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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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중동지역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면전이 임박했다는 기사들, 감각적으로 무뎌져만 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몇 년째 계속되는 전쟁의 이야기들, 세계 각지에서 들려오는 총기사고, 인신매매, 유색인종 차별 테러, 차별반대 시위 등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하루하루를 우리는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현재 서있는 우리나라도 끝없는 증오의 범죄들은 그렇게 크던 작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며 인터넷과 뉴스의 기사거리로 등장했다가 휘발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법정신의학자인 저자는 40년간의 임상 경험과 500여 명의 범죄자 프로파일링으로 누적된 다양한 사례분석을 통해서, 우리 안에 끝없이 재생산되는 증오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무형의 감정이자 어떤 태도이자 현상인 ‘증오’를 학문적으로 접근해보겠다는 쉽지 않은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생각을 적어내려간 프롤로그는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위한 꽤나 중요한 마중물 역할을 합니다.


“나는 증오를 증오한다.... (중략) ... 이 짧은 문장은 증오가 아무리 aly하고 복잡한 감정일지라도, 그것에서는 티끌만큼도 긍정적인 측면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나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 p.008, 프롤로그 中


라인하르트 할러는 그렇게 증오를 응시하기 위해서 총 열다섯 개의 챕터로 나누어 다양한 모습의 증오를 보여주고,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 파괴하는 인생을 멈추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지침까지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몰두해서 읽었던 부분은, 시의적으로 더욱 다가왔던 챕터 12의 ‘디지털 분노-파괴의 네트워크에서 벗어나기’ 부분이었습니다. 양날의 검과 같이 우리 세대에 등장했던 World Wide Web, 즉 인터넷은 소통과 결속의 강력한 도구이면서, 또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향하는 칼끝이 되어 처절하고 신랄한 증오의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공감 능력을 상실해 부끄러운 줄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허약하고 불만스럽기만 하던 자아를 순간이나마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계산은 명백한 착각이다. 인터넷은 긍정적 공감을 무색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메시지 수신자의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목적을 의식하고 이합집산을 되풀이하는 커뮤니티는 공감보다 이해타산을 앞세운다.”

- p.228~229


문제들만 계속 변형 양산되는 증오 이슈에는 정말 해답이 없는 건가? 저자는 다각도의 ‘증오로 얼룩져 가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법’을 제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현될 수 없는 꿈이라 할지라도, 증오를 극복하는 일은 문명사회의 가장 중요한 지향이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여덟 가지 단계를 제시하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됩니다.


1. 금기를 깨는 솔직한 대화

2. 증오와 그 후유증의 계몽

3. 공격성의 승화

4. 극단적 언어의 순화

5. 창피 주기라는 야만적 행태의 척결

6. 나르시시즘에 물든 사회의 극복

7. 존중의 정립

8. 공감 능력의 장려


이 여덟 가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문장은 여러 종교와 철학에서 비슷하게 이야기되는 하나의 문장,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납을 대접하라.” (성경 中)


그렇게 나 먼저, 우리 먼저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증오를 이겨내는 마음, 사랑을 장착해가는 개인과 사회가 되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증오의역습 #모든것을파괴하는어두운열정 #라인하르트할러 #책사람집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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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
사마란 지음 / 고블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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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그려지듯 훑어내며 보여주며 들려주는 펠리치따 오피스텔. 그러니깐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어떻게 구하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저의 첫 월세방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저 2호선 신촌역이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라는 거리적 장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왜, 어쩌다 그런 단칸방을 자취방으로 고른 것인지 지금도 스스로 이해가 안되는 500에 25만원 하던 그곳. 그렇게 펠리치따와 그곳의 인물들을 따라가노라니 금새 내적 친밀감이 생겨버렸고, 이내 현월동 주민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을 말해도 탈이 나지 않을 적당한 거리의 낯선 사람이 필요한 자들이 모여드는 공간. 산 사람에게나 죽은 사람에게나 미용실은 그런 곳이다.”
- p.38

그렇게 미용실 주인 챠밍, 복덕방 주인 도깨비, 판과의 메신저 말하는 고양이 플루토, 판, 수면구슬, 영물이 되어버린 늙은 개 해피는, 영일 슈퍼 할머니, 비너스 호프, 지물포, 펠리치따 오피스텔, 언덕 위 꿈공장과 생과 사를, 시간과 공간을 나누어 쓰며 희노애락이 그 관계들 사이를 스쳐 지납니다. 어릴 적 TV에서 봤던 <한지붕 세가족>의 알콩달콩, 시끌벅적하던 그 골목길을 공유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회 초년생 시골청년의 서울살이 하던 그 나즈막한 언덕의 신촌로터리 골목 동네가 떠올랐습니다.

