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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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MZ세대 대표 소설가로 익히 소문은 들었지만 작품으로는 처음 만난 심너울 작가. 앉은 자리에서 거의 쉼 없이 읽어 내린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작가의 전작들과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였습니다. 그만큼 문장이 단촐하지만 방향이 분명했고, 장편소설이라지만 세계관을 공유하고 주인공을 바꿔가며 풀어내는 연작소설의 느낌이라 맺고 끊는 맛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얼마 전 읽었던 정보라 작가의 자전적 SF소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가 계속 겹쳐져 보였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이야기가 분명한데 정보라 작가는 SF의 모양으로, 심너울 작가는 판타지의 모양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 일겁니다.

“야. 내가 10년 동안 얼마나 개고생한지 알아? 이 구단 저 구단 전전하고...... 사람들한테는 개먹튀라고 맨날 욕 처먹다가, 이제야 내 힘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됐는데. 지금 내 힘을 포기하라고? 그건 싫어. 내가 미쳤다고 역장을 빼냐?”
<p.180>

“서지현은 한때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꿈꿨던 세상을 마음속에 그렸다. 모두가 동등하게 마력의 혜택을 보는 세상. 아직도, 아버지와 더 이상 일하지 않게 된 지금도, 여전히 그녀는 그 세상을 생각하면 마음이 벅찼다. 하지만 이제 오롯한 기쁨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동시에 그녀는 슬프기도 했다.”
<p.253>

금수저, 흙수저. 기울어진 운동장, 시작점이 다른 인생... 우리네 현실에서 마주치는 이러저러한 불균형과 불공정의 단면들을 여지없이 담아내며 판타지스런 소재와 사건들을 배치하고는 있지만 너무나 익숙하고 그래서 너무나 슬프고 아린 사람들의 사연들과 이야기들로 또 다른 차원의 묘한 데자뷰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그 판타지적 핍진성의 연원을 가늠할 수 있는데, 노래와 스포츠, 게임, 애니메이션 등에서 시작하거나 힌트를 얻은 <갈아 만든 천국> 속 인물들과 사건들을 확인하는 것은 한동안 유행했던 영화 말미에 숨겨둔 쿠키영상 같은 재미를 부록같이 만날 수 있어서 더 흥미로운 이야기의 완결이자, 또 어딘가 계속되고만 있을 것 같은 또다른 갈아 만든 천국 이야기를 상상하게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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