히 버려서는 안 돼. 조금이라면 괜찮겠지. 물론 도를 너무 지나치면 안 되고 말이야. 앤, 조금은 낭만을 간직하는 편이 좋단다." / 73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단다, 실망할 일이 없으니까 말이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편이 실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시시하다고 생각해요." "저기, 마릴라 아주머니,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일이 바로 기뻐하는 일의 절반이에요." / 200

"내가 퀸스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는 내 앞의 미래가 똑바로 펼쳐진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제나 앞일까지 다 내다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모퉁이를 돌고 있어요. 모퉁이를 돌았을 때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틀림없이 제일 좋은 것이 있을 거예요." / 201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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