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 - 러닝 앤솔러지
김연수 외 지음 / 판미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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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 김연수 · 노지양 · 박은지 · 윤이나 · 김연덕 · 김혜나 · 최유안, 판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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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리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숨이 턱끝까지 가빠지는 순간을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고 힘든 줄 알면서 굳이 밖으로 나가 뛰는 사람들의 심정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요즘 많이들 러닝을 하니까 나도 관심은 생기긴 했지만, 그리도 여전히 뛰는 건 잘 못하겠고 애정을 붙이기도 어렵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읽는 건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다. 김연수 작가를 비롯해 일곱 명의 작가가 저마다의 달리기를 들려주는 러닝 에세이 앤솔러지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을 읽는 동안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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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 명의 작가는 모두 달리기를 말하지만, 달리는 이유도, 속도도, 바라보는 풍경도 모두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머릿속을 맴도는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는 상실과 불안을 견디기 위해 달린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지켜내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만큼 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 달리고 싶지 않은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보니 이 책은 무작정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라고 재촉하는 책이 아니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삶이 극적으로 바뀌고 반드시 더 멋진 사람이 된다는 식의 유치한 자기계발서도 아니다. 그저 타인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숨의 깊이를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만히 일깨우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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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김연수 작가의 ‘15분 달리기’였다. 매일 달리되 딱 15분만 달린다는 규칙에는 좋아하는 일을 오래 지속하기 위한 현실적인 지혜가 담겨 있었다.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날에도 자신을 무작정 비난하지 않는 것. 한꺼번에 잘해내려 애쓰기보다, 내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만큼만 해두고 멈추는 것. 이 대목은 비단 달리기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배움과 애정에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오랫동안 춤을 배워온 나 역시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날을 자주 마주한다. 예전엔 잘되던 동작이 버거워지면 타인의 화려한 속도를 힐끗거리거나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조급해지곤 했다. 하지만 결국 오랫동안 춤을 배울 수 있었던 이유는 잘되지 않는 날에도 터벅터벅 다시 학원문을 열고 들어오는 꾸준함 때문이었다. 계속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려는 작가들의 마음을 느끼며 내가 춤을 오랫동안 배울 수 있었던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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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솔직하게 도망이라 부르는 부분도 참 좋았다. 세상은 늘 정면 돌파만을 용기라 말하지만, 모든 문제를 그 자리에서 온몸으로 받아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 생각들과 잠시 거리를 두고, 몸을 움직여 복잡한 마음을 식히는 일 역시 훌륭한 생존법이다. 달린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씻은 듯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그 문제를 조용히 바라볼 작은 틈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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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오랫동안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게 된다. 시간을 내고, 때로는 실패하고, 지쳐 쉬다가도 이내 다시 돌아온다. 그러니 무언가를 깊이 좋아할 때 숨이 차오르는 것은 어쩌면 가장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숨이 차오름에도 또다시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잘되지 않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시작해볼 일이 있다는 것. 이 책은 그런 것들을 향한 마음을 오래도록 품고 살아가는 다정한 태도가 주는 위로가 담겨있는 책이었다.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가쁜 숨 뒤에 숨은 애정만큼은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 책은 판미동(@pan.min_book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좋아한다말하기엔숨이차지만 #앤솔러지 #판미동 #북스타그램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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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너
반하라구 지음 / 테라코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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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너> 반하라구, 테라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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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올씩 공들여 빗어놓은 듯한 섬세한 털, 그윽한 빛을 머금은 눈동자, 삐뚤어진 귀와 미묘한 입꼬리까지... 이 책에서 민화풍으로 그려진 강아지와 고양이 그림은 그냥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그림 옆에 조용히 자리 잡은 짧은 사연들을 함께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작가가 정성껏 그려낸 것은 단순한 동물의 외형이 아닌, 누군가가 반려동물을 온 마음 다해 사랑해온 방식 그 자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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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하라구 작가는 초상화를 의뢰받으면 제일 예쁘게 나온 사진 대신 '가장 그 아이다운 사진'을 골라달라고 청한다고 한다.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온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는 아주 은밀하고 사소한 표정들이 있을 것이다. 낯선 사람 앞에서 살짝 접히는 귀, 졸음이 솔솔 올 때만 아련해지는 눈빛, 기분이 들뜰 때 한쪽으로 슬그머니 말아 올라가는 꼬리까지. 그림 속 아이들이 하나같이 당장이라도 밖으로 걸어 나올 듯 생생한 까닭은, 작가가 사랑하는 이들만이 알아챌 수 있는 그 사소한 차이들을 놓치지 않고 화폭에 담아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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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과 복숭아, 나비와 동백꽃 같은 전통 민화의 소재들 역시 단순한 배경 장식으로 쓰이지 않는다. 아이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 사랑받으며 평안하기를 소원하는 다정한 기도가 그림 곳곳에 깃들어 있다. 현실에서 어떤 쓸쓸한 사연이나 아픔을 겪었든, 적어도 이 그림 안에서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품위 있는 존재로 우뚝 서는 것이다. 특히 길 위의 고양이를 왕실의 귀한 존재로 탈바꿈시킨 「나비와 중전고양이」 그림은 마음에 묘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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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페이지에서는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지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이미 가슴 아픈 이별을 겪었거나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는 이들의 마음이 느껴져 잠시나마 조용히 그 페이지에 머물게 되기도 했다. 작가가 먼저 떠나보낸 반려동물을 기억하기 위해 시작했던 붓질은, 이제 수많은 사람이 소중한 추억을 가만히 맡겨두는 작고 따뜻한 보관함이 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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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너』는 사랑하는 존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을 모아둔 감성 기록집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희미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수염 한 가닥과 눈동자의 사소한 빛까지 정성으로 살려낸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가장 그 아이다운 모습'으로 오래도록 당당하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 이 책은 테라코타(@terracotta_book)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그림으로만나는너 #반하라구 #테라코타 #민화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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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아래 올리브 (사인인쇄본) ㅣ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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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아래 올리브> 김초엽, 자이언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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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감사하게도 자이언트북스에서 김초엽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태양 아래 올리브>의 가제본 서적을 받아서 읽게 되었어요! 근데 책과 함께 도착한 포장에는 아주 강력하게 '스포 금지!' 당부가 적혀 있더라고요. 🫣 실제로 읽어보니 정말 초반의 작은 설정 하나를 알게 된다면 책을 읽는 맛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포일러는 싹 빼고 책에 대한 감상 위주로 가볍게 서평을 적어볼까 합니다!


