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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평점 :
“나는 이노 세이자에몬의 아들 기쿠노스케. 그대 사쿠베에는 내 아버지의 원수. 여기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자.”
<p.7>
사건의 발단은 그랬습니다. 아버지 이노 세이자에몬에 대한 복수를 위해 아버지의 원수인 사쿠베에 앞에 서서 결투를 신청하는 아들 기쿠노스케. 그리고 펼쳐진 진검승부, 낭자한 선혈로 흰옷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사쿠베에의 자린 머리를 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기쿠노스케!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한 페이지 겨우 채우는 결투 씬은 <귀소항담첩>에 기록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고비키초의 복수’로 불리웁니다. 그리고 2년 후...
그날의 다섯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채워지는 5막 구성의 군상극인 듯 1인극인 듯 풀어내듯 그날의 진실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분위기 물씬 풍기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다섯 목격자들의 면면은, 의상 담당 호타루, 극장 호객꾼 잇파치, 무술감독 요사부로, 소품 담당자의 아내 오요네, 극본 담당자 긴지가 그들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입장에서 혹은 이유를 가지고 2년 전 그날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들려주는 것은 복수 그 너머에 숨어있는 사람, 사람들 그 모든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다섯 사람의 목소리는 하나의 취재원이자 또 다른 목격자인 화자가 변사라도 되는 것처럼 무성영화를 읽어내듯 이야기의 안과 밖을 완성해갑니다.
“난 너보다 시성이 좋지 못해. 세상은 계단처럼 되어 있어서 위에 선 사람은 아래에 선 사람을 내려다보지. 그러니 기어올라야 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여서 여기까지 왔단다. 하지만 네 말처럼 기어오르든 미끄러져 떨어지든, 불타면 뼈만 남아.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한층 편해졌어.”
<p.171>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증언들은 또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와 관계가 녹아들고 그 증인들의 삶마저 마주하고 나면 복수극의 전말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과 시간, 관계들이 더 궁금해지면서 그 이야기를 더 들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어느새 한 켠에서 점점 커져가는 묘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작가가 그저 뻔한 미스터리 시대극을 뛰어넘는 작품으로 유수의 작품상을 수상한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훅 들어오는 반전과 감동. 차마 이해할 수 없는 믿음과 약속, 그리고 대의명분이라는 허울까지. 그렇게 또 한번의 반전극!
“연극을 무시하지 마라!”
<p.372>
책의 처음에 마주했던 ‘에도시대 연극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삐뚤빼뚤한 작가의 인사가 다시 이야기의 마지막과 마주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내는 우리네 인생의 희망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면 좋겠단 푸근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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