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평점 :
“이를테면 길을 걷는다고 치죠.”
소설은 이 첫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러면 다양한 정보가 눈에 들어올 겁니다. 하늘의 푸름, 사람들의 발소리, 낯선 지역의 자동차 번호, 색깔, 소리, 글자, 뭐든 좋습니다. 그저 걷기만 할 뿐인데도 시야는 온통 다양한 정보로 가득해집니다.”
그렇게 바른 욕망이란 외피를 두른 소설은 여러 인물들과 이런저런 사건들을 지나 마침내 다음의 문장으로 마무리 됩니다.
“두 눈을 선의로 반짝이는 친구가 ‘머리가 이상한 사람의 폭주’라고 단정한 뉴스는 어느새 까맣게 변한 화면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의 원작자로 처음 접했던 작가 아사이 료의 장편소설 <정욕>. 이 또한 동명의 영화 예고편을 보고서 따라 들어간 원작소설이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가 대단히 영화적이라는 것일텐데, 올라오는 책의 리뷰들이 제법 당혹스럽고 읽기가 제법 어렵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게 저의 구미를 당겼고, 마침내 제 손에 안착(?)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리뷰들로 인한 기우와 달리, 이야기는 쉬이 읽혔고 인물들과 그들을 엮어내는 사건들로 전개되는 흐름은 대체로 따라갈 만 했습니다. 다만 각 인물들에 마음을 공감하며 그 말과 행태를 따라가는데 다소 저항감을 느꼈습니다. 아마 이 부분에 다수의 독자들에게 버퍼링을 선사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엿한. 평범한. 일반적. 상식적. 자신이 그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째서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사는 길을 좁히려고 할까. 다수의 인간 쪽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정체성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누구나 어제 본 건너편에서 눈뜰 가능성이 있다. 어엿한 쪽에 있던 어제의 자신이 금지한 항목에 오늘의 내가 고통받을 가능성이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이 살기 쉬운 세상이란 곧, 내일의 내가 살기 쉬운 세상이기도 한데.“
<p.329>
세상이 정해놓은 길을 가로질러 나누어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규범의 카테고리에서 누군가는 숨죽이고 또 누군가는 고통받고 있을 지금 이 순간의 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혹은 태연하게도 그 어엿하고 평범하면서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경고하는 이야기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성적 취향을 넘어선 삶의 가치와 태도에 대한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에 경솔한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우화이기도 했고요. 어쩌면 내일의 내가 그 규범이라는 길 건너편에 서있을 수도 있으니, 나의 사랑하는 이가, 가족이 그 건너편에서 나에게 등을 보이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을 수도 있으니, 10년이나 지난 교통사고 같은 일을 여태껏 우려먹으며 선동질을 한다며 눈 흘기고 비아냥댔던 어제의 우리가 번화한 골목길의 인파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으니.
“네가 그토록 떠들어 댄 연대라는 게 드디어 내게도 생길 것 같아.”
<p.439>
느슨하지만 공감하는 ‘연대’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맙니다. 그게 현실이기도 하거니와 그럼에도 그 연대함의 바른 욕망에 기대 정도는 해볼만하지 않을까, 하며 그저 까맣게 사라져버립니다, 일단은. 그리고 나는 어디에 서있는지, 어디에 서있고 싶은지, 또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를 자꾸만 생각해봅니다.
#정욕 #바른욕망 #아사이료 #리드비 #일본소설 #책추천
#도서제공 #서평단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