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ㅣ 그늘 중편선 5
이서도 지음 / 그늘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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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이서도,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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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를 읽는 동안 묘한 낯섦과 이질감이 잔뜩 밀려온다. 무심하고 건조한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알고 있던 자연스러운 관계와 세계의 좌표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함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세계관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읽어가다 보면 점차 감춰진 단서들을 점점 펼쳐지기 시작한다. 덕분에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인간을 모든 서사의 중심에 놓아두었던 오만한 시선부터 내려놓으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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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세계는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인 곳이다. 감정이란 그저 논리적, 이성적 판단을 흐리는 불필요한 오류에 불과하며 타인의 사정이나 고통을 고려하는 일은 시스템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결함쯤으로 취급된다. 주인공이 다루는 생명들은 필요에 따라 입고되고, 관찰된다. 그리고 목적을 다하면 곧 폐기되고 만다. 생명을 오직 표본이나 개체 수로만 다루는 담담한 문장들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믿는 고등 존재의 조건이, 실은 무감각하고 예측 가능한 반응만 보이는 실험실의 표본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책 전체의 분위기 속에 아이러니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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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감정을 지닌 존재들의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면모를 특별히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환경을 파괴하고 잔혹한 선택을 반복해 온 역사를, 정말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기묘한 능력이 있다. 자신의 감각과 마음을 타인에게까지 확장하고 전달하는 능력이다.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존재와 나누고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생명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무모함을 보인다. 모두가 무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존재 앞에서 혼자서라도 잠시 멈춰 서게 되는 것. 견고하고 냉정한 세계의 규칙에, 작지만 깊은 균열을 내는 것은 언제나 그 머뭇거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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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두고 손쉽게 "이해한다"라고 말하는 일은 때로는 아주 크나큰 오만이 되곤 한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타인의 삶을 내 경험의 틀 안으로 끌어와 함부로 정의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전혀 다른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 존재 역시 자신만의 감각과 선택을 지닌 독립된 생명임을 인정하는 일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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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이라는 분량 특성상 독특한 세계관의 레이어가 더 깊게 확장되기 전에 작품이 끝난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 짧은 길이 덕분에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오히려 더 잘 벼려진 칼날처럼 선명할 수 있는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면 책의 제목인 『종』이 생물학적 분류에 쓰이는 종(種)을 뜻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뒤늦게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작은 종(鍾)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장 자체의 서늘한 분위기와 철학적인 화두를 느낄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 이 책은 그늘(@geuneul_book)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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