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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평점 :
“머지않아 그곳은 화성으로 통하는 관문이 될 예정이었다. 지구의 우주정거장에서 출발한 우주선이 종착지로 삼는 곳. 행성 표면과 궤도 사이를 오가는 수단은 작고 가벼운 로켓일수록 좋다. 반면 행성 간 비행은 좀 큰 우주선으로 하는 게 편리하다. 이렇게 구간을 나누어야 연료 낭비가 적어진다.”
<p.15. 붉은 행성의 방식 중>
외교부의 연구의뢰로 수행했던 배명훈 작가는 <화성의 행성정치: 인류 정착 시기 화성 거버넌스 시스템의 형성에 관한 장기 우주 전략 연구>를 통해 연작소설집 <화성과 나>의 실마리를 마주하였고, 이렇게 책의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도착했습니다. 외교학 전공자다운 면모는 이야기 곳곳에 명징하게 등장하면서, 독자를 자연스럽게 화성의 생활 속으로 순간이동 시켜버립니다. 시스템과 환경, 그 속에서의 삶을 현재진행형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하게 생생하게 묘사하니 속수무책으로 독자는 화성인이 되고야 맙니다. SF인줄 알았는데 르포르타주로 착각하고 읽혀지는 묘한 매력은, 작가의 전작인 <타워>, <빙글빙글 우주군> 등에서 느낀 부분의 연장선상에 존재합니다.
“그때 김조안이 눈을 떴다. 옆에 앉은 사람이 나라는 걸 실눈으로 확인하자마자 김조안이 몸을 날려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p.82. 김조안과 함께하려면 중>
그렇게 르포르타주로 읽어내다가, 어느 순간 뒷덜미를 훅 치고 들어오는 말랑말랑한 감수성. 이 순진무구한 SF 이야기 속의 로맨스라니! 화성에서 사람이 살면, 당연히 그곳에서도 사랑이 살아남고야 말거라는 뻔한 자연스러움이 이다지도 심쿵하게 해주는 능력에 다시금 배명훈 작가의 장기를 확인합니다. 다만, 그 간극을 오가는 덜컹거림이 살짝 아쉽지만, 이 정도로 펼쳐내는 문장의 간명함이 작가의 힘을 배가 시킨다 싶습니다.
“조외진은 군부가 장악한 지구 근처의 우주가 걱정스러웠다. 지상은 안 그런데 천상은 꽤 수월하게 군사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쿠데타고 뭐고 필요 없이 무기를 우주로 쏘아 보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p.147. 행성봉쇄령 중>
화성이라는 전혀 새로운 시공간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전혀 새로운 삶 일진데, 하지만 여전히 정치가 있고 무관심이 있습니다. 지배가 있고 피지배가 있습니다. 그렇게 더할 나위 없는 화성의 삶을 투명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문장들이 종횡무진하며, 그 이야기를 뒤좇다보면 어느 새 그 화성이 이렇게도 우리 바로 곁에 다가와 있는 도래할 현재로 여겨지게 합니다. ‘화성 거버넌스 시스템’을 고민한 작가의 취재와 상상력이 열매 맺는 순간입니다. 독자는 그저 손내밀어 페이지를 열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됩니다.
“SF에서 미래는 작가가 속한 시대와 완전히 분리된 시간이 아니다. 이 시대 SF 작가에게 자주 요구되는 자질은, ‘지금 이 순간’과 ‘미래의 어느 날’을 한꺼번에 담아낼 수 있는 큼직한 시간 개념을 고안해내는 재주다.”
<p.303. 작가의 말 중>
외교부의 연구의뢰로 고민한 질문들이 리스트업하고 그 질문들에 답을 꾸려가면서 씨줄이 지나가고, 작가의 상상력이 만든 사건과 사람들이 날줄로 지나가면서 <화성과 나> 속의 여섯 개의 이야기로 탄생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생에 만나게 될 그때의 ‘Life in Mars’에 도달했을 때, 이야기가 얼마나 겹쳐질지 챙겨보고 픈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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