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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설득
메그 월리처 지음, 김지원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인 메그 월리처는 영화로 만들어진 ‘더 와이프’의 원작 소설 작가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여성의 설득으로 메그 월리처의 작품을 처음 접해보았는데, 메그 월리처가 쓴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한 여성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여성의 설득은, 수많은 사람들이 얽혀 끝없는 고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무리 외쳐도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것 같은 느낌, 나 혼자서 ‘예민한’ 사람이 되는 듯한 기분, 나 하나 이렇게 행동한다고 사회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불신과 같은 내가 생각한 것들이 600쪽 안에 담겨있다. 놀랍게도 이런 생각들이 나오는 과정이 비슷하거나 동일하다.
대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한 학생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고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에 나서며 소리를 내지만 그 소리는 아무도 모른체하는 듯하다. 그 와중에 해당 대학교에 페이스라는 사람이 강연을 하며, 그로 인해 피해자 중 한 명의 인생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페이스를 자신의 인생 멘토로 삼아 지내고 그가 새로 차린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다. 업무 자체는 본인이 원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점차 페이스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신의 능력을 키워갔다. 실제로 페이스는 그를 믿고 일을 맡기기도 했다. 그렇게 점차 더 큰 세상을 접하게 되고,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 빠져들게 된다. 본인 때문에 페이스를 알게 되었다며 취업을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를 페이스에게 전달해달라는 친구, 소중한 사람을 잃은 남자친구와의 뜻하지 않은 이별 등 흔할 수 있지만 너무나도 어려운 고민을 하며 지낸다. 모든 일이 그렇듯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갈 수 있지만, 어떻게든 흘러가게 된다.
내용의 스포일러를 최대한 제외하고 조금 더 이야기를 하려 한다. 가장 크게 공감을 느꼈던 부분은 주인공이 페이스로부터 인정받던 그 순간, 페이스의 칭찬만이 그를 기쁘게 한 것이 아닌 자신 말고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그 사실 때문이었다. 자신이 멘토로 생각하며 지내던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일, 얼마나 기쁘고도 믿기지 않은 일일까. 하지만 그보다도 주인공은 그 일로 인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아서 더욱 기뻤다. 내가 다른 누군가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접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문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앞으로의 세상에 전환점까지 노려볼 수 있는 큰 야망을 갖게 해준다.
일을 그만두고 또다시 빠르게 일을 구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주인공에게 그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애쓰는 그 자체만을 위해서 계속해서 애써야 한다는 그런 강박을 항상 느낄 필요도 없어.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너를 하찮게 여기지 않을 거야.” 우리는 때때로, 아니 대부분 나이와 성별과 해야 할 일을 연결 지어 비교한다. 이런 사회적인 의무감으로 많은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극심한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10대에 학교를 가지 않는다고 해서, 20대 초반에 대학교를 가지 않는다고 해서, 20대 중반에는 취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20대 후반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똑같지 않고, 자신만의 길이 있고 결이 있으니 본인이 걷고 싶은 길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눈치에 쫓기지 말고 본인의 속도대로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여성의 설득을 읽으며 정말 하고픈 얘기가 많았다. 분명 여성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페미니즘 소설이고, 나조차도 내용에 대해서 많은 동감을 했다. 하지만 지금도 글을 써 내려가며 조심스러운 부분은, 아직 페미니즘을 ‘유난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그로 인해 이 책을 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는 우려이다.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도 아니고 단지 여성과 남성을 평등하게 봐야 한다는 이론이다. 정당한 권리 요구와 타협이 아닌 ‘강요’를 말하고 있는 사람은 비판받을만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길 바라는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면, 이 책을 한 번쯤 펴보았으면 한다. 재미있는 얘기인 것은 분명하니까. 매력적인 배우 니콜 키드먼도 이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에 어떠한 설득도 필요 없었다고 하니 두말할 필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