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임희선 옮김 / 청미래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방 소도시 출신인 저는 어쩔 수 없이 살아야했던 학창시절의 고향의 그 변화 없음과 답답함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전국 각지의 중고교생들의 수학여행지라 등하굣길에 마주치는 다른 말투의 또래들이 오히려 반갑고 신선했었던 기억입니다. 그렇게 떠나온 고향은 방학이나 휴가를 맞아 다녀올 때도 그저그랬던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새 중고등학교의 수학여행지도 더 이상 아닌 곳, 더 삭막해져버린 몇 천 년 전의 역사의 현장으로 오히려 시간을 되돌리는 변화가 그 마음을 더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꽃향기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후각뿐만 아니라 청각도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숲속은 좀더 조용하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항상 어디선가 나뭇잎이 떨어지고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는 바람에 술렁이고 조금 있으면 해가 진다면서 산새들이 쉴 새 없이 서로에게 지저귀는 소리가 났다. 사슴인지 뭔지가 나무껍질을 씹어먹는 소리까지 들렸다. 저 멀리 어느 골짜기에서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p.95>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그 고향의 빛깔과 향내가 다르게 느껴지던 날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너른 초록의 왕릉으로 이어지는 공간이, 바람에 흐드러지던 달빛 먹은 벚꽃 이파리들이 저에게 다르게 다가오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낯설고 어색해졌지만 그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추억들과 얼굴들이 어느새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도시에만 살던 유키가 가무사리 숲의 향기와 소리를 인식한 그 순간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그 공간에 있다고 해서 그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그 공간에, 그 순간의 색과 향과 소리를 아우르는 감각이 그 공간의 내 안을 관통해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공간에 있게 되는 느낌. 그렇게 그 곳에 속해 있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있다 싶습니다.

 

미우라 시온의 소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이 나가사와 미사미, 소메타니 쇼타 두 배우가 주연해서 찾아봤던 영화 <우드잡>의 원작소설이란 걸 이번에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와는 인물과 설정에서 다소 판이하게 다르긴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찾아본 영화의 장면, 특히 숲의 풍광과 소리, 냄새를 설레이게 문장으로 담아낸 작가의 묘사의 힘이 영화의 장면을 훨씬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독자를 이끄는 이 소설의 힘이다 싶었습니다. 물론 다시 만난 미사미와 쇼타 배우의 연기는 반갑고 즐거웠지만요.

 

끝내주네.....”

<p.122>

 

가무사리 벚나무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나누며 유키가 자연스레 내뱉는 마음의 소리, 이것이 이 이야기의 숲과 일상과 그 속에 스며진 사람들의 면면을 만나는 독자로서의 제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며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영화에서도 클라이맥스 장면이었던 천년 삼나무를 베어 목숨을 걸고 비탈을 미끄러져 마을에 까지 내리는 목숨을 건 의식인 마츠리 장면을 소설에서도 말미를 장식하며 모여든 마을의 남자들과 유키, 그리고 이를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과 그 공간에서의 생각, 관계들을 아우르는 축제로 마무리해냅니다. 그렇게 유키가 가무사리에서 보낸 1년의 시간도 마무리되어 갑니다.

 

나무와 산을 알아가고 사람과 관계를 배워가던 도시 청년 유키는 그렇게 1년의 시간을 보낸 가무사리 마을과 그 숲을 먼 훗날 어떻게 마음에 담고 살게 될까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고향을 기억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마음 같을까? 언젠가 유키는 다시 요코하마로 돌아갔을까? 유키는 어떻게 살게 될까? 그 숲의 정령과 소리와 빛깔과 향기는, 마츠리에서 온몸으로 느꼈던 그 미친 듯한 속도감은 어떻게 그와 그의 삶과 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남겨져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가무사리숲의느긋한나날 #미우라시온 #임희선옮김 #청미래

#우드잡원작소설 #일본소설 #woodjob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