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바람을 움켜쥐다
원철 지음 / 담앤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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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바람을 움켜쥐다> 원철 스님,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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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읽는 일에도 은근히 체력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상당히 많다. 긴 글에 지쳐 어느 순간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게 된다. 짧은 분량의 책조차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날들도 있다. 책상 앞에 앉아도 집중은 자꾸 다른 데로 새고, 머릿속은 바쁜데 이상하게 마음은 텅 비어 있는 그런 느낌을 종종 느끼곤 한다. 이게 책태기라는 건가?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 <맨손으로 바람을 움켜쥐다>를 권하고 싶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연구소장으로 있는 원철 스님의 사진과 짧은 글이 함께 놓인 시선집인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마다 잠시 멈춰서며 숨고르기 하듯 보고,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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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좋았던 점은 사진과 글이 서로를 억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진은 사진대로 있고, 문장은 문장대로 존재한다. 그 사이에 서려있는 묘한 여백들이 마음에 묘한 위로를 전해준다. 독자로서 나는 그 여백 안에서 자기 기억을 꺼낼 수도 있었고, 잠시잠깐 미소를 지을 수도 있었고, 별것 아닌 풍경을 다시금 생각하기도 했다. 폐역을 담은 사진에서는 지나간 시간의 쓸쓸함이 느껴졌고, 거울방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다는 조용한 위로가 전해졌다. 맷돌 앞에서는 마음속 번뇌까지 조금 갈아내고 싶어졌고, 창밖 강아지를 담은 사진에서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원철 스님의 따스한 시선이 마음에 햇살처럼 드리워지는 느낌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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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이었던 건 스님의 말투, 혹은 문체(?)였다. ‘스님’이라는 단어에서 막연히 떠올리게 되는 엄숙함만 존재하는 책은 아니다. 서문에서 툭 튀어나오는 ‘현타’ 같은 표현을 보고는 살짝 웃음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글과 사진 속에 세상을 오래 바라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담백이 나직이 베여 있어서 무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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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뭔가 인생에 대해 선명한 답을 주는 책은 아니다. 단지 지친 삶 속에서 잠깐 숨을 고르는 시간을 선사해주는 책이라고 해야겠다. 책의 제목처럼 진자로 바람을 손에 쥘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우리를 통과해 지나가는 순간 바람을 마음껏 누리고 느낄 수있는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찰나의 순간들을 조용히 붙잡아 책에 담아냈다. 마음이 조금 심란한 날, 이 책을 통해 쉼을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좋겠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좋은 책이다.



* 이 책은 담앤북스(@dhamenbook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맨손으로바람을움켜쥐다 #원철스님 #담앤북스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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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도서관 : 나폴레옹 ㅣ 인물 도서관 4
김현정 지음 / 구텐베르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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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도서관 : 나폴레옹> 김현정, 구텐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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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로 유명한 나폴레옹. 사실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세계사를 속속들이 잘 알지는 못해 실제 그가 세계사적으로, 그리고 유럽의 역사 속에서 어떤 정도의 위상을 가진 인물인지 대략적인 감만 있고 다 알지는 못했다. 어렸을 적 위인전에서는 본 나폴레옹은 그저 작은 키와 큰 야망을 가진 남자 정도로만 기억이 나고... 사실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별로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아주 흥미로웠다. 이 책은 흔한 평전처럼 출생부터 몰락까지를 쭉 따라가는 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하나의 도서관처럼 펼쳐놓고, 십진분류법에 따라 여러 서가를 오가며 책을 읽는 느낌을 준 독특하게 기획된 책이었다. 총류, 철학, 종교, 사회과학, 자연과학, 기술과학, 예술, 언어, 문학, 역사. 처음에는 조금 낯설기는 했는데, 읽다 보니 이런 구성이 신선하고 재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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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혁명의 아들이었지만 스스로 황제가 되었고, 능력주의를 내세웠지만 자기 가족들을 유럽의 왕좌에 앉혔다. 법과 제도를 정비한 근대적 통치자였지만, 동시에 전쟁과 지배의 그림자를 길게 남긴 정복자이기도 했다(이렇게 써놓고 보니 모순 덩어리 그 잡채인듯...). 권력을 거머쥔 자의 모순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기 때문에 나폴레옹이란 문제적 인물이 매우 흥미로운 것 같기도 하다. 영웅이라고 딱 떨어지게 호명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단순한 폭군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도 유럽의 근대사에 너무 영향을 끼친 인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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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나폴레옹 법전, 행정 체계, 이집트 원정과 로제타석, 예술 속 이미지 정치, 그가 남긴 말과 읽었던 문학까지 많은 것들을 다룬다. 