🫒

이야기는 정말이지 단 한 부분도 닮은 구석이 없는 두 사람이 함께 길을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한 사람은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감정을 중요시 해요. 두 사람은 각각 과학과 신앙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겠죠?! 마치 기름과 물처럼 절대 섞일 수 없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마다 팡팡 튀는 스파크가 정말 흥미진진해요. 국경을 넘나드는 여정 속에서 펼쳐지는 스피디한 전개 덕분에 마치 잘 만들어진 로드무비 한 편을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어떻게든 옆자리를 지키는 두 사람의 케미가 이 책 최고의 관전 포인트예요!


☀️

김초엽 작가님 소설은 늘 과학적 상상력 속에 사람을 향한 다정한 마음이 예쁘게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 역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같은 머리 아픈 질문을 던지지만, 절대 어렵거나 딱딱하게 풀어내지 않아요. 책 속에는 따스하고 다정한 순간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해서, 이미 뿌리내리고 예쁘게 자라난 생을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낯선 세상에서 어떻게든 자신만의 잎을 피워내는 소설 속 인물들을 향한 작가님의 다정한 시선이 제목에 그대로 담겨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누군가의 곁에 남아주려는 마음, 정답을 모르더라도 기꺼이 서로를 믿어주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소설입니다. 김초엽 작가님 덕분에 다정과 연대의 힘을 다시 한번 믿어보게 되네요! 앞으로 출간된 책을 통해 문장이 주는 서사와 온기를 꼭 직접 경험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 자이언트북스로(@giantbooks_official)부터 가제본 서적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김초엽 #자이언트북스 #태양아래올리브 #버디물 #가제본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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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 사유하는 인간
린지 스톤브리지 지음, 손성화 옮김 / 사람in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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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 사유하는 인간 > 린지 스톤브리지, 사람in



💭 

한나 아렌트는 내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철학자다. 한나 아렌트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혹자는 '악의 진부성'이라고도 하며, 유시민 작가님은 '악의 비속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막상 그 깊이를 누군가에게 제대로 설명하려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홀로코스트에서 수많은 유태인들을 학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아이히만이 유별난 악마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정도의 설명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 책, 린지 스톤브리지의 『한나 아렌트―사유하는 인간』은 그 개념의 진짜 무게를 새삼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아렌트가 참으로 경계했던 것은 인간의 평범함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행하는 일의 결과와 의미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무사유(無思惟)’였다는 것을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

저자는 아렌트의 사상을 딱딱한 개념어로 늘어놓는 대신, 그의 치열했던 생애를 따라가며 그녀만의 독자적인 사상이 싹튼 궤적을 조명한다. 독일 출신 유대인으로 나치의 박해를 피하고 프랑스 수용소를 탈출해 오랜 시간 무국적자로 살아내야 했던 경험. 그녀에게 난민, 전체주의, 자유, 그리고 정치적 책임은 자신이 직접 겪어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온몸으로 던진 질문과 대답에 대한 기록이었다. 책 속에서는 한 사람의 삶과 그 사람이 전개한 사상이 잘 포개어지면서,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철학이 비로소 현실의 언어로 다가온 느낌도 들어ㅆ다.


