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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스토리보드북
박찬욱 지음, 이윤호 그림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평점 :
여지없이 박찬욱의 신작은 개봉일 극장에서 였습니다. 입봉작과, 기괴함과 비범함이 종횡하던 이전 몇몇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감독의 신작들은 그렇게 극장에서 만나는 것이 습관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깐느박, 이라 불리기 휠씬 전부터.
원작소설 <엑스>을 각색하는 것이 아니라, 코스타 가브라스 영화 <엑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의 판권을 사서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려진 박찬욱 감독의 근작 <어쩔수가없다>는 그야말로 현재 진행형으로 읽혀질 소름돋는 이야기를, 각양각색의 캐릭터를 통해 투과, 굴절하며 이경미 감독과 협업한 인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스토리보드북을 처음 받아들고서는, 인터셉터 하듯이 다음의 장면들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책을 듬성듬성 펼쳐 들어갔습니다.
두번째 희생자, 차승원을 분재하는(?) 씬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시끄럽게 깔리는 세 인물의 몸싸움씬
영화의 도입부, 화목하지만 왠지 서늘했던 마당 바베큐 씬
어찌보면 당연할테지만, 오선지와도 같은 비어있던 다섯 컷의 공간이 전부인, 딱 짜여진 양식의 스토리보드에 이런저런 정보들과 화면구성, 인물과 카메라의 움직임 등을 가지런히 담아내면, 어느새 평면에 세겨진 영화의 지도가 되고, 또 그렇게 여전히 2D의 스크린으로 빛과 소리에 담아 뿌려지면 스토리보드에 정보들이 의도된 연출을 통과해서 영화가 되는 그야말로 마술이 됩니다.
리원이가 패턴화된 그림으로 악보를 그리고 자신만의 악보를 보고 첼로를 연주하는 것 처럼.
영화사 이름 처럼 ‘모호’했던 구조와 이야기가 평면의 스토리보드북을 거쳐, 영화로 창조(!)되는 과정을 이렇게 MRI의 파단면으로 검진하듯, 이 책으로 다시 불러내보는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다시 OTT에서 불러내서 책을 실시간으로 펼치며 들여다보는 재미, 그 어쩔수없는 유혹의 손길을 기분 좋게 내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