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소포스의 책 읽기 - 철학의 숲에서 만난 사유들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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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극장>과 <니체 극장>를 통해 철학적 사유와 이를 통해 인생의 문제들을 대하는 방법을 배워내게 하더니,  <생각의 요새>와 <광기와 천재>로 독서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철학적 양분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갑게 안내해주었습니다. 그런 한겨레신문 기자/논설위원이기도 한 고명섭 작가의 신작의, 무해한 지식 추구자들에게 제시할 철학의 숲을 거닐 네이게이션의 업데이트 버전이라 할만합니다.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개인과 관계에서부터 우주, 영혼, 영성과 정치에 이르는 거대 담론까지 손을 뻣어낸 수많은 책들을 사유의 숲을 구성하는 나무들처럼 심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 특유의 부담스럽지 않고 살가운 언어로 책이라는 나무가 품고 있는 혈관을 따라 물 흐르는 소리를, 그 나무들이 뻗은 가지와 잎들을 뚫고 독자의 심상에 와닿는 빛과 같은 밝음으로 보여줍니다.


역시나 5개의 장으로 구분해 담아놓은 작가의 독서 리스트는, 꽤나 방대해서 활엽수림을 헤쳐내면, 침엽수림이, 푸르른 봄의 숲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울긋불긋 낙엽으로 우거진 숲길에 도달합니다. 지혜에 끌려 지혜를 찾는 ‘필로소포스’의 순례길은 마냥 밝지도, 또 그렇게 어둡지만도 않습니다. 무언가 순수한 빛에 끌려 빛을 향하고, 때로는 빛을 등지면 나의 그림자가, 내가 지닌 소유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책이란 나무가 이룬 숲에서 그렇게 여러 빛과 그림자들에서 사유하게 합니다. 이 책은 그래서 3D 포맷의 네비게이션 이라 할만 합니다.


  “면역이 없을 때도 민주주의는 파괴되지만 과도한 면역도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에스포지토는 면역을 ‘파르마콘’(pharmakon)에 비유한다. 그리스어 파르마콘은 약과 독을 동시에 뜻한다. 임계치를 초과해 투입하면 약은 독이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코무니타스와 임무니타스 사이의 균형이다.”

  -p.308 


특히나 이 책이 곳곳에 펼쳐보이는 시의성 담긴 문장과 인용구들은 이전 책들과 차별점으로 읽혔습니다. 코로나 펜데믹과 내란.계엄을 거쳐낸 최근의 대한민국의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낸 기억과 정확하게 겹쳐지면서, 책의 곳곳이 어떤 이정표이자 신호등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빛의 혁명으로 어렵사리 얻어낸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낼 고민이, 어떻게든 철학적 사유와 결정된 행동 사이에서 예민한 균형감각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 그 약과 독 사이의 균형을 항상 사유해야 한다는 것을 나무들은, 숲은 그렇게 들려주고 있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공허한 영성이 되지 않으려면 언제나 이성이 함께해야 한다.”

  -p.399


우리의 역사는 당연하게도, 민중의 지성과 영성을 지렛대로 후퇴하면서도 결국엔 전진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함께 서로 보완하고 경계하며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쪽에 경도되었을 때의 폐해를 여러 역사적 사건에서 확인해왔음도 사실입니다. 최근까지 융성한 아스팔트의 기독교인들 (혹은 유사 기독교인들)의 대규모 집회가 그 처참한 예가 될 수도 있겠고요.


당연하지만 아픈 지점들을 통과해서 여러 책들의 숲을 통과해내노라면, 저자는 과연 자신의 이렇듯 어마어마한 독서감상문으로 어떤 이야길 들려주려는 걸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말에서 언급한 ‘사유의 친구’에서 희미하게 나마 힌트를 얻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숲 순례자이자, 나무이자 숲이 되어야 한다는 손내밈, 이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학의 숲에서 만나는 이들은 다 사유의 친구다. 친구들이 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숲은 숲을 키운다. 숲은 잠들지 않는다.”

  -p.11, 머리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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