<챠밍 미용실>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등장하는데, 몇 개의 슴슴한 문장만으로 인물들의 삶을 담백하게 구축하고 그 삶들의 현재에 쓰윽 독자를 도착시키는 작가의 입담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나게 따라갈 마음을 지니게 해줍니다. 그래서 시리즈물로 나아갈 토대와 설정을 잘 구축해놓은 <챠밍 미용실>은 그래서 영리함이 느껴지면서도 정감 가득한 독특한 ‘사마란 월드’를 하나 더 구축해냈습니다.

때마침 문이 열기고 손님이 들어왔다. 미소를 활짝 보인 챠밍이 애써 밝게 외쳤다.
“어서 오세요. 챠밍 미용실입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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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4.9.10 - no.56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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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포장을 열어서 책을 꺼내드는 순간 깜짝 놀라서 그만 책을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이토록 순수한 핑크라니! 그리고 사진 가득 핑크핑크에 핑크 원피스를 입고 해맑게 웃고 있는 소녀까지, 순간 소.오.름.
이번 이슈의 주제어는 다름 아닌 ‘꾸꾸꾸’. ‘꾸안꾸’는 아는데 ‘꾸꾸꾸’는 생소했습니다. 아마도 제대로 꾸며서 꾸밈의 최선을 다하는 어느 지점일거라 예상했고, 그것이 ‘꾸미고 꾸미고 꾸민’, 즉 한껏 힘 줘서 스타일링을 했다는 의미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물론 ‘꾸며도 꾸질꾸질’이라는 의견도 있던데, 이건 ‘억까’의 느낌을 지울 수 없으나 뭐 의견은 의견인 것이고, 언어는 언제고 변신하고 탈피하며 변질되곤 하니 지켜볼 일이다 싶습니다.

“튜닝의 끝이 순정인 것처럼 사실 꾸밈의 최종 보스는 비움이 아닐까. 맥시멀리스트의 끝은 미니멀리스트 아닐까.”
- p.003, editor’s note 中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글로벌 1위까지 찍었다는 <흑백요리사:요리 계금 전쟁>의 4회에 등장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한식대가 이영숙과 장사천재 조사장과의 대결. 심사위원의 눈을 가리고 오로지 맛으로만 승부하는 과정과 결과에서 언급되는 ‘덜어 냄의 미학’이 이번 이슈의 ‘꾸꾸꾸’와 묘하게 겹쳐져서 일겁니다.

“무지개색을 앞세우는 퀴어축제가 열리는 시대에도 여전희 “남자는 블루, 여자는 핑크”라는 컬러 코드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젠더플루이더와 팬젠더가 거론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성별 이분법은 우리의 삶을 집요하고도 촘촘하게 지배한다는 현실을 말이다.”
- p.067, cover story 中

매 이슈가 보여주었듯, 큐레이팅된 review, chat, issue, essay, key-word, short story, novel 각 꼭지들은 읽기의 즐거움으로 꾸꾸꾸 되어있었고, 특별히 cover story는 책 전체의 컬러 안배가 주는 즐거움을 포함해서 이번 이슈를 관통하는, 어쩌면 의외의 이야기인 비움과 젠더 이분법을 꺼내 놓으며 외연과 내연을 채워내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역시나, 당연하게도 정기간행물의 참재미, 김숨, 전예진, 권혜영, 이서수, 김나현 작가의 연재소설들은 아껴가며 읽게 되는 오아시스랍니다.

길고 길었던 여름도 이제 가고 짧을 것이 분명한 가을을 오롯이 느껴보는 것에 조금 더 최선을 다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가을 공기를 가득 채우고 생각을 다시 비워내고 나면 하이얀 겨울이 성큼 도착해있겠지요.

