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느린 작별
정추위 지음, 오하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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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산책방에서 출간된 정추위 작가의 <아주 느린 작별>은 치매라는 병을 마주한 부부의 삶을 담담하게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담담하게 라곤 했지만, 그 문장과 문장 사이에 버티고 있는 안팎의 긴장감은, 제 개인적 경험과 겹쳐지면서 꽤나 거칠고 또 무너지게 하는 구석이 많았던, 쉽지만은 않았던 책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이별의 슬픔만을 담은 기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곁을 끝까지 지키며 함께 걸어가는 ‘동행’의 이별을 맞이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푸보의 기억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너질 일만 남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p.44

 

상실이 아닌 함께하는 작별. 당연히 둘의 관계에서 하나를 먼저 떠나보내는 것은 상실임에 틀립없지만, 그럼에서 그 떠나가는 이의 마음도 남겨지는 이를 향해 동일한 마음일테니, 상실이 아닌 작별을 공유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외양은 그대로이지만, 이미 공유했던 추억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십수년 함께 해온 배우자의 낯선 언어와 행동을 마주하는 것은, 아직은 멀었지만 이미 와버린 이별을 준비하는 순간들을 문득문득 맞이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심호흡하자, 심호흡. 절대로 흥분하면 안 돼. 그이는 환자잖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일부러 그럴 수도 없는 상태야. 침착해야 해. 침착해.”

  —p.69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되뇌어야 하는 말.

치매 환자가 되어버린 가족을, 그것도 배우자를 케어하는 일은 단순한 헌신이 아니라, 체력과 감정을 완전히 소진해버리는 것을 동반하는 고된 현실이라는 것을, 저자인 정추위는 이 책을 통해 오롯이 눈에 그려지듯 들려줍니다. 특히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다잡고 또 다잡아야 하는 순간들에서 그 깊고도 깊은 수렁같은 슬픔과 더불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지금 나는 인생의 황혼기에 서 있다. 나에게 남은 책임은 푸보가 나를 필요로 할 땐 배우자가 되고, 딸이 나를 부를 땐 엄마가 되어주는 것뿐.”

—p.230

 

치매라는 병이 나와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듯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은 지속된다는 메시지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집니다. 요양원에 남편을 보내고 난 후, 저자가 새롭게 삶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저는 그래도 잘 지켜내었고 또 그렇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용기’를 채워내서 다행이다 하며 겨우, 어쩌면 잠시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나’의 이야기가 튼튼해야, ‘나로 살아내는 힘’이 가득해야, 사랑도 할 수 있고, 케어도 할 수 있고, 그렇게 작별도 서로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어렴풋이 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조금씩 스스로를 잃어가는 저의 부모님과, 또 이세상의 수많은 치매환자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그렇게 이어진 가족들, 친구들의 마음을 또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이 책 <아주 느린 작별>은 단순히 치매라는 병을 다룬 에세이가 아니라, 사랑과 상실, 돌봄과 회복이라는 인간의 깊고도 깊은 감정을 직접 마주한 기록이다 싶습니다.



책의 원제는 “당신이 세상 모든 것을 잊어버려도, 나는 당신을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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