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 라이프 - 남무성의 음악 만화 에세이
남무성 지음 / BOOKERS(북커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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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서 재즈를 떠올려보노라면, 그 존재를 처음 인식한 것은 아마도 아버지의 턴테이블 위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앰플리파이어를 통해 우퍼 스피키를 둥둥 울리던 더블베이스 퉁기는 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여러 세션들이 미끄러지듯 터져나오는 넓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집을 풍성한 공간으로 변모시켰던 그 순간이었지 싶습니다. 


쳇 베이커, 존 콜트레인, 닐 암스트롱, 빌리 홀리데이, 빌 에반스, 허비 행콕…

찾아 듣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그 비정형의 정형성이라 나름 규정지은 재즈를 친숙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무성 작가. 남무성 작가의 EBS강의들과 만화를 곁들인 친절한 재즈 서적들이 들려준 재즈 이야기에 빚진 바 크다 싶습니다.


그런 채권자(?)의 신작 <스윙 라이프>는 이전에 여러 매체들에 기고했던 컨텐츠들과 새로이 추가된 이야기들로 초록의 커버 안에 꽉 들어차있습니다. 특히 이번엔 글과 그림들이 컴필레이션된 과정에서 예상가능하듯 문학과 영화 등이 중간중간 끼어들고 작가 자신의 신변잡기적인 스토리까지 풀어내고 있는데, 이런 구성이  책 안에서 나름의 싱코페이션을 만들어내는데 그 덕분에(!) 독서에 리듬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언젠가 강연에서 ‘음악 만화를 잘 그리는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진정성’이라고.”

-p.092


음악에 대한 이야기와 작가 스스로의 삶의 단면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분들이 특히 좋았습니다. 작가가 언급했던 ‘진정성’ 그러니까 그 진심이 오롯이 도드라지는 글과 그림들이 담겨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 혹은 감사가 의도대로(!) 읽는 저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서울재즈쿼텟’이 그랬고, 개인적인 기억도 떠올랐던 공간 ‘원스인어블루문’이 꼭지가 그랬습니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서. 삶이란 그렇게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 흔들흔들 스윙하는 것, 그러다 간혹 만나는 위기나 긴장 상황에 호흡을 가다듬고 또 무뚝뚝하게 나아가보는 것. 그렇게 살아내는 스윙 라이프, 재즈 라이프의 정신을 쇄신해보는 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리 기사의 돌아갈 길을 생각하는, 동전까지 챙겨서 옛날 우동집을 향하는 마음을 떠올리는, 주변을 향하는 시선을 견지하고 또 그런 음악스런(!) 삶을 살아보자는 작가의 권유가 따스하다 못해 뜨끈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스윙라이프 #남무성 #북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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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뽑은 흰머리 지금 아쉬워 - 노인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담다 실버 센류 모음집 2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지음, 이지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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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히 보게된 <안의 작사-사쿠라기 안, 하이쿠 시작했습니다>라는 2부작 일본 드라마가 있습니다. 시골 출신의 여대생 (히로세 스즈 분)이 우연한 계기로 하이쿠와 랩을 다루는  프로그램에 엮이면서 벌어지는 로맨스물이었습니다. 유치했지만 하이쿠를 다루는 방식이나 그 시어들의 함축성이나 서정성은 제법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책 <그때 뽑은 흰머리 지금 아쉬워>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에 이은 모음집 2편에 해당합니다. 세줄짜리 센류에 담겨있는 가벼운 위트와 묵직한 메시지가 일본 전역을 휩쓸었다고 하니, 그 다양한 문화적 섭취력과 어르신들에게 이런 기회들이 주어지는 분위기가 조금 부럽기도 했습니다.


 일드 <안의 작사…>에서 다루는 하이쿠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그때 뽑은 흰머리 지금 아쉬워>의 센류가 무슨 차이가 있나 찾아봤습니다. 형식상 5-7-5 의 음률 형식의 정형시라는 측면에서 하이쿠와 센류가 동일하나, 그 차이는 센류는 자연이나 이를 빗댄 내용이라면, 하이쿠는 그 주제나 내용면에서 훨씬 자유로워서, 당대의 사회, 정치, 경제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담거나 일상의 소소한 관찰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렇게 센류의 특징 중 ‘일상의 소소한 관찰’을 그 주요 소재로 합니다. 특히 ‘실버 센류’ 공모전을 통해 가려뽑은, 노년을 활기차게 즐기는 내용이나, 유로실버타운의 생활을 주제로 삼은 작품들이라 주로 건강, 치매, 죽음, 세월의 무상함 등을 짧은 세줄 시에 가볍게 녹여내고 있습니다.


