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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요, 투우사여 ㅣ 암실문고
페드로 레메벨 지음, 임도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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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요, 투우사여> 페드로 레메벨,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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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제목이 아주 맘에 들어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려워요, 투우사여』라니! 뭔가 오래된 노래 같기도, 사랑 고백 같기도, 혹은 위험한 암호같기도한 감각적이고 세련된 제목에 눈길이 갔다. 그런데 실제로 이 소설, 기대만큼이나, 세련된 제목만큼이나 정말 놀랍고 재밌는 서사로 가득했다(매우 만족!). 사랑 이야기인데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으며, 정치적인 내용이 들어있으면서도 딱딱하지도 않았다. 화려한 자수실과 싸구려 향수 냄새,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 그리고 어느 순간 방 안에 숨어드는 총과 화약 냄새가 함께 섞여 있는 듯한 그런 빈티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그런 이야기가 꽉꽉 찬 느낌의 소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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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배경은 1986년 칠레 산티아고, 피노체트 군사독재 아래에서 사람들은 검문당하고, 시위는 진압되면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공포와 억압이 만연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 소설의 중심에 선 인물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혁명가도, 지식인도, 영웅도 아니었다. 가난한 골목의 낡은 집에서 부자들의 식탁보에 자수를 놓으며 살아가는 로카, 그러니까 ‘앞집 미친년’이라 불리는 늙은 퀴어 인물이었다. 로카는 우연히 만난 청년 카를로스를 사랑하게 된다. 젊고 잘생기고 다정한 카를로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대학생이 아니라 독재 정권에 맞서는 지하 저항세력의 일원이다. 로카의 집은 카를로스로 인해 어느새 비밀스러운 짐을 맡기는 공간이 되고, 모임 장소가 되고, 위험한 작전의 한복판이 되어버린다. 로카도 수상한 상자와 낯선 사람들, 자꾸만 비밀을 숨기는 카를로스의 태도를 보며 어느 정도 카를로스의 정체에 대해 눈치챈다. 그런데도 그는 모르는 척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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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사랑은 처음부터 공평하지 하지 못한 사랑이다. 로카는 전부를 내어주지만 카를로스가 로카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것은 로카가 준 것보다 훨씬 작다. 사랑과 마음을 주는 것과 받는 것에 대해 나 역시 괴로워해 본 적이 있기에 읽는 내내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로카의 마음이 너무 선명해서였을까... 하지만 나는 로카가 전혀 초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로카는 누구보다 현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카를로스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두 사람이 같은 미래로 갈 수 없다는 것, 이 만남이 아주 예외적인 순간에만 가능했다는 것까지 다 알았을테다. 그래서 마지막에 로카가 내리는 선택은 슬프지만 비참해서는 안 된다. 사랑했으나 매달리지 않는 사람의 품위를 보여준 로카가 정말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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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교과서로 접했던 1980년대 한국의 시대상이 떠올랐다. 군사독재, 거리 시위, 최루탄, 검문,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 칠레의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우리 역시 이런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암흑과도 같은 시대를 거창한 역사적 서술로 보여주는 책은 아니다. 시대의 아픔과 슬픔이 개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시대의 부조리가 한 개인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지 개인의 서사를 통해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책이 좋다. 시대의 아픔이 개인의 아픔과 연결되는 그런 작품들. 혁명이라는 말보다 먼저 사랑이 드러나고, 이념보다 먼저 사람의 외로움이 드러나는 이야기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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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실패한 망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이긴 하다. 정치적 거사도 실패하고, 로카의 사랑도 완전히 응답받지 못한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면 신기하게도 로카의 용기어린 마음과 선택이 가슴 깊이 남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퀴어 로맨스라고만 부르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에 가장 약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시대를 통과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로카는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자기 집의 문을 열었고, 구호를 외치지 않았지만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그 작고도 용감한 마음이 어떤 혁명보다 오래도록 빛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은 을유문화사(@eulyoo)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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