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의 세 가지 빛깔 -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번스 그리고 잃어버린 쿨의 제국
제임스 캐플런 지음, 김재성 옮김, 이기준 감수 / 에포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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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즈를 처음 재즈로 인식하고 감성한 게 언제 였을까?
    음악 혹은 음향기기 애호가 였던 부친 덕분에 음악은 여느 또래 친구들 보다 빨랐을 거라 자부하지만, 재즈는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변덕많은 심보를 부리는 혹은 괴팍한 누군가를 마주한 느낌이, 어쩌면 재즈에 대한 첫 감상이었지 싶습니다. 아마도 여덟, 아홉 살 무렵.

    그후, 상경해서 더 넓은 음악들을 접하고, 재즈바 같은 곳을 찾아 다니던 시절의 20대는 또 다른 빅밴드나 피아노 위주의 재즈에 경도된 적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나름 재즈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왔지만, 사실 저는 늘 음악만 듣고 있었습니다. 음반은 반복해서 틀었지만, 그 음악을 만든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통과해왔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블루의 세 가지 빛깔>을 읽으며 처음으로, 음악 뒤에 있는 삶의 온도를 천천히 따라가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어느 순간 연주자의 들숨을 들었을 때 같은 새로운 계기, 바로 그 지점에 이 책이 있다 싶습니다.

    이 책은 <Kind of blue>라는 희대의 음반을 기점으로,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번스라는 세 명의 재즈 거장을 다룹니다. 하지만 위대한 업적을 정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불안하고 흔들리던 인간의 시간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봅니다. 음악 이야기보다 먼저 등장하는 것은 결핍과 고독, 집요함과 중독 같은 감정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음악을 ‘감상한다’나 ‘이해한다’기보다는 음악에 ‘설득당하게 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싶었습니다.

    1959년이라는 시간은 이 책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재즈 역사에서 중요한 해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위대한 전환점이라기보다 세 재즈 거장들이 각자의 혼란 속에서 잠시 같은 공기를 나눴던 시기로 다가옵니다. 그 순간에 태어난 음악을 떠올리며 읽어 나가며, 또 오가는 이동시간에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들려지는 <Kind of Blue> (특히 Legacy Edition) 전곡을 무한반복 해서 듣다보니 , 이 앨범은 완성된 명반이기 이전에, 불안정한 삶들이 만들어낸 결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음악이 한층 더 가깝게 들렸습니다.

  • <블루의 세 가지 빛깔>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저자가 이들을 미화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거칠고 폭력적인 면, 존 콜트레인의 집요함 속에 깃든 고독, 빌 에번스의 섬세함의 이면에 있던 취약함을 숨기지 않고 담담히 책에 담아냅니다. 그렇다고 단정하거나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로 이런 음악이 나왔다는 사실을 그저 보여줍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덕분에 그들의 교차하고 비껴갔던 시간들과 음악이 오래 기억될 듯 합니다.


  • 하지만, 마냥 매니악한 재즈 아티스트와 음악을 다룬다기 보다, 재즈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 여러 지점들을 펼쳐두고 있다 싶습니다. 어려운 이론 같은 걸로 독자를 시험하지 않고, 음악을 둘러싼 삶의 맥락을 차분히 풀어가며 무심히 때론 집요하게, 마치 재즈 처럼!,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일 듯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음악을 찾아 들었고, 책장을 넘길수록 플레이리스트는 늘어만 갔습니다. 또한, 같은 곡을 들어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음악을 받아 들이게 된다는 점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구태의연한 말이겠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는 것일테지요.

    물론 오래전부터 재즈를 깊이 파고든 분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들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가치는 새로운 사실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들도 다시 바라보며 그 맥락 속에서 음악을,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시선에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익숙한 음악이 조금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경험,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블루의 세 가지 빛깔>은 재즈를 더 잘 알고 감상하기 위해 읽는 책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창작이란 얼마나 불안정한 인간의 상태 위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음악 이야기를 기대하며 펼쳤다가, 결국 사람 이야기로 오래 남을 책이다 싶습니다. 재즈가 낯선 이들에게는 좋은 가이드가 되어주고, 이미 재즈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음악을 다시 듣게 만드는 책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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