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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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윤혜정의 이력에 <필름2.0>에 먼저 눈이 갔습니다. 대한민국의 영화시장이 크게 도약하며 함께 영화잡지들이 관객과 대중에 소구력을 높여가던 시기였습니다. <씨네21>과 <키노>로 양분되던 중, 여전히 남아있던 해외브랜드 잡지 <프리미어> 그리고  별특징 없는 <CINEBUS> 그리고 새로운 포맷과 에너지로 잉태되어 탄생했던 영화주간지가 바로 <필름2.0>이었습니다. 지금도 때깔만큼이나 속이 알찬 내용들로 폐간 소식이 내내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이렇게 남겨진 독자들 머리와 마음 속의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는 예술의 어느 단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종일관 모두가 명징해지길 종용하는 세상에서 이 책이 잠깐 동안이라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불확실성의 아름다움을, 뒤엉킨 시공간의 환상성을 경험하도록 안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p.13


이 책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저자가 프롤로그에 제안한대로, ‘느리게, 천천히, 하나씩 꺼내어 읽듯’ 하면 좋을 책입니다. 제안된 시간 내에 읽어내느라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내리달리 듯 읽었지만, 서재 한켠에 있는 듯 없는 듯 꽂아뒀다가 머리가 얽혀버린 듯 할 때 아무 페이지라도 펴서 읽으면 좋을 글들이 속속들이 채워져있습니다. 하나의 챕터로 읽어도 좋고 그저 몇 개의 문장을 이은 페이지를 뒤적여도 좋겠다 싶습니다. 


  “시인 폴 발레리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예술가 한 명의 가치는 천 세기의 시간과 맞먹는다.' 말하자면 위대함의 척도를 측정하는 것은 시간에 대한 초월성인 겁니다. 박선민 작가의 영상 작품 <버섯의 건축>(2019)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문장이다.”

  -p.23


  “작가의 흔적이 사라진 예술 작품이 더욱 위대하게 다가오는 건 그 빈자리를 관람객에게 내어 주고는 기꺼이 삶의 일부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인간에게 여백을 내어주었 듯 이제는 현대미술이 그 역할을 자처한다.”

  -p.195



공간과 시간의 궤적을 따라 마주한 예술, 예술작품, 예술가들을 열다섯 개의 글타래로 엮어내고 있어 개별 글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은 구조입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감상은 그 태도와 생각이 베어진 글이라서 그런지 따로 또같이 읽혔을 때 괜찮은 예술 감성을 일깨워내는 듯도 합니다.


서울 아트선재센터

국립현대미술관

아핏찻퐁 위라세타쿤

서울 리움 미술관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이렇게 가본 곳, 봤던 영화의 감독, 읽은 책과 작가들이 언급되는 글들을 지날 때면 조금 더 마음이 갔습니다. 특히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다룬 마지막 장은 남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면서 차곡차곡 쌓인 사유들은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소박하지만 그만큼 견고한 내러티브를 갖추고 있다. 

자기 삶을 바쳐 얻은 서사는 언제나 옳다.”

  -p.475


  “갤러리에서 일하고 나서야 나는 미술을 애호한다는 것과 미술 일을 한다는 것의 차이는 다름 아닌 나의 시간과 노동으로 그 마음을 책임질 수 있는지의 여부에서 기인한다는 걸 알게 됐다.”

  -p.477


대체로 확신에 찬 강한 문장들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책은, 마지막 장에 그 힘을 도처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술을 바라보고 감상하는 소비자에서 그걸 준비하고 관리하며 보여주고 공유하는 공급자로 미술일을 하는 다른 위치에서 바라본다는 것의 상대성을 또박또박 들려주는 목소리를 통해, 예술 분야 뿐만 아니라, 세상 어떤 일들에서도 통용될 가치를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라지지 않을 예술이란, 그런 예술을 구조하고 향유하고 공유하는 삶이란, 그런 태도를 견지하고 살아내는 것이 어쩌면 삶이라는 예술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까지 미치기도 했지만, 이래저래 예술의 중심에서 영원을 외치는 뜻깊고 속깊은 목소리가 내내 설레였던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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