  “치매 예방차

   구입한 그 책

   벌써 세 권째”

  -p.81


  “자식이 내 사진

   찍으니 걱정된다

   여기 병실인데”

  -p.106


한번도 직접 경험해보지도 누군가의 경험담도 들을 수 없기에, 그 막연함이 공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온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자 정답인 ‘죽음’을 대하는 즐거움과 초연함이 담긴 센류들을 보고 있자니 웃프다가도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합니다. 모두 나의 이야기이거나 나의 이야기가 될 이야기들이기에.


  “아 늙었네

   하지만 괜찮아

   다 늙었어”

  -p.120


그래서 이 책은 저에게 위안이었습니다. 그렇게 어제보다 오늘, 하루 더 다가서는 그 끝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를 한 수 배워냅니다. 

저만의 센류를 써내려가 볼까 싶습니다.



#그때뽑은흰머리지금아쉬워 #실버센류모음집 #센류 #이지수옮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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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 쥐기 내러티브온 5
김영은 외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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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아픈 만큼 똑같이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p.34, <눈송이 쥐기> 中


  “하지만, 늘 그렇듯 그들은 이방인에게 울타리 밖 이야기를 기대했다.”

  -p.41, <만한에서> 中


  “보내주라고?

아빠는 두 번째 엄마가 떠난 지 3년이 되도록 엄마의 물건을 정리하지 못했다. 떠나보낸 사람을 오래 마음에 

품고 살았으면서,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면서.”

  -p.213, <잇기> 中



요며칠 동안, 올 들어 가장 기온이 낮은,  호되게 차가운 겨울의 매운 맛을 진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묵은 해를 지워냈고 갓지은 새해를 맞아들였습니다. 해가 바뀌었다고 세상이 바뀌거나 사람들이 바뀌거나 관계가 바뀌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는 새로운 달력을 걸고 반성과 후회를 통과하고 계획과 기대를 해봤습니다.


안온북스의 내러티브온 시리즈로는 처음 만난 <눈송이 쥐기>는 갓 탄생한, 듯 보이지만 오래 우려냈을 듯한, 소설가들의 새로운 소설들을 모아서, 그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책 쯤으로 보입니다.


다섯 소설가들의 다섯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소재와 사건들, 인물들이 전혀 무관한 개별적 소설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읽고 나면 그 다섯 이야기 속은 인물들은 언젠가 만난 적이 있거나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들의 주인들인양 익숙한 공감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해결받지 못한 채 감정 강요에 숨막히는 혼돈의 거리를 걷는 방과후 교사, 꿈을 품고 살아낸 타국에서 살아내는 삶의 녹녹치 않음에 시원섭섭한 이별을 고하는 이방인들, 언어와 생각들의 혼재와 자격지심과 차별과 오해에 녹진해진 맘과 몸의 동시통역사, 꽉막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알수없는 죄책감만 늘어가는 아이들, 잃어버리고서야 알아가는 빈 구멍의 실체와 친구들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그렇게 시간은, 우리네 인생은, 홀로 때로 함께 나눠가진 분량만큼의 슬픔과 분노와 무표정과 표현할 수 없는 순간들과 놓쳐버린 기회들과 끊임없이 또다시 다가오는 두려움의 사무침에 또 하염없이 침잠해내야만하는 우리의 아이들과 동생들과 친구들을 떠올리고야 말게 됩니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서도 한참동안 그렇게 <눈송이 쥐기>가 품고 있는 이 다섯 이야기 속에 마음은 계속 머무르고만 있게 됩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비어버린 마음을 들어보고 싶어만 집니다.



  “왜 그 흔한 멕시코 음식조차 먹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좀더 있었다면 달랐을까. 선윤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만한이 선윤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p.66, <만한에서> 中


  “내 얘기는 아니고 친구 얘긴데요. 그렇게 시작하면 세상에 못 할 이야기가 없다.”