한 인물을 깊이 있고 밀도 있게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랑스 혁명 이후의 유럽, 근대 국가의 형성, 권력과 이미지의 관계까지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 아닌가 한다. 그는 영웅이었을까? 아니면 폭군이었을까? 이분법적으로 어느 하나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이 입체적인 인물이 흥미로우면서도 참 놀랍기도 하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낸 자꾸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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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폴레옹을 딱히 멋있게 포장하는 책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상당히 객관적인 견지에서 친절하게 나폴레옹이란 사람에 대한 설명을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내 준다.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에 붙은 먼지를 탈탈 털어내는 책이라고 해야할까? 나폴레옹을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이름만 알고 제대로 깊이있게 알아본 적은 없는 사람에게도 좋은 시작점이 되어줄만한 책이다. 나폴레옹 한 사람에 대한 전기처럼 읽힐려나 생각했는데, 막상 다 읽고 나면 한 시대의 욕망과 균열을 함께 바라본 듯한 기분이 든다. 기대 이상으로 나폴레옹이란 인물의 입체적인 모습에 감탄하며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 이 책은 구텐베르크(@gutenberg.pub)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인물도서관 #나폴레옹 #김현정 #구텐베르크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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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바이브 코딩 마스터 - Lovable로 만드는 5가지 프로젝트
정의석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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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바이브 코딩 마스터 - Lovable로 만드는 5가지 프로젝트> 정의석 · 정윤식, 영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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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연구하고 활용하는 입장에서, 요즘 '바이브 코딩'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든다. 한편으로는 정말 대단한 시대가 왔다 싶다. 예전 같으면 웹서비스 하나를 만들기 위해 HTML, CSS, JavaScript, 백엔드, 데이터베이스, 배포까지 차근차근 배워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연어로 '이런 느낌의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라고 설명하면 AI가 화면을 만들고, 코드를 짜고, 오류를 고쳐준다. 말 그대로 아이디어가 곧 첫 번째 코드가 되는 시대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 그렇게 쉬울까? AI가 코드를 짜준다고 해서 내가 개발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 지점에서 꽤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는 책이다. “AI가 다 해줍니다!” 같은 식의 어그로성 선전문구가 아니라, AI와 함께 서비스를 만들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디서 막히며, 완성 이후에는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주기 때문에 바이브 코딩에 대해 좀 더 실질적인 접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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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Lovable이라는 AI 웹앱 제작 도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자기소개 페이지처럼 가벼운 프로젝트에서 시작해, 가게 홈페이지, 로그인과 장바구니가 있는 온라인 스토어, 예약 시스템, 결제 시스템까지 점점 난이도를 올려간다. 실제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실습해 볼 수 있게 만들어 준 챕터 구성이 매우 좋았다. 아무리 바이브 코딩이라고는 해도 처음부터 엄청난 서비스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작은 화면 하나를 만들어보는 경험에서 출발해 '아, 이런 식으로 기능이 붙는구나'라는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성이었다. 특히 Supabase나 Stripe 같은 도구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실제 서비스에 가까운 바이브 코딩도 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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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프롬프트를 단순히 AI에게 던지는 명령어로만 다루지는 않는 것 같았다. 프롬프트는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드러나는 설계도임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예쁜 홈페이지 만들어줘”보다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동선을 따라, 어떤 기능을 사용하게 할 것인지”를 입력한다면 훨씬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당연한 걸 놓칠 때가 많다. 결국 바이브 코딩에서 중요한 능력은 문제를 구조화하고 결과물을 예측해보고 판단하는 감각을 기르는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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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책을 읽다 보면 바이브 코딩이 마냥 낭만적인 일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로그인, 데이터베이스, 결제, 보안, 배포, 도메인 연결 같은 과업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프롬프트만 잘 입력하면 다 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환상은 아주 빠르게 식는다. AI가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것은 맞지만, 그 결과물이 제대로 된 구조인지, 보안상 문제는 없는지, 사용자가 실제로 쓸 만한지는 반드시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특히 만드는 것과 운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임을 또 알 수 있었다. 