💭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렌트가 '사유'를 지식이나 명석함과 동일시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조직의 지시를 똑똑하고 능숙하게 수행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칠 파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명령과 규칙이라는 안락한 울타리 뒤에 숨어 스스로 판단하기를 멈춘 아이히만의 모습은, 일상 속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말에도 담겨있을 수 있다.

"원래 그렇게 해왔으니까."

"다들 동의한 일이니까."

"내 권한 밖의 일이니까."

아렌트가 말하는 사유는 관행이나 다수의 판단에 기대어 마음을 편하게 만들고 싶은 바로 그 순간에 잠시 멈추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고요히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과도 같았다.


📚

'외로움'이란 개념을 정치적 맥락으로 확장해 바라본 대목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아ㅆ다. 고립된 사람은 자신을 받아주는 집단이 나타나면, 그곳이 아무리 위험한 사상을 담고 있더라도 거부하지 못한 채 매달리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를 소환한다. 전체주의는 억압의 얼굴뿐만 아니라, 외로운 이들에게 소속감과 확신을 주며 다가온다. 자극적인 주장에 휩쓸려 빠르게 편을 나누는 현대 온라인 공간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통찰력있는 분석이었다. 


💭

이 책은 아렌트를 결점 없는 성인으로 미화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판단은 때로는 논쟁적이기도 했고, 때론 다른 이의 고통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모순과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덕분에 독자는 한나 아렌트라는 인물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기도 하고 또 반박하기도 하며 비로소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연습을 해보게 되는 것 같았다. 자신의 확신마저 끊임없이 검토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사유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이런 불완전함이야말로 책의 주제와 가장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 이 책은 단단한맘(@gbb_mom), 포포리서평단(@ppoppory_) 모집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gbb_mom 

@ppoppory_  

@saramin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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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ㅣ 그늘 중편선 5
이서도 지음 / 그늘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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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이서도,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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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를 읽는 동안 묘한 낯섦과 이질감이 잔뜩 밀려온다. 무심하고 건조한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알고 있던 자연스러운 관계와 세계의 좌표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함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세계관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읽어가다 보면 점차 감춰진 단서들을 점점 펼쳐지기 시작한다. 덕분에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인간을 모든 서사의 중심에 놓아두었던 오만한 시선부터 내려놓으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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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세계는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인 곳이다. 감정이란 그저 논리적, 이성적 판단을 흐리는 불필요한 오류에 불과하며 타인의 사정이나 고통을 고려하는 일은 시스템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결함쯤으로 취급된다. 주인공이 다루는 생명들은 필요에 따라 입고되고, 관찰된다. 그리고 목적을 다하면 곧 폐기되고 만다. 생명을 오직 표본이나 개체 수로만 다루는 담담한 문장들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믿는 고등 존재의 조건이, 실은 무감각하고 예측 가능한 반응만 보이는 실험실의 표본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책 전체의 분위기 속에 아이러니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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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감정을 지닌 존재들의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면모를 특별히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환경을 파괴하고 잔혹한 선택을 반복해 온 역사를, 정말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기묘한 능력이 있다. 자신의 감각과 마음을 타인에게까지 확장하고 전달하는 능력이다.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존재와 나누고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생명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무모함을 보인다. 모두가 무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존재 앞에서 혼자서라도 잠시 멈춰 서게 되는 것. 견고하고 냉정한 세계의 규칙에, 작지만 깊은 균열을 내는 것은 언제나 그 머뭇거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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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두고 손쉽게 "이해한다"라고 말하는 일은 때로는 아주 크나큰 오만이 되곤 한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타인의 삶을 내 경험의 틀 안으로 끌어와 함부로 정의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전혀 다른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 존재 역시 자신만의 감각과 선택을 지닌 독립된 생명임을 인정하는 일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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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이라는 분량 특성상 독특한 세계관의 레이어가 더 깊게 확장되기 전에 작품이 끝난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 짧은 길이 덕분에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오히려 더 잘 벼려진 칼날처럼 선명할 수 있는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면 책의 제목인 『종』이 생물학적 분류에 쓰이는 종(種)을 뜻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뒤늦게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작은 종(鍾)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장 자체의 서늘한 분위기와 철학적인 화두를 느낄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 이 책은 그늘(@geuneul_book)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종 #이서도 #그늘 #그늘중편선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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