  -p.105, <입에서 입으로> 中


  “영하였고, 밤이었으므로, 그들은 너무 추었다. 

  -나는 벌을 받기 싫어.

  -나도 그래.”

  -p.198, <몬 몬 캔디> 中



#눈송이쥐기 #내러티브온시리즈 #안온북스

#김영은 #박소민 #이지혜 #조찬희 #주이현

#나그리고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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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 신의 실수
류시은 외 지음, 연상호 기획, 최규석 만화 / 와우포인트 퍼블리싱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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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세계관의 창조자 중 하나인 연상호 감독의 발분에서도 언급되었듯,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가 뻗어 낸 세계관과 파생된 이야기들이 만들어낸 작품들, 그리고 저 유명한 <스타워즈>가 지금껏 우려내고 있는 세계관의 확장과 프리퀄, 스핀오프, 씨퀄들은 그렇게 원작에 흡수되고 분리되며 거대한 가지를 뻗어가는 나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확장의 과정과 역사가 오히려 원작의 이야기와 세계관에 흠집을 내거나 원작의 팬들에게 호되게 당하게 되거나 그를 피하기 위해 소극적인 변주에 그치거나 나락으로 떨어진 숱한 예들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러기에 다소 위험을 감수하고 기획되었을 이번 앤솔러지 <지옥 : 신의 실수>는 그래서 조바심을 내면서도 걱정을 잔뜩 안고 펼쳤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다섯 명의 작가들이 분명한 몇가지 설정들 위에서 펼쳐낸 다섯 개의 이야기는 감히 ‘지옥 유니버스’를 견고히 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며, 프리퀄, 씨퀄, 스핀오프 같은 또다른 <지옥> 시리즈들을 상상하고 기대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연상호과 최규석 두 크리에이터의 의도가 채워지며 그들의 손을 떠나는 시발점이 된 작품일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역시, 만화와 영상으로 만나는 눈과 귀로 만났던 이야기와는 다른 감각, 문장들이 눈으로 쏟아져들어오는 정보와 그에 기반한 상상력만으로 <지옥>의 세계관을 만나는 것은 남다른 구석이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말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그 시점과 죽음 이후에 대한 미지에 기인하고 이를 피하거나 연장하고자 인류는 수많은 발명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을진대, 과연 그 시점을 알게된다면 그 공포는 경감되거나 사그라들것인가? <지옥>은 그렇지 않다고, 그 과정에서 숨겨진 개개인들의 공공연한 비밀들이 공개되어 시연에 이르는 과정의 또다른 국면의 공포가 생성되며, 때로는 이것이 사적제재 혹은 구원을 가하는 무리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까지 이른다는 데에서 그 세계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에게 고지는 더 이상 사형 선고가 아니다. 대충 형량을 채우다 운 좋으면 출소하는 개념이거나, 특별 사면의 희망이 있는 미지의 징역살이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p.36, <지옥 뽑기> 中


 “지금까지 고지와 시연이 살인, 즉 범죄로 분류되지 않은 것은 거기에 인간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p.100, <묘수> 中


 “수임은 궁금했다. 세상은 거짓과 광기로 뒤덮여 비유로서가 아닌 실제의 지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신이 세상을 손수 지옥으로 만든단 말이지?”

 -p.124, <불경한 자들의 빵> 中


 “두렵고 또 두려워하는 게 합쳐져야 진정한 공포가 되는 거야.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거. 언제까지 두려워할 거야. 우리라도 세상을 구원해야 하지 않겠어?”

 -p.173, <새끼 사자> 中


 “애초에 왜 지옥이 나를 불렀는지도 모르겠어. 내 죄가 그토록 큰 것이었을까? 어쩌면 아무 의미 없는지도 모라. 그냥 신의 실수일지도 모르지.”

 -p.233, <산사태> 中


지옥 세계관에서 출발했지만, 또다른 지옥의 면면을 그리고 이를 마주하는 인간 군상들의 맘과 몸을 훑어내듯 그려내는 자작자작한 문장들, 그리고 자꾸만 그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영상을 상상하게만 하는 묘하고도 생생한 경험을 하게하는 다섯 개의 동굴을 통과해낸 듯 했습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 놀이 동산에서 만났던 ‘귀신의 집’ 같은 공포의 추억을 소환해낸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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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 - 세기전환기의 멜랑콜리
강덕구 지음 / 을유문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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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주제는 어둠과 빛, 단독자와 다수, 시작과 끝, 현실과 허구처럼 양극단에 위치해 서로 대비되는 가치 간의 투쟁이다.”

