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인문학 - 비늘과 딱지, 날개맥이 누설하는 ㅣ 지식 벽돌
이상헌 지음 / 초봄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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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인문학 - 비늘과 딱지, 날개맥이 누설하는> 이상헌, 초봄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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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 눈앞으로 갑자기 날아드는 벌레는 일단 피하고 봐야 할 성가신 존재일 것이다. 나비나 반딧불이처럼 멀찍이서 바라볼 때나 예쁠 뿐, '벌레'라는 단어는 대개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곤충 인문학』이라는 제목은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곤충을 가지고 인문학을 펼칠만한 콘텐츠가 있나 싶기도 했고. 하지만 이 책이 진짜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곤충의 생물학적 생김새만은 아니다. 딱지와 날개맥, 촘촘한 비늘과 학명, 그리고 표본 속에 남겨진 인간의 굴곡진 역사를 포착해 낸다. 정말 놀랍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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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곤충에게 붙은 학명의 유래를 추적하는 장이었다. 객관적인 분류 기준처럼 보이는 학명의 속살을 파고들어 가다 보면, 발견자의 자부심과 후원자를 향한 예우, 나아가 권력자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인간의 허영과 정치적 속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권력자의 이름이 조그마한 곤충의 몸에 남고, 역사에서는 까마득히 잊힌 인물이 어떤 딱정벌레의 학명으로 영원히 살아남기도 한다는 게 정말 재밌는 포인트였다. 곤충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조차 결국 인간의 영역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 사소한 이름표 안에도 시대의 정서와 이기심이 짙게 스며들어 있다니! 정말 흥미롭고 재밌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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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서사의 스펙트럼은 상상 이상으로 넓다. '멋쟁이딱정벌레'의 학