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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그해 들렀던 어느 때보다 인적 없는 긴장감으로 가라앉아 있는 공항 입구에 서서 나는 전광판으로 지나가는 숫자들을 쳐다보았다. 신규 확진자 수, 누적 확진자 수, 위중증 사망자, 누적 사망자, 전국 중환자 병상 가동률, 매일 10만명이 넘는 확진자가 쏟아지는 미국과 재봉쇄에 들어간 유럽 소식이 이어졌다. 비가 한차례 쏟아진 뒤 나뭇잎들은 전부 떨어졌고 첫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그렇게 겨울은 시작되었다.
(p.267)
2020년 2월 말 홍콩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항공권과 숙박은 진작 예매를 마치고 아이들과 우리 부부의 일정을 최적의 동선과 비용으로 3박 4일 일정을 촘촘하게 계획하던 때, 우산혁명으로 촉발된 위중한 홍콩 상황으로 여행주의보가 떴었습니다. 들인 노력과 기대가 아까웠지만 나는 눈물을 머금고, 새로운 여행목적지를 고르던 차, 홍콩 근처이면서 가본 적이 없는 대만을 새로운 목적지로 결정하고 항공권과 숙박을 어렵사리 예약하였고, 일정도 현지 지인의 도움으로 얼추 만들어냈고 마침내 가족여행을 떠날 날만 기다리며 기대에 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지 않아 우리의 가족여행은 기약 없이 취소르 당하고야 말았습니다. 중국발 바이러스가 조짐이 심상치 않다는 거였고, 해외 여행 자제하라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만 3년 반의 전에 없었던 폐쇄와 공포의 시간을 보내고야 말았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소설집 <눈으로 만든 사람>,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로 마음 가까운 이야기를 선사해주었던 최은미 작가의 신작을 받아들었고, 그 숨죽인 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알고서는 책을 한참 덮어두었습니다. WHO 앤데믹을 선포하고 좀 잊고 지냈으면 했는데, 그 강제 기억 삭제의 방어기재를 비집고 들어오는 그 성가심이 조금은 두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다시 펴든 작가의 6년 만의 신작 <마주>는 우리 모두가 예외없이 통과해야만 했던, 그렇게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상실하기도 했던 코로나의 시간을 스치며 마주하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따라갑니다. 내가 겪은 유사한 이야기, 내가 들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베여있습니다. 걱정하면서도 두려운 관계들과 의심하면서도 미안해했던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면 어느새 명치 끝이 저릿하다가다 심장이 쿵쾅거리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책을 덮어야만 했습니다.
생활치료센터 입소 2주차에 은채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줌으로 하는 졸업식이어서 나는 다행히도 참석할 수가 있었다. 기정로 상가에 ‘얼굴을 보여주세요’라는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이었던 은채의 담임은 졸업식 날도 얼굴 보여달라는 말로 아이들한테 인사를 했다. 어느 해보다도 짧은 시간을 만났던 반 아이들이었다. 다시 만날 때는 마스크 벗고 코로나19 없는 시대에서 만나자는 말이 영상 안에서 들려왔다.
(p.297)
특히나 아이들의 시간이 너무 애닳았습니다. 줌으로 이루어진 입학식과 졸업식, 그리고 수업들.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이 교차하고 멈추며 그 숱한 처음 겪는 일들의 연속인 나날들에 어느 누구도 능숙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무교육이란 이름으로 시도된 교육현장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습니다. 어떻게 가족 중 하나가 양성이기만 해도, 나머지 가족들은 물론 동선이 겹쳐서 마주했던 모든 이들의 계획된 일상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는 일상. 하지만, 누구의 책임도 그렇다고 누가 보상해줄 수도 없는 그 코로나의 시간에도 작지만 뭉클한 순간들도 적잖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소설 속 나리, 수미와 만조 아줌마는 새롭게 서로 마주하는 방법을 터득해갔습니다. 외로움과 거리두기를 서로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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