  -p.11


확실히 20세기는 달랐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21세기와는 달랐다는 의미입니다. 간혹 기사로 접하는 내 젊음의 시간을 뜨겁게 했던 작가, 감독, 배우, 가수, 연주자의 부고는 그렇게, 아직 끝나지 않은 듯 여겨지는 20세기의 황혼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20세기의 종말은, 그 시대만이 가지는 특별함 때문에 더욱 애틋합니다.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그런 시대를 다시는 볼 수 없으리란 슬픈 예감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제가 읽은 이 책은 그런 20세기에 대한 작가의 고해성사이자, 여전히 입안에 감도는 그 시절의 맛을 그리워 하는 연애편지에 다름아닙니다.


  “이 책은 어둠의 이러한 두 가지 양식을, 즉 어린 시절 나를 감쌌던 따듯한 어둠과 죽음을 선포하는 어둠을 내 나름대로 번안하고 해석한 결과물이다.”

  -p.21


물론 이런 고해성사나 연애편지 류의 글들이 담는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확장시켜 시대의 공기로 확산시켜내는 시도에는 분명한 한계 혹은 아쉬움이 남게 마련인데, 이 책에서는 중간중간 예로 드는 영화들, 문학작품들, 음악들, 정말 유명해서 영화사나 문학이론서, 음악사 관련 책들에서 익숙한 제목들이지만, 을 많은 경우 접해본 적 없는 컨텐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략적인 의도는 알아챌 수 있게 이야기를 풀어 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넘겨짚기가 되기 일쑤입니다. 물론 언급된 영화들을 리스트업해서 영상원이나 도서관을 섭렵해보리란 다짐을 일단 해봅니다.


특히나 <끝: 1990년대에 데뷔하여 2000년대에 절정을 맞이한 미국인 영화감독들의 눈에 비친>에 언급된 감독들과 영화들을 통해 풀어낸 20세기 끝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꽤나 정성들여 읽게 되는 구석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헐리우드 키드로 살았던 유년기의 기억이 입시의 과정에서 문화적 권태기를 가까스로 통과하고 마주한 문화적 해방감이 주어졌던 바로 그 시기와 그야말로 딱 맞아떨어졌던 그 시간들, 그 공기와 그 시절의 마음들이 마구 떠올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20세기에서 끝에 등장한 영화감독들, 제임스 그레이, 웨스 앤더슨, 폴 토마스 앤더슨, 쿠엔틴 타란티노, 노아 바움백, 이 보여준 20세기의 아름다움 또한 오늘날 죽음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어떤 영웅이기도 한 그들을 T.S 엘리엇의 시구로 인정해내는 폼은 정말 미쳤다 싶었습니다.


이 책은 크게, 두개의 챕터로 나뉘는데, 1부는 “20세기, 집을 떠난 영웅들”을, 2부는 “21세기, 집을 잃은 영웅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후반에서는 21세기 한국문학계에 등장한 어떤 경향, 특히 정지돈 작가와 박대겸 작가의 작품들과 주변부의 흐름들을 포착하는데 노력합니다. 또는 영화와 음악에서 포착한 유아인, 하정우, 언니네 이발관, 검정치마의 연기와 얼굴과 음악과 이야기에서 보여준 어떤 순간들을 끌어옵니다.


20세기가 종말을 고하며 영웅들이 집을 떠나버리고, 그렇게 맞이한  21세기에는 영웅들이 집을 잃어버렸지만 새로운 영웅의 출몰의 어떤 예감을 건드리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끝까지 문화와 시대의 공기를 종횡무진 흐뜨리며 문장으로 나아갑니다. 더없이 힘차게 그리고 안절부절하면서.


  “더 이상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웅과 배신자 모두 얼굴을 무한히 바꾸는 너와 나의 모습을 취할 것이며, 그렇게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세계일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영웅은 끝을 향해 걸어간다. 그들은 그렇게 전진할 수밖에 없다. 영웅과 배신자는 자신들이 곧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황무지를 향해 걷는다.”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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