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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
평점 :
"네 이눔! 잊히는 것에 매달리지 마라.”
- p.27, <그 봄>중
<아폴론 저축은행>은 책표지에 선포(!)한대로 삶과 죽음과 관한 단편집입니다. 첫 작품 <그 봄>은 산사에 맡겨진 어린 두 형제의 시선으로 슬픈 봄을, 매년 찾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 반전이 대단합니다. 숨이 턱하고 막히고 먹먹한 가슴에 한참을 멈춰버렸습니다. 잊히는 것과 잊는 것의 애닲음은 이리도 매번 익숙해지질 않습니다. 덕분에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데 제법 시차가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차무진 작가는 이름은 왠지 익숙한데 이번 단편소설을 통해 처음 작품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인 더 백>이라는 작품과 동시에 번갈아 가며 읽으면서 작가의 언어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에 반하고야 말았습니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지만 가려 뽑아 사용된 단어들과 낭비되지 않는 문장들이 인물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오랜만에 만나는 그런 작품들이었습니다.
지네트 느뵈가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 20번, 라벨의 치간이 들려오는 거실 공간의 무겁고도 홀가분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읽어내려 가는 <아폴론 저축은행>의 도입부는 읽기를 멈추고 싶은 충동을 매 문장과 문장들 사이를 지나칠 때마다 느꼈습니다.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의 등을 움켜잡은 아내의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가느다란 아내 빗장뼈에 코르 박고 숨을 들이켰다. 이렇게는 죽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 죽음이란 사는 것이다. 살아서, 살아가는 것이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이다. 사는 것이 다 되어야 죽는 것이다.”
-p.129, <아폴론 저축은행> 중
끝이 보이지 않는 생활고에 가족 동반자살, 아니 살해 후 자살을 계획하는 아이 둘을 둔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아폴론 저축은행>은 표제작답게 그 이야기의 맵기가 남다릅니다. 그리고 임영웅이 부르는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들으며 기다리고 희망을 품습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긴장을 놓을 수가 없고 뒷목이 뻣뻣해지게 합니다. 대단합니다. 몸서리치게 대단합니다. 단편소설들이지만 아득하게 심해의 바다 속으로 한없이 그렇게 한없이 내려만 가는 기분입니다.
차무진 작가의 작품들을 더 찾아보게 싶게끔 하는 단편들로 큐레이션된 단편소설집 <아폴론 저축은행>의 여덟 작품들은 고르게 장르 문학적 쾌감 함량이 거의 치사량에 근접하는 균질함을 보였습니다. 단연 눈으로 그려지는 묘사적 표현과 정련된 단어들이 지어내는 문장들과 줄바꿈의 속도감이 형식적 재미도 갖추고 있어 읽는 재미만으로도 대단했습니다. 왜들 차무진, 차무진 하는지 조금 알 듯 했다고나 할까요?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작가가 한명 더 생겼다는 뿌듯함으로 책의 마지막에 닿았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고 인간의 삶은 곧 미스터리니까요. 앞으로도 그런 것들을 만들겠습니다.”
-p.452, ‘작가의 말’ 중
그럼 다음 층계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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