서비스를 브라우저에 띄우는 순간의 기쁨과, 그 서비스를 계속 유지하고 고치는 일 사이에는 꽤 큰 간격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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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이브 코딩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꽤 든든한 안내서다. 아주 쉽기만 한 책은 아니다. 분량도 있고, 중간부터는 낯선 용어와 설정도 제법 나온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AI 시대의 개발을 너무 가볍게 포장하지만은 않으면서도, 실제로 서비스를 만들 때 마주하게 되는 과정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나니 나도 바이브 코딩으로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싶은게 생겼다. 많이 테스트해보고 싶다. 그리고 동시에 제대로 만들려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많은 것들을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이 책은 영진닷컴(@ydot2)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AI바이브코딩마스터 #정의식 #정윤식 #영진닷컴 #바이브코딩 #Lov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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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이인열 지음 / 온프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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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이인열, 온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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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 혹은 추리소설을 읽을 때 나는 보통 ‘범인이 누구인가’를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는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그 사람을 어떻게 범인으로 증명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했다. 초반부터 의심스러운 인물은 분명히 보이는데 심증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력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수사는 영화처럼 단숨에 치고 나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가보다. 저자가 실제로 베테랑 수사관이었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보니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마음이 조금은 아프기도 했다. 수사는 지워진 흔적과 비협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작은 단서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이 책은 실감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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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5년 강남 오피스텔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라고 한다. 제목의 408은 사건이 벌어진 오피스텔 호수이고... 한여름 아침, 112로 걸려온 다급한 신고 전화.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된 결혼을 앞둔 여성의 죽음과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 시작부터 사건은 끔찍하지만 책은 그 자극적인 사건에만 주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건이 벌어진 뒤, 형사들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읽다 보면 이 책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긴 수사 기록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주자들을 일일이 조사하고, 구강 세포를 채취하고, 얼굴 사진을 확보하고, 지방까지 내려가 사람을 만나고, 욕을 먹으면서도 다시 묻고 확인하는 과정들이 꽤 자세하게 소설 속에서 묘사된다. 실제 수사는 훨씬 지루하고 고된 반복에 가까운 것 같다. 누군가를 의심하면서도 티 내지 않아야 하고, 범인일지도 모르는 사람과 계속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일이라니... 생각만 해도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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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수사관이 쓴 소설이라 그런지 이런 부분의 현실감과 생동감이 확실히 느껴졌다. 상부의 압박, 팀 간 경쟁, 특별 승진을 둘러싼 분위기 같은 것도 경찰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전해 듣는 느낌이 났다. 형사들도 사람이고, 조직 안에서 움직이는 직장인이라는 점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럼에도 사건을 놓지 않고 집요하게 추적하는 전문직의 사람들이라는 것도 느껴졌다. 휴가를 반납하고, 집에 못 들어가고,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도 현장을 다시 확인하는 사람들. 이런 장면들을 보다 보니 '경찰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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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었던 건 범인에게 쓸데없는 사연이나 서사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떤 범죄소설은 범죄자의 내면을 파고들면서 독자가 그를 이해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범죄자는 그냥 범죄자다. 피해자의 삶이 사라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 앞에서 누군가는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책에 들어 있는 ‘몰가드’ 책갈피도 꽤 독특했다. 삽화 위에 대면 숨겨진 단서가 보이는 방식인데, 그냥 재미 요소로만 붙어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독자가 잠깐이나마 수사에 참여하는 기분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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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반전이나 속도감 있는 전개를 추구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대신 이 책에는 실제 사건에서 비롯된 무게와, 그 사건을 끝까지 따라간 사람들의 집요함이 녹아 있었다. 다 읽고 나니 범인을 잡는다는 일이 단순히 통쾌한 결말로 가는 과정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려는 일. 이 책은 그 과정을 꽤 묵직하게 보여준다.