#문학잡지 #악스트 #Axt #꾸꾸꾸 #악독단
#도서제공 #악독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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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벌어주는 폰트
우아한형제들 외 지음 / 안그라픽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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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업무로 금요일 야근을 마치고 토요일이 되어버린 새벽, 비바람이 몰아치는 공간을 뚫고 집에 안착했습니다. 느즈막히 일어난 주말. 아점으로 낙점된 보쌈세트를 주문하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배달의민족 앱을 열어서 나름의 선발기준을 거쳐 배달 주문을 마치고 도착하기 전까지 책의 남은 페이지들을 남다른 즐거움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배민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배민폰트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맛있게 읽어내기의 즐거움 말입니다. 기대보다 책은 훨씬 재미있었고, 딱 맞춰 초인종과 함께 배달되어온 보쌈세트는 더할 나위 없이 주말 점심으로 제격이었습니다.

 


브랜딩, 마케팅에 폰트를 활용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두 회사의 향방은 너무나 달랐다. 가치를 만들어가는 방식에서 노선이 달랐지만 두 회사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힘을 얻었다. 각 회사의 정체성에 걸맞게 잘 만들어서 키웠다고 할 수 있다.”

- p17,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부회장의 추천사

 

모든 자사의 컨텐츠에 자신들의 개발한 폰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선배 격인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추천사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의 시작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초창기부터 현대카드의 충성고객이었는데 그 이유 중의 8할은 그 디자인적 아이덴티티에 기대고 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기에 처음 배민이 등장했을 때 그 B급 취향의 디자인이지만 그 활용이나 표현하는 방향성이 현대카드의 대척점에 있지만 묘하게 고객에게 소구하는 바, 강렬함에는 양사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분명히 있다 싶었습니다. 역시는 역시라고 했던가요? 이 책을 읽어가노라니 배민이 만들어낸 폰트들 이면에 서려있는 선명한 의지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배달의 민족은 토착 정서가 담긴 지역의 간판이라는 익명의 창작물을 회사의 아이덴티티 시각물로 삼고 더 나아가 폰트 시리즈로 만들어 그 미적 정체성을 정서적 무기로 활용해왔다.”

- p.21, 한명수 우아한형제들 CCO배달의민족이 지향하는 버내큘러 디자인

 

Vernacular Design. 배민이 지향하며 무모하게 선명했던, 그들이 보여 왔던 궤적의 의도성을 담은 디자인적 정의는, 메이저 중에 메이저가 되어버린 지금의 배민에게는 걸맞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업계 위상과 그 과정을 설명하기에 이만한 테제도 없다 싶었습니다. 노동현실과 계약의 문제 등 종종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배민의 현재는 차치하고, 그 외피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배달의민족 스러움은 오롯이 이 버내큘러 디자인에 기대고 있다 싶었습니다.

 


그러기에 대표들과 직원들 자녀의 이름에서 명명된 한나체, 주아체, 도현체, 연성체, 기랑해랑체 등이 만들어진 Origin이라 할 사진들과 그 뒷이야기들은 엉뚱하되 참신하고 따스한 구석까지 있습니다. 마치 픽사 영화의 앤드 크래딧에 등장하는 참여하는 동안 태어난 제작진들의 아이들 이름들을 볼 때 같은 뭉클함 같은 감정에 저의 경우는 도달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을지로체에 담긴 사람, 도시, 시간에 대한 고찰이나, 글림체의 놀이와 활용을 고려한다던지 하는 태도를 보노라니 아무렇지 않게 태어나는 그 무엇도 없다는 누군가의 말이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소비자는 페르소나가 있는 기업에 호감을 갖는다. 그리고 호감은 전략을 이긴다.”

- p.105, 로히트 바르가바 (미국 유명 마케팅 전문가)

 

단순히 폰트의 탄생과 활용의 백서로서 뿐만 아니라, 이 책은 훌륭한 마케팅 이론서이기도 합니다. 이게 뭐야 하며 키득거리다가도 훅 들어오는 카운트펀치 같은 문장들에 단말마를 지르게 되는 순간도 몇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2장과 3장의 폰트 사용법에서 열거되는 열세가지 내부용 지침들과 열가지 외부용 지침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배민의 폰트들이 어떻게 이렇게나 대중들에게 친숙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좋은 답안지 같은 구실을 합니다. 그리고 폰트명이 되었던 아이들이 자라나 짤막한 인터뷰들이 수록된 부분은 삼촌 미소를 자연스레 짓게 만듭니다.



