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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평점 :
학창 시절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 영화 <어비스>를 봤습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타이타닉>, <아바타> 시리즈의 그 감독이죠.
예나 지금이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영화라는 종합예술의 결정체에 최신의 ‘과학기술’을 멋지게 집어넣는 감독으로 유명했습니다. 영화 <어비스>는 제목 그대로 심해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그 당시만해도 신기하기만 했던 몰핑 기법을 사용해서 유체느낌을 최초로 실사영화에서 시각화해냈고, 그 시각효과 덕분에 정말 화면 가득 펼쳐지는 심해 장면과 의문의 존재가 펼쳐보이는 이야기에 단 한순간도 의심없이 풍덩 빠져서 봤었습니다.
그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심해에 대해 그닥 가진 정보들이 없었기에 그저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싶습니다. 물론 그 영화도 그래서 공포의 외피를 둘렀던 듯 하고요. 인류의 손이 닿지 못한 공간에 도달하는 것의 경이는 그렇게 공포를 동반하곤 했습니다.
“긴 내복 위에 방염복을 입은 나는 갑판 위에 서서 창백한 은빛일출을 바라보며 바람을 가늠했다.”
-p.21, 프롤로그 첫 문장
언제나 책을 처음 마주하면 저자가 책을 내놓기 전까지 아마도 끝까지 고민했을 첫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펼쳐서 읽어보곤 합니다. 이 책도 예외없이 그렇게 했고, 첫 문장은 태평양의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잠수하기 위해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그냥 잠수가 아닌,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잠수정에 탈 준비를 하는 것.
“시간을 빼고 나면 존재만 남는다. 심해에서는 방향을 잃는 대신,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p.406, 에필로그 전 마지막 문장
그리고 심해를 원없이(?) 들락거리며 써내려간 저자는 마침내 자신만의 존재론적 대답에 이릅니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심오한 철학적 메타포나 사유의 숲이나 바다를 탐구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세상이치가 그러하듯 깊고 고요한 어떤 곳에 도달하면 절대자와 그 앞에 있는 나라는 존재를 인식할 수 밖에 없나 봅니다.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정말이지 찬란한 세상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하고 그 세상에 이르는 과정을 특유의 글빨로 차근차근 써내려 갑니다. 기행문이자 일기이자 또 과학서적입니다. 하지만 너무 잘 읽히고 너무 흥미롭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삽입된 사진들, 특히 심해 생명체들!,은 그 여정의 흥을 더해줍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구글에 검색만 해도 더 섬세하고 다양한 시청각자료를 얻을 수 있으니.
또한 이 책은 다양한 심해를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각 분야에서 자신들의 삶을 연결하고 녹여내며 그토록 간절하게 때론 무뚝뚝하거나 운 좋게(?) 푸르고 푸른 바다에 녹아든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죠.
“심해에서는 누구든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p.427, 감사의 말 中
개인적으로 대하역사소설 류를 잘 읽어 내지 못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무리지어 떼지어 들고나는 무수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름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사람들의 관계 때문입니다. 그런 저에게 이 책의 이야기들에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생물들 이야기는 제겐 나름의 허들이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크고 깊은 심해 속에 모두 들어가면 개별의 존재 인식도 소음도 없이 그저 암흑과 적막만 있다는 것이 나름의 면죄부가 되어 그저 읽어내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기만 했다’고 할만 하니, 이게 저의 마지막 문장쯤으로 해도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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