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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위의 만찬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6년 5월
평점 :
건축공학도가 음식 평론가가 된 사연이 궁금해서 펼쳐든 이 책은, 아마도 미국 거주 시절에 모아둔 AMC 등의 극장에서 봤을, 영화표들이 빼곡한 페이지를 거치고 나면, 영화 속 음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58편의 이야기 숲에 진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모험의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우선은 제가 이미 감상했던 영화들, 얼추 38편, 속 음식 이야기를 먼저 만나보기로 하고 페이지를 찾아 나섭니다.
책은 4개의 챕터로 나눠서, 영화들을 칸칸이 담아 내놓습니다. 1부 욕망과 허기, 2부 권력과 기만, 3부 불안과 위로, 4부 공감과 우정.
영화에 따라 지금 다시 이야기를 듣노라니 그 장면 장면들이 남긴 명징했던 기억이 실타래 처럼 펼쳐져, 문장들과 머릿 속에 영상이 생각의 공간을 점해가며 입맛을 다시며 글을 읽게 되는 체험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영화에 그런 음식과 장면이 있었나 싶게 낯설어 다시 OTT에 들어가 찾아보게 하기도 했습니다.
“150여 분 동안 영화 속 음식에 자비 없이 쥐락펴락 당하고 나니 나도 황해 정식이 먹고 싶어졌다.”
-p.20, 처절하게 생동하는 비극적 먹방 <황해> (2010) 中
“대접의 가장자리에 세게 부딪혀 거의 박살이 난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간신히 가른다. 달걀이 소리 없이 절규한다.”
-p.244, 달걀을 깨는 손 <디 아워스> (2002) 中
또 그런가 하면, <헤어질 결심>에서 볶음밥 제대로 만들기 라든가, <마이클 클래이튼>에서 냉동실 바게트 활용법 같이, 실생활에 유용할만한 간단 레시피나 생활의 팁들을 영화 속 음식 이야기에서 확장해서 독자들에게 넌저시 공개해주는 마음씨도 읽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은, 이 책에서 펼쳐낸 영화와 음식들의 이야기 숲을 헤쳐나오면서 드는 생각들.
첫째, 인간사를 두르고 있는 세가지를 의식주 (옷, 음식, 집) 이라고 한다면, 작가가 책의 곳곳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 처럼, 장면 속 음식들에 대해서 유독 인색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각종 영화 시상식의 수상분야에서 의상상, 미술상은 있어도, 푸드 스타일리스트에게 주는 음식상 부문은 없는 게 의아하게 여겨졌습니다. 물론, 미술상이 음식에 대한 부분을 커버할 수도 있을테지만.
둘째, 이 책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초콜릿>, 가브리엘 엑셀 감독의 <바베트의 만찬>,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 같은 영화들은, 영화에서 음식이 빠지면 안되는, 음식이 영화와 인물 관계의 뼈대와도 같은 영화들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에서는 이런 음식 영화들(?)은 최대한 배제(?)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셋째, 과연 영화에서는 어떤 음식 이야기로 작가는 울분을 토하거나, 아쉬워하거나 맛있고 유용한 음식 팁을 제시할까를 생각하며, 이 책에 언급되었지만 제가 아직 못 본 영화들을 찾아볼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영화를 볼 때면 음식들이 신경이 쓰일(?)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끝으로, <백 투더 퓨처 2>를 중3 때 봤다는 걸로 봐서, 저와 비슷한 연배일 듯한 작가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 수많은 어둠 속에서 조마조마해 하던, 혹은 세상 시름 다 잊고 숨이 멎도록 웃어제끼던 영화들이 선물해준 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그 소중한 추억을 우리에게 허락해준 영화들, 그 뒤에서 고군분투 해주었던 사람들의 꿈들이 무척이나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이번 연휴엔 군침 도는 영화나 한편 낄여 봐야겠습니다^^
PS. <디 아더스>를 몇 번이고 빨리 감기와 되감기를 하며 달걀 깨는 장면을 찾아봤는데, 결국 찾지 못했는데 다시 보니 <디 아워스>여서 혼자 한참을 웃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니콜 키드먼이 주연으로 출연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