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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나눈 사이
방지언.방유정 지음 / 선비와맑음 / 2026년 10월
평점 :
전작 <뇌사판정위원회>를 쓴 자매 작가의 신작입니다.
처음 만나는 작가와 출판사의 소설이라 솔직히 별 기대 없이 펼쳐 들었는데, 이야기의 속도감에 휩쓸리듯 끝까지 내리읽었던 강렬한 기억에 차기작을 기다렸습니다.
핑크와 옐로 컬러가 감도는 책 표지는 몽환적이지만, 두 사람의 약지가 묘하게 닿으며 반짝이는 액체(?)가 흘러내리는 순간을 잡아내고 있습니다. 약속과 대가, 믿음과 배신…….
그런 느낌으로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가족이라는 관계의 외피와 천차만별인 속내를 가감 없이 파헤쳐 보이는, 더욱 강렬한 이야기가 기다립니다. 역시나 손에서 놓칠 수 없게 하는 흡인력으로 종횡무진하며 독자의 목덜미를 쥐고 끝까지 하드캐리해냅니다.
“서울 강서구 발산동에서 이화진이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두 살 터울의 언니 이영진의 부차적 존재로서.”
- p.10
백혈병에 걸린 언니 영진을 살리기 위해 태어난 동생 화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입니다. 조혈모세포를 나누어 언니를 살려냈지만, 정작 화진의 삶은 처음부터 언니의 그늘에 놓입니다. 아름답고 영리하며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한 언니와, 그런 언니를 위해 존재해야 했던 동생.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영진은 연쇄살인범이 되고, 화진은 무려 25년 동안 언니의 범죄를 은폐하는 부역자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이 살려낸 언니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설정부터 섬뜩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살인보다도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설정은 사실 개인적으로 너무 애정하는 영화들인 <네버 렛미 고>, <아일랜드> 같은, 누군가의 장기 이식용으로 태어나 자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운명이 정해진, 인생의 마지막이 결정된 사람들의 이야기.
더군다나,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선택하지 않은 관계를 이유로 너무 많은 희생과 헌신을 당연하게 요구합니다. 화진에게는 언니를 살릴 것인지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 숭고한 일이라면, 그 희생을 거부할 의무만 있는 희생이 과연 희생인건지.
더욱 기묘한 것은 두 자매의 감정이었습니다.
화진에게 영진은 증오의 대상이면서 동경의 대상이고, 두려운 존재이면서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은 사람입니다. 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언니의 세계에서 자신이 가장 특별한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어떤 관계에서든 원심력과 구심력은 공존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나누기는 어렵다 싶습니다.
화진은 억압받는 동생이지만 동시에 언니의 범죄를 알고도 침묵하는 공범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겪은 고통을 이해하는 것과 그가 저지른 선택에 책임을 묻는 일은 별개입니다.
가족이니까, 언니니까, 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되뇌는 말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선택을 가리는 핑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런지.
여기에 조혈모세포의 ‘생착’이라는 의학적 개념이 묘하게 겹쳐집니다. 화진의 세포가 영진의 몸에 자리 잡아 새로운 피를 만들어내는 동안, 정작 화진의 마음에는 영진이라는 존재가 깊숙이 뿌리내립니다.ㅁㅁ
동생의 피가 언니의 생명을 지탱하고, 언니의 존재가 동생의 삶을 지배하는 관계.
제목의 <피를 나눈 사이>가 묘하게 인물 간의 관계와 오버랩되며,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불편해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영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살아 돌아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반대로 화진 역시 평생 언니를 위해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모든 선택에서 면책될 수 있을까 싶고요.
두 자매 모두 자신의 삶을 온전히 선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지만, 그렇다고 타인의 삶을 침범할 권리까지 얻은 것은 아닐 듯 합니다.
작가들은 이러한 모순을 상당한 속도감으로 밀어붙입니다.
인물들의 심리를 조금 더 행동과 장면으로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야기의 추진력만큼은 전작보다 한층 거칠고 강렬합니다. 익숙한 가족 스릴러의 구도를 따라가는 듯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방향을 틀어버리는 솜씨도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표지 속 두 사람의 약지가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향한 약속처럼 보였던 손끝이 이제는 서로를 놓지 못하는 집착처럼 보입니다. 반짝이며 흘러내리는 액체 역시 생명을 이어주는 피인지, 씻어내지 못할 죄의 흔적인지 모호해집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관계가 어디까지 서로의 삶을 침범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관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피를 나누었다고 해서 삶까지 나누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두 자매가 함께 써 내려간 두 자매의 이야기라는 사실도 책을 덮은 뒤 새삼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실제 자매 작가들은 서로의 세계를 얼마나 공유하고, 또 얼마나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상상 혹은 궁금증을 남기며 다음 소설을 기약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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