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잘린 뚱보아빠>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
나이절 마쉬 지음, 안시열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남편을 처음 만났던 때 그의 나이가 스물 일곱이었다.시간이 흘러 어느 덧 올해 남편 나이가 서른 아홉.
몇 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9년째 살아오는 동안 나는 그에게도 마흔이란 나이가 찾아올 거란 사실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왜 난 시간이 우리만 비껴갈 것이란 착각속에 빠져 살았던 것일까. 허허 참..
이 책 제목을 첨 봤을 때 솔직히 암울했다. 
 '311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은 마흔에 실직한 한 뚱뚱한 가장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겠지? 뭐, 뻔하잖은가. 그렇다고 첨부터 끝까지 우울하다, 슬프다로 일관할 것 같진 않고.  일러스트를 보니 재밌을 것 같기도 한데?' 
마흔을 코 앞에 둔 남편을 둔탓인지 제목이 나랑 전혀 상관 없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처음에 책을 펴 들면서도 머릿 속은 쇠수세미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는 자신이 맡고 있던 회사가 합병으로 문닫게 된 것을 계기로 일년을 백수로 지냈던 나이절 마쉬의 이야기다. 제목은 '잘린'이란 표현이 들어가지만 지은이의 얘기를 읽다보면 스스로가 방향전환을 하기 위해 휴식을 선택한 셈. 그러니 자발적 실직이라 하는 편이 더 맞겠다. 
저자는 자신이 CEO 로 있는 동안 일에 쫓겨 아이들에게는 엄청 소리를 지르고 어떤 때는 너무 녹초가 되어 집에 도착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차안에서 혼자 라디오를 듣기도 했었음을 고백한다.
합병에 즈음하여 그는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과의 관계도 회복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굳이 그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합병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일자리가 주어졌을테니 일년을 백수로 지내지 않아도 됐을텐데 말이지. 
그는 부인 케이트에게 집을 팔아 작은 집으로 옮기고 실직수당으로 1년을 버티며 놀겠다는 자신의 뜻을 전한다. 부인 케이트는 선뜻 동의해 준다.
아이가 넷이나 있고, 실직수당 외엔 당장 수입이 없어지는데 갑자기 쉬겠다는 남편의 말을 아무 말 없이 따라 준 부인 케이트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낚시나 다니면서 살고 싶다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는 남편의 말에 항상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침묵'만 하는 내 입장에선 말이다. 
 

암튼 저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 네 명의 육아에 깊숙이 참여하여 아이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결속해 나간다. 수영으로 바다를 헤엄쳐 건너갈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연습을 계속한다. 달리기를 하는 등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축쳐진 뱃살 및 몸의 군살들을 뺀다. 』 는 애초의 계획을 꾸준히 실천에 옮긴다. 그리고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알코올 중독도 극복한다. 
친구와 처제의 결혼식을 이유로 아이들 네 명을 놔두고 부인과 단둘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아버지'가 위중하단 소식을 듣고 장남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부모님께 날아간다. 
한번도 칭찬 비슷한 걸 해준 적이 없던 아버지는 왠지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나이절에게이렇게 말한다.  



 "나이젤, 네가 온 게 내게는 큰 의미란다... 그리고 너의 멋진 아들 녀석을 데리고 온 것도 ...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늘 자랑스러웠다... 네 어머니와 나는 네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한다... 호주에서 네가 더 잘 살고 있다는 소식에 우린 정말 기쁘다." P.294 


나이절은 그 말을 듣고 아버지 앞에서, 차로 걸어가면서, 그리고 주차장에서 울었다. 집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울음을 멈출 수 없어 차를 세우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앞에서도 울고 이 책을 쓰는 순간에도 울고 있음을 고백한다. 
 

호주로 돌아온 그는 다시 일할 것을 제의 받아 직장에 복귀하게 된다. 다시 일을 하게 되면서 그는 애초에 목표했던 '본다이-브론테 수영' 계획도 실행에 못옮기게 되고 다시 과거의 패턴으로 슬슬 회귀하는 듯 보인다. 
만약 저자가 책 속에서 일 년동안의 백수생활로 크게 달라져서 다시 일을 하면서부터는 절대 전처럼 생활하지 않았다고 얘기했더라면 이 책의 매력은 크게 반감됐을지도 모른다. 그런 식의 이야기는 자기개발서들에서 너무나도 흔하니까.
한데 저자는 집과 업무사이의 균형을 이루라고 충고하지 않는다. 완벽을 추구하기를 그만뒀다는 말로 대신한다. 무조건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라는 멘트대신 인생은 여전히 고되지만 초점을 바꾸여 완벽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큰 실패를 바라보며 자학하지 않고, 작은 승리들에 대해 자신을 칭찬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가족 간의 행사에서 뭔갈 놓치면 그 순간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순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게 됐다는 것이다.저자는 1년에 걸친 휴식으로 인해 자신의 개인적 여정이 가능케 됐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을 확신한다.
 
우리나라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서, 혹은 일년을 실직하면서도 지극히 궁핍하게만 생활한 모습은 아니기에 오는 약간의 이질감을 옆으로 비껴둔다면 이 책은 아주 재밌다.
일년을 쉬면서 하고 싶었던 수영과 달리기를 원없이 하고, 군살들을 쫙 빼고 윈드 서핑을 하는 저자의 모습은 밑바탕에 그 자신의 굳은 결심과 노력이 있었기에 온전히 가능하다. 특히 알콜 중독의 경우 굳이 술자리를 피하지 않고도 술의 유혹을 이겨 내는 모습을 보면 그가 비록 입원이나 재활이 필요한 중증의 환자까지는 아니었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 아니기에 박수를 보낸다.
치루로 거의 애낳는 여인 수준의 비명을 지르고, 수술 후엔 거즈를 채워 넣고 종이팬티를 입었다는 내용의 책시작부터 심상찮더니 솔직하고 유쾌한 사십 대 주인공의 목소리는 읽는 내내 책 넘기는 속도를 스피디하게 만든다. 재미도 있으면서 은근한 깊이도 있더란 말씀.
"거의 모든 남자들에게 삶이란 없다. 단지 삶이 있는 척할 뿐이다" 란 책표지의 문구를 보며 내 남편이 격한 동조의 뜻으로 자신의 로망인 '일년 휴식'을 선포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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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0-18 0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년 휴식, 제 남편에도 주고 싶은데 일상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