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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 우리에겐 애쓰지 않고도 사랑하며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김유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평점 :
어느 순간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실상 별반 다를 것 없이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하지만, 머릿속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을 나만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는 건 아닌지,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고, 노력하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문득 공허함이 찾아온다. 온전히 나로 살아가려 하지만 다양한 역할의 내가 생겨나면서 길을 헤매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는 것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중 만난 이 책의 작가는 "오늘, 퇴근하고 뭐 하세요?'라고 물어온다. 집, 회사, 집, 회사를 반복되고 있는 요즘이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뭘 하더라? 항상 반복되는 일상, 습관처럼 익숙해진 일상이라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퇴근해서 저녁 먹고, 간단히 집안일, 시간이 남으면 미드를 보거나 책을 읽는 정도 사실 평일 퇴근 이후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지 오래다. 운동도 해봤었고, 공부도 하며, 알차게 보내보려 했던 퇴근 후 삶은 어느 순간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회사 업무, 사람 관계에 에너지를 다 쏟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함과 귀찮음이 동시에 찾아오기도 하고, 갖은 핑계와 합리화를 대며 외면하기도 했다. 다만, 그 안에서 놓지 않으려 애쓴 건 독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잔뜩 쌓아놓고, 좋아하는 군것질거리와 커피만 있어도 행복했다. 그 시간 또한 너무 쏜살같이 지나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다음날을 생각해 억지로 잠을 청한다. 그리고 나면 또 출근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새로운 것에 퇴근 후 시간을 내어주는 건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시간의 중심에, 내 삶의 중심에 오롯이 섰다.
삶이 조금이라도 더 풍요로워지고 기쁨으로 넘칠 수만 있다면 그림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도 좋을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푹 빠져버려서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나와 당신의 취미 생활을 예찬한다.
"오늘, 퇴근하고 뭐 하세요?"
10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고 나서 내린 결론이다. 연애와 취미는 최대한 숨길수록 이롭다. 연애사는 회식 자리에서도 안줏거리가 된다. 취미 활동은, 자칭 상사가 같이하자고 덤벼들 수가 있다. / 008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잠시 현실을 망각하게 했다. 선과 색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돼서 진정한 자유를 누렸다. 가끔씩 텅 빈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를 돌아보게 됐다. 그림은 살면서 잊고 있던, 혹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나다움'의 발견이었다. / 009
혼자 있는 시간이 싫었던 작가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새로운 취미를 찾기로 한다. 누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닌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 말이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질문에 그림을 배우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바로 행동에 옮긴다. 퇴근 후 작은 화실로 다시 출근도장을 찍는다. 멈춰있던 어릴 적 시간이 다시 흐른다. 설렘과 걱정으로 다시 마주한 그림은 선 긋기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 그다음 단계, 한 단계씩 올라간 그곳에서 성취감과 함께 자신이 그려낸 세계에 푹 빠져들게 된다. 하얀 도화지에 선과 선으로 면을 만들어 내고, 그 안을 강약으로 채워나가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 손끝에서 무언가 완성이 되간다. 종이와 연필 하나로 완성돼가는 그림을 경험해 본 적이 있기에 작가가 여러 재료들로 각기 다른 작품들을 완성해 갈 때마다 작은 두근거림과 함께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들이 틈을 만들고, 자꾸 비집고 튀어나왔다.
어둠 속에도 어둠이 있다며, 더 짙은 어둠을 강하게 눌러주라고. 알 파치노의 눈동자, 빛이 든 머리카락의 반대편인 오른쪽 부분에 목탄을 주고 있는 손에 힘을 줘 어둠을 더했다. 한참 동안 어둠을 찾고, 눈치껏 밝음을 찾아 지우개로 지워냈다. / 042
꾸준히 지속해서 한다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림을 통해서 배웠다. 물론,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도. / 043
징그러울 정도로 켜켜이 담겨 있는 몽당연필들을 그의 지난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처음 그림을 시작하면서 품었을 그의 열정과 몰입의 시간이 묻어났다. 노력 없는 결과는 없었다. / 047
퇴근 후 시간은 나에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들이었지,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간이 아닌지 오래였다. 워라벨을 지향하지만, 사실은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 하던데, 나는 완전히 지고 말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취미에서 시작한 그림으로 작가에 등록을 하고 책을 출판하게 된 것도 부러운 일이긴 하지만, 내가 부러웠던 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과 그 시간을 꾸준히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에 집중하는 그 순간 무척이나 반짝반짝 빛나며 행복해 보였다. 그림을 그리며 인생을 배워 나가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걸어주는 것, 단순히 그림을 그리면서 얻는 성취감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얻었다는 것.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듯 그림에 쏟았던 시간과 고민들은 다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한 부러움은 동기부여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놓치고 있었던 좋아하는 일, 내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일, 너무 애쓰지 않아도 진짜 나다움을 느끼는 시간을 만들어 줄 취미 생활을 찾아봐야겠다. 삶을 지탱해줄 이유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깐.
불꽃같은 삶을 사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평범한 삶이다. 삶에 순응하면서 자아를 찾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다. 무엇이든 균형이 필요한 법이다. / 186
파란만장하지 않더라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것을 공유하고 느끼는 삶을 살고 싶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20대 시절을 지나, 느려도 괜찮다는 요즘의 추세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무얼 더 바라는 삶은 없다. 오늘도 무사한 일상에 감사하다. / 190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