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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벌어주는 폰트
우아한형제들 외 지음 / 안그라픽스 / 2024년 8월
평점 :
밀린 업무로 금요일 야근을 마치고 토요일이 되어버린 새벽, 비바람이 몰아치는 공간을 뚫고 집에 안착했습니다. 느즈막히 일어난 주말. 아점으로 낙점된 보쌈세트를 주문하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배달의민족 앱을 열어서 나름의 선발기준을 거쳐 배달 주문을 마치고 도착하기 전까지 책의 남은 페이지들을 남다른 즐거움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배민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배민폰트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맛있게 읽어내기의 즐거움 말입니다. 기대보다 책은 훨씬 재미있었고, 딱 맞춰 초인종과 함께 배달되어온 보쌈세트는 더할 나위 없이 주말 점심으로 제격이었습니다.
“브랜딩, 마케팅에 폰트를 활용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두 회사의 향방은 너무나 달랐다. 가치를 만들어가는 방식에서 노선이 달랐지만 두 회사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힘을 얻었다. 각 회사의 정체성에 걸맞게 잘 만들어서 키웠다고 할 수 있다.”
- p17,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부회장의 추천사 中
모든 자사의 컨텐츠에 자신들의 개발한 폰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선배 격인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추천사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의 시작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초창기부터 현대카드의 충성고객이었는데 그 이유 중의 8할은 그 디자인적 아이덴티티에 기대고 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기에 처음 배민이 등장했을 때 그 B급 취향의 디자인이지만 그 활용이나 표현하는 방향성이 현대카드의 대척점에 있지만 묘하게 고객에게 소구하는 바, 강렬함에는 양사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분명히 있다 싶었습니다. 역시는 역시라고 했던가요? 이 책을 읽어가노라니 배민이 만들어낸 폰트들 이면에 서려있는 선명한 의지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배달의 민족은 토착 정서가 담긴 지역의 간판이라는 익명의 창작물을 회사의 아이덴티티 시각물로 삼고 더 나아가 폰트 시리즈로 만들어 그 미적 정체성을 정서적 무기로 활용해왔다.”
- p.21, 한명수 우아한형제들 CCO의 ‘배달의민족이 지향하는 버내큘러 디자인’ 中
Vernacular Design. 배민이 지향하며 무모하게 선명했던, 그들이 보여 왔던 궤적의 의도성을 담은 디자인적 정의는, 메이저 중에 메이저가 되어버린 지금의 배민에게는 걸맞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업계 위상과 그 과정을 설명하기에 이만한 테제도 없다 싶었습니다. 노동현실과 계약의 문제 등 종종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배민의 현재는 차치하고, 그 외피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배달의민족 스러움은 오롯이 이 버내큘러 디자인에 기대고 있다 싶었습니다.
그러기에 대표들과 직원들 자녀의 이름에서 명명된 한나체, 주아체, 도현체, 연성체, 기랑해랑체 등이 만들어진 Origin이라 할 사진들과 그 뒷이야기들은 엉뚱하되 참신하고 따스한 구석까지 있습니다. 마치 픽사 영화의 앤드 크래딧에 등장하는 참여하는 동안 태어난 제작진들의 아이들 이름들을 볼 때 같은 뭉클함 같은 감정에 저의 경우는 도달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을지로체에 담긴 사람, 도시, 시간에 대한 고찰이나, 글림체의 놀이와 활용을 고려한다던지 하는 태도를 보노라니 아무렇지 않게 태어나는 그 무엇도 없다는 누군가의 말이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소비자는 페르소나가 있는 기업에 호감을 갖는다. 그리고 호감은 전략을 이긴다.”
- p.105, 로히트 바르가바 (미국 유명 마케팅 전문가)
단순히 폰트의 탄생과 활용의 백서로서 뿐만 아니라, 이 책은 훌륭한 마케팅 이론서이기도 합니다. 이게 뭐야 하며 키득거리다가도 훅 들어오는 카운트펀치 같은 문장들에 단말마를 지르게 되는 순간도 몇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2장과 3장의 폰트 사용법에서 열거되는 열세가지 내부용 지침들과 열가지 외부용 지침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배민의 폰트들이 어떻게 이렇게나 대중들에게 친숙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좋은 답안지 같은 구실을 합니다. 그리고 폰트명이 되었던 아이들이 자라나 짤막한 인터뷰들이 수록된 부분은 삼촌 미소를 자연스레 짓게 만듭니다.
“회사의 끝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묻고는 자신 있게 “망하는 것.”이라고 답하거든요.(웃음) 그러면 구성원들은 모두가 “헐~”할 수밖에 없는데, 사실이잖아요. 모든 기업은 언젠가 다 망해요. 다만 망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느냐의 문제인 거죠.
- p.225, 한명수 우아한형제들 CCO의 '배민다움은 인간다움‘ 中
당연히 기업의 최우선의 지향은 이윤추구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뭐할라고? 하고 시작된 물음에서 배민은 다양한 무형의 자산에 가치를 두게 되었다 합니다. 칭기즈칸도, 로마도, 고조선도 모두 멸망했지만 그 ‘문화’는 남겼다는 생각. 그래서 배민도 그런 문화, 정신을 형식에 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왔다고 설파합니다. 그리고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가 선택한 그 방식이 어떻게 그 기업의 문화와 컬러를 대중들에게 인식시키고 각인시켜왔는지를 이어지는 인터뷰들과 앤솔로지를 통해 안팎으로 선보이며 책은 마무리됩니다. 그야말로 알딱깔센한 책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는 즐겁고 뿌듯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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