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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단어 - 정치적 올바름은 어떻게 우리를 침묵시키는가
르네 피스터 지음, 배명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3월
평점 :
“우파 포퓰리즘만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게 아니다. 인종차별 반대, 평등, 소수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념, 누구도 피부색이나 성별로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헌법 등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려는 독단적 좌파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
<p.18>
이 책 <잘못된 단어>는 저와 또래로, 독일 <슈피겔>지의 특파원으로 미국에 머무르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미국 전역을 둘러보는 여행으로 만든 책입니다. 독일 원제를 번역하면 “잘못된 단어: 어떻게 미국의 신좌파는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가”입니다.
저도 회사 출장으로 미국 뉴욕에 첫발을 내딛은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렴풋한 동경의 나라이자 어릴 적부터 봐왔던 허리우드 영화와 드라마의 원형과도 같은 곳의 공기로 호흡한다는 것의 기적 같음은 정말 믿기 어려운 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뉴욕의 공항에서 심야의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 내내 겨우 영어로 소통을 하는 남아공 출신의 흑인 택시기사와의 짧은 인사 후 이어진 침묵의 공기로도 내내 기억될 순간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그리고 그보다 더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너나 할 것 없이 쏟아내는 자유민주주의의 나라가 주는 공포 그 자체였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저자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겪은 사건들을 공유하며 정치적 올바름, 반인종차별주의, 취소문화, 소수자의 테러, 편파성 등등의 미국에서 건져 올린 시그널을 체집해서 책의 곳곳에 생생하게 담아 보여줍니다. 그러한 시그널은 대개 억지로 입을 닫게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스스로 자기검열을 통해 입을 닫게 하는 것에 까지 다다르게 됨을 보여줍니다.
“만약 감정이 주장을 대체하면 감정은 거대한 효과를 내는 정치적 무기가 된다. 주장은 반박할 수 있지만 감정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또는 소셜미디어에서 비난받는다면 그 사람은 감수성이 예민하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 위장한 인종차별주의자로 의심받는다. 동시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의 높이가 최근에 특히 ‘미세공격 microagression’이라는 개념과 함께 체계적으로 하향되었다.”
<p.75>
미국과 독일 뿐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흔한 일상이 되어버린 미세공격. 하루에도 수십 수백의 의견들이 하나의 사안을 둘러싸고 확대 재생산되거나 팩트보다는 이를 수용하는 이들의 인식에 기반한 감정과 어그로로 만들어지는 확증편향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냥 지나갈 일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편가르고 힘겨루기를 해대고 대중은 지쳐가고 당사자들은 잊혀지고 오로지 비어있는 경기장 밖의 혼돈과 폭력만이 난무하고야 맙니다.
“혐오와 독단은 자유로운 토론의 적이다. 또한 선의의 발언에 예민하게 반응하면 자유로운 토론이 죽을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뭔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그것을 분노의 연료로 사용하지 않는 쿨하고 여유로운 자유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p.209>
양극화는 이제 이미 글로벌한 이슈가 되어버렸습니다. 혐오를 부추기고 양측은 각자의 독단에 사로잡혀 감정을 드러내고 들으려 하지 않고 즉각 대응하느라 스스로의 말의 정체, 그 잘못된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로 쏟아내기 급급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그러함의 극단을 연일 갱신하는 선거운동 기간입니다. 제한된 자리를 추구하는 거대양당과 그 틈바구니의 균열을 이용하는 신흥 정당들의 세치 혀의 각축전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바라보아야 하고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또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올까요? 걱정과 우려만큼 다시 민주주의를 모색해야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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