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퀴즈
오가와 사토시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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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를 하다 보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하잖아요. 정답을 맞힐 때 반드시 문제와 과거 자신이 겪은 경험이 겹쳐 보이죠.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문제의 답을 맞힐 수 없어요.”

<p.165>

 

1천만 엔 상금이 걸린, 생방송 퀴즈쇼 ‘Q-1 그랑프리’ 1회의 결승전에서 마주한 미시마 레오와 혼조 가즈나. 게임을 리드하던 미시마 레오를 한순간 혼조 가즈나가 앞서며 동점. 그리고 마지막 순간, 문제를 듣지도 않고 혼조 가즈나가 정답을 맞추면서 퀴즈 왕이 됩니다. 종이 꽃가루가 날리고 연기가 자욱해지는 무대.

이렇게 퀴즈쇼의 결승전 장면으로 시작하는 <너의 퀴즈>는 일본의 떠오르는 천재 SF작가 오가와 사토시에게 2023년 제7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입니다. 결승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고 만, 미시마 레오의 1인칭 주인공시점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혼조 가즈나가 짬짜미를 하지 않고 문제를 듣지도 않고 퀴즈를 더럽히지도 않고 퀴즈왕이 될 수 있었단 말인가!

이전 혼조 가즈나가 참가했던 퀴즈쇼의 영상자료들과 본인의 기억들, 그리고 ‘Q-1 그랑프리결승전을 되짚으며 파악하고 분석해갑니다. 버튼을 누르고 정답을 말하는 몇 초 사이의 순간에 플래시백과 독백, 흥분된 무대와 관객... 다분히 영화적인 이야기 진행과 화면으로 그려낼 듯 풀어내는 상황 묘사, 마시마 레오의 생각과 추억들이 쫀쫀하게 얽혀들고 풀어헤쳐지며 나아가는 이야기는 작가의 상당한 공력을 느껴지게 합니다. 한때 유행했던, 도입부의 숨 막히는 시퀀스에 이어서 어떻게 그 도입부의 사건에 까지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며 플래시백, 그리고 마침내 도입부의 그 시퀀스에 이르러 파이널을 향해 가는... 요즘도 간간히 만날 수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의 구성을 많이 닮아있습니다.

 

-출장 갔다 오면 할 이야기가 좀 있는데. / -뭔데?

내가 물었다.

-도쿄로 돌아오면 직접 말할게. / -알겠어.

답장을 보내며 기리사키가 낸 문제를 생각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나는 이런 퀴즈에 약하다. 빈출 문제라고 가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결혼에 관한 이야기다. 아직 그럴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기리사키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귄 지 4년째고 스물세 살이다.

<p.136-137>

 

데니 보일이 감독했고 동명의 소설로도 유명한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떠오르기도 하는, 퀴즈쇼의 매 문제마다 이어지는 생각과 추억 속 사건들을 따라가는 방식은, 매번 미끄러져 들어가느라 읽기의 집중을 흐트러뜨리기도 하지만, 마시마 레오의 캐릭터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그리고 그 추적의 간절함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내 그 치고 빠지는이야기 진행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그렇게 쌓여진 퀴즈들과 이야기들이 마침내 그의 퀴즈를 정의하게 되기까지 이르니 말입니다. 독특하고 쫀득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세밀하지만 나름의 속도감으로 끝까지 마무리지어내는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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