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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포노포노, 평화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
마벨 카츠 지음, 박인재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호오포노포노가 가장 빠르다.
# 뉴에이지 서적의 번잡함
많은 뉴에이지서적 종교서적을 읽다보면, 화려한 어휘나 난해한 개념에 치여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판타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수행법 또한 난해하고, 분별이 생기기 마련이다. 컴퓨터와 같이 사는 직업이라 명상같은거에 쉽게 빠져들수 없는 나로썬 그것들은 무척이나 어려워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여유로워 질려고 해도, 컴퓨터는 나의 이런 마음 상태를 기다려 주지 못하였다.
# 호오포노포노의 위대함
호오포노포노를 배우면서 .. 그전에 느꼈던 많은 것들 또는 그 이후에 읽었던 많은 것들이 전과 후가 아닌 하나로 일체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비움 +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얼마나 쉽게 접목시키고 이해시킬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 바로 호오포노포노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당신의 마음 속에 라인업 을 다시 짜라.
불교, 뉴에이지, 기독교 로 연결되는 라인선상에서 나는 조금씩 다르다고 느끼면서 책을 읽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것들에 대한 일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 사랑, 감사 두가지면 된다.
호오포노포노는 모든 대상을 "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이 두마디로 포용하는 자세이다. 그러나 이 자세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모든 사람까지 포용해야 한다. 단지 좋아하는 것에서만 하는게 아니고 말이다. 근데 이게 왜 불교,뉴에이지,기독교를 하나로 합쳐주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보고자 한다.
# 분별이 한계를 설정한다.
예수님이 말하는 사랑이 그냥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이상이다. 알겠지만, 예수님은 그 분별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의 분별도 없었구,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며 만족해 하셨지만, 크게 호탕하게 웃는 법은 없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이 같고 모든것이 아름다운 존재이며, 자신의 아들들이었기 때문이다. 웃음은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의 행복이라는 분별이며, 그것조차 분별이다.. 모든게 같게 느껴지면 웃음으로 행복을 찾지 않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비움을 보자. 비우면 무엇이 자리 잡겠는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분별심, 이기심등을 사로 잡으면 무엇이 채워지겠는가? 그렇다. 사랑 그자체밖에 없다. 모든 판단이라는 것들은 분별이 일어나며 그 둘중에 하나를 더 좋아하게 된다. 인간은 두명의 소개팅녀가 앞에 있을때 "난 둘다 사랑합니다."라고 할수 없다.. 두명의 여자중 한분이 맘에 들때 한분을 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분별의 마음을 비워보자. 비교로 한쪽이 우월해 지는 사랑은 공간을 차지한다. 그러나 비우면 가장 넓은 공간이 형성된다, 전체에 대한 절대적 사랑뿐이다.
그렇다 비움과 사랑은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적절하게 우연치 않게 그 목표점을 같이 하게 된다. 그것은 이타적, 절대적 사랑이다. 호오포노포노는 이것을 직접적으로 지향한다. 기도하지 않는다. 응답을 바라지 않는다. 심상화 하지 않는다. 그냥 가장 큰 거대한 절대(선:사랑)에 직접적으로 접근을 시도하려고 하고 있는것이다.
# 위대한 방법 : 호오포노포노
호오포노포노는 실생활 방법 중 가장 명쾌하다. 사람들은 명상을 한다. 나는 명상에 대해 아직 배우지도 그럴 여유가 없는 인간임을 안다. 그러나 나는 실생활에서 감정이나 기억에 대한 반복을 처리하는게 보통 사람들보다 훨신 빠르고 행복한 비움의 상태로 도달하는 방법을 안다. 그 방법은 호오포노포노 .. 비움+사랑이 결합된 객체에 대한 나의 사랑방식 덕분이다. 내(에고)가 아니다. 신의 종속물이다. 또는 내가 신이 다 어떠한 사고방식도 이 방법보다 빠르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생각을 하지 않는것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것.. 과 같은것이고 결국에는 모두 같은 방법론적인 차이일뿐이지만, 호오포노포노는 그중 가장 강력한 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