회사의 끝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묻고는 자신 있게 망하는 것.”이라고 답하거든요.(웃음) 그러면 구성원들은 모두가 ~”할 수밖에 없는데, 사실이잖아요. 모든 기업은 언젠가 다 망해요. 다만 망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느냐의 문제인 거죠.

- p.225, 한명수 우아한형제들 CCO'배민다움은 인간다움

 

당연히 기업의 최우선의 지향은 이윤추구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뭐할라고? 하고 시작된 물음에서 배민은 다양한 무형의 자산에 가치를 두게 되었다 합니다. 칭기즈칸도, 로마도, 고조선도 모두 멸망했지만 그 문화는 남겼다는 생각. 그래서 배민도 그런 문화, 정신을 형식에 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왔다고 설파합니다. 그리고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가 선택한 그 방식이 어떻게 그 기업의 문화와 컬러를 대중들에게 인식시키고 각인시켜왔는지를 이어지는 인터뷰들과 앤솔로지를 통해 안팎으로 선보이며 책은 마무리됩니다. 그야말로 알딱깔센한 책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는 즐겁고 뿌듯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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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을 말하다
장강명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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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울면서 다녔어. 회사 일보다는 출퇴근 때문에.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 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 p.16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 민음사 (2015)


최근 개봉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보고나서 바로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었습니다. 영화 속의 계나의 표정과 대사들 사이에 숨어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페이지마다 스며있어서, 역시나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읽은 <소설, 한국을 말하다>의 첫 이야기가 또다시 장강명 작가의 것이었습니다. 책에서 책으로 건너왔지만 발간 기준으로는 10년, 이야기 속 배경은 2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


“그 지시가 잘못이에요. 제대로 해결된 게 없는데 왜 피해야 돼요?”

- p.17 <소설 2034> 장강명


“아니야, 그걸 그렇게 부르면 안돼. 그건 땜질이라고 하는 거야. 그 땜질 때문에 사교육, 번아웃, 어킹푸어, 고물가, 명품 문제가 10년째 제자리인거야.”

- p.22 <소설 2034> 장강명


2010년대 대한민국의 키워드는 ‘헬조선’과 아이들 (아프니까청춘, N포세대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극장에는 <베테랑>, <성실한 날의 앨리스>, <내부자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등이 걸렸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 좀 나아졌습니까? 행복해졌습니까? 뭐 다른 이야기꺼리가 있습니까? 글쎄올시다. 최소한 장강명 작가가 바라본 2015-2024-2034년의 시간들에서 우리네 인생의 팍팍함과 비정함과 불행함은 삐까삐까 해보입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 지금 한국은, 거지방, 고물가, 가족간병, 오픈런, 번아웃, 중독, 새벽배송, 외국인노동자, 반려견, 다이어트 같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 한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을 주변 대소사(?)의 여전함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사이사이 출몰하는 사람 사이의 온기와 기대가 그나마 어떻게든 살아온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격려가 되어주기는 합니다.


““사람을 그냥 때렸다는 게 말이 돼? 때린 놈들은 풀어주고 맞은 사람을 가두는 게 말이 되냐고. 무슨 이런 법이 있어.” 이 씨는 경찰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빈은 자신의 처지보다 이 씨의 오토바이가 부서지지 않았는지 더 걱정이 됐다. 쩐호우빈의 한국에서의 두 번째 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p.179 <빈의 두 번째 설날> 백가흠


연일 반복되는 사건사고와 출렁이는 경기지표, 자기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정치꾼들, 내 밥그릇 건들지마 하면서 어르렁거리며 삭발하네 단식하네 하는 거짓약자, 이익집단들. 

하지만 우리 사이의 연대와 자연스레 배려하고 걱정해주고 지지해주는 그런 희망 덕에 여전히 여기 이곳 한국의 우리는 살아보고 있습니다. 그런 희망만으로 살 수 없으나, 때론 그런 희망만으로 살 수 있는 게 삶이기도 하다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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