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의 독 (애장판)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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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서로 다른 시간에 놓인 사람들의 불행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80년대 무사시노의 저택과 1960년대 지쿠호의 폐광촌, 그리고 다시 현재.

시간은 자꾸 앞뒤로 움직이고 이야기는 좀처럼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흩어놓은 조각들이 맞춰지고 전혀 다른 이야기라 여겼던 삶들이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가 됨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반전 자체보다 그 반전을 위해 지나온 사람들의 시간이 뒤늦게 한꺼번에 독자를 덮쳐오는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범죄의 이유를 개개인의 악의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가난과 탄광촌의 몰락, 폭력과 차별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착취까지.
누군가는 처음부터 너무 나쁜 패를 받아 들고 삶을 시작합니다. 출발점 자체가 너무 판이하게 다릅니다. 여기서 다름은 틀림으로 읽히게도 합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애초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몇 개나 있었을까 생각하면 선과 악의 경계는 너무 금방 흐릿해져버리고 맙니다.

“가슴속에 독을 품으십시오. 어중간한 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야말로 그 독을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 p.135

그래서 제목의 ‘독’이란 단어에 한참 멈춰 서게 됩니다.
분노, 상처, 죄책감은 사람을 망가뜨리는 독이지만 때때로 누군가를 지키고 끝까지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싶습니다.

“나도 어리석은 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몸속에 독을 품은 채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 그게 그대로 독으로 남을지, 아니면 약이 될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렇게 살기로 했어.”
  - p.182

결국 이 소설에서 독과 약을 가르는 것은 그것의 성분이 아니라, 그것을 품은 사람이 어떻게, 또한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가에 달려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스터리로 시작했다가,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기묘한 이야기,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죄를 공유함으로써 맺어지는 관계, 그리고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 그렇게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쩌면 각자의 사랑.

작가는 그들을 쉽게 용서하지도 단죄하지도 않는 태도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다만 왜 그들이 독을 품게 되었는지를 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래서 진실을 모두 알게 된 뒤의 마음은 통쾌하기보다, 먹먹하고 또한 서늘해집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독은 있을테지요. 그래서, 그것을 품고 어떤 사람이 되어 살아갈 것인가, 그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느새 가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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