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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몸으로
김초엽 외 지음, 김이삭 옮김 / 래빗홀 / 2025년 6월
평점 :
한국과 중국의 여성작가 각 3인이 펼쳐보이는 여성과 SF적 상상력, 몸에 대한 계시록 혹은 기행문입니다. 근미래의 일들을 소재로 하되 기행문이라 칭하는 이유는, 마치 당장이라도 펼쳐질 듯 눈 앞에 그려내는 작가들의 문장과 자세가 그 첫 이유이고, 이미 어딘가에서는 벌어지고 있으나 시치미를 뚝떼며 ‘우리 얘기 아닌데?!’ 하며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 둘째 이유입니다. 소설들을 통과하고 나면, 여섯 단편들이 펼쳐내는 풍경들은 제각각이지만 기시감이 내내 읽은 이의 몸과 맘에 어른거립니다. 그 살가움 혹은 살풍경의 날것, 그 미래 속으로 들어갑니다.
1부 기억하는 몸. 김초엽과 저우원 작가가 담당하는 장입니다. 물리적 공간과 현실에 대한 담론과 상상은 진작에 여러 SF소설들에서 예견된 바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 <써로게이트> 등을 통해 시각화된 물성과 뇌를 연결하는 시도들은 익히 경험했고요. 다만, 김초엽 작가는 예의 그 섬세한 말투로 양봉옷과 우주복을 이어내고 또 관계들을 고민합니다.
“ 두 사람은 세계의 끝에서 끝으로 향했다. 몰두할 수 없는 세계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p.42, 김초엽 <달고 미지근한 슬픔> 中
그런가 하면, 저우원 작가 <내일의 환영, 어제의 휘광>을 통해, 묘한 전염병을 고안해내고는 인류를 그 안에 집어넣는 상상력 실험을 합니다. 언어가 증발해버리듯 관계와 일상이 증발해버렸던 펜데믹의 시간을 회상하게 합니다.
2부 연결하는 몸.
“갑자기 도로가 꺼졌고, 망설이다가 그곳으로 달려갔던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눈을 뜨자 집도 병원도 아닌 어느 공원에 반투명한 상태로 둥둥 떠 있었다.”
-p.125, 김청귤 <네, 죽고 싶어요> 中
김청귤 작가는, 요사이 우리사회의 현실적 공포가 되어버렸던 싱크홀을 어디론가의 공간으로 워퍼해버리는 매개로 치환하면 우리 몸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를 상상합니다. 그런가하면, 난꽃의 꽃술같은 1996년과 1988년의 시간 터널을 통과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이벤트가 세상에서 어떻게 휩쓸리는지를 타임슬립으로 펼쳐내는 청징보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 <난꽃의 역사>는 근래에 만나는 신선함이었습니다.
3부 불가능한 몸.
오랜 소재일수도 있는 뇌에 특수용도의 칩을 이식하는 것으로 우리 인류의 삶은 생각은 어찌 바뀌게 되나 혹은 그대로 우리의 몸과 몸을 지배하는 뇌는 어떤 관계인가를 어렴풋 바라보는 씁쓸함을 담은 천선란 작가의 <철의 기록>, 그리고 작금의 온 인류가 신체의 일부인 듯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과 AI가 뇌에 선택적으로 이식된 이들이 마주하고 만들어가는 상황을 그려낸, 그냥 지금의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을 이야기들을 그려낸 듯 한 왕칸위 작가의 <옥 다듬기>는 소스라치게 놀랄만한 상상력의 끝판을 펼쳐냅니다.
“또 위에는 감각 상호작용 시스템이 있어서 이용자들끼리 서로의 감각 데이터를 선택하고 공유해 실시간으로 더 깊은 교류를 할 수 있었다.”
-p.274, 왕칸위 <옥 다듬기> 中
우리의 몸은,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시간은, 그리고 어제 만났고 내일 만날 그 사람들은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무수한 연결 속에 있는 SNS 속 친구들은 누구일까..? 지금 우리는 여전히 미래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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