* 이 책은 온프북스(@onpbook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408 #이인열 #온프북스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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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책
후안 비요로 지음, 보탬 옮김 / 열림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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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책> 후안 비요로,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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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이 상당히 어지러웠다(겨우겨우 다 읽었다). 도서관이 우주가 되고, 책 한 권이 세계 전체를 삼키고, 이야기는 끝나는 대신 다른 이야기로 계속 미끄러지는, 처음 보는 낯선 작품. 솔직히 읽는 동안에는 “이 작가 양반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쓴 걸까?”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그런 복잡하고 낯선 세계를 한 번 경험해 보고 나니 마법같고 판타지 같으면서도 의미와 메시지를 잘 숨겨놓은 작품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아니, 거부감이 없어진 편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보르헤스가 자꾸 떠올랐다. 순한 맛이 보르헤스 작품의 느낌이랄까? 동화같으면서도 마법같은 이야기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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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부모의 별거로 마음이 복잡해진 소년 후안이 여름방학 동안 삼촌 띠또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삼촌의 집이 보통 집이 아니다. 책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책들이 집을 점령하고 인간에게 방 한 칸을 빌려준 수준이다. 더 이상한 건 그 책들이 얌전히 꽂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책들은 숨어버리고, 도망가고, 독자를 시험하고, 어떤 책은 자기를 읽을 사람을 직접 고른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독서는 조용한 취미가 아니라 꽤 험난한 추격전인 것이다. 이 설정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었다. 보르헤스 작품에서 도서관은 지식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이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도서관도 비슷하다. 다만 보르헤스의 도서관이 사람을 철학적 현기증에 빠뜨린다면, 후안 비요로의 도서관은 그 현기증에 장난기와 성장담을 섞어놓는다. 책과 세계와 독자가 서로 얽혀 있다는 감각만큼은 분명히 보르헤스적이지만, 모험이 넘치면서도 다정한 느낌은 이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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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책을 내가 고르고, 내가 읽고, 내가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책은 그렇게 쉽게 길들여지는 물건이 아니다. 오히려 책 쪽에서 독자를 살핀다. 이 사람이 나를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인지, 아직은 아닌지. 좋은 책을 읽을 때 가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책을 발견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책이 나를 선택해준 것 같은 느낌, 내가 책장을 넘기며 읽는 것 같지만 사실은 책이 내 마음 속을 먼저 뒤적이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은 그 이상한 순간을 아주 귀엽고도 섬세한 판타지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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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에게 까따리나는 첫사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책을 더 풍성하게 읽도록 돕는 인물이다. 혼자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문장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갑자기 빛날 때가 있다. 까따리나는 후안에게 그런 존재인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같은 풍경도 달라 보이고, 별것 아닌 말도 마음을 동하게 만든다. 후안이 까따리나에게 건넨 하트 모양 강가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이 계속 변하는 건 책이 변덕스러워서라기보다, 후안의 마음과 읽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혼자서 읽으면 납작하게만 읽히는 문장이 함께 읽으면 더 풍성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것처럼, 사랑도 함께하는 독서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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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완독이라는 목표를 향해 책을 정복하듯 읽을 때가 있다. 그로 인해 책에 대한 피로감이 생기고 이른바 '책태기'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책이 나 자신을 더 깊게 읽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좋은 책은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아서 이 책 속의 '야생의 책'처럼 끝없이 찾아가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보르헤스의 도서관에서 길을 잃은 적 있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농담처럼, 카프카의 불안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조금 다정한 위로처럼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상한 도서관에서 꽤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잃을 수 있을 것 같다.



* 이 책은 열림원(@yolimwon)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야생의책 #후안비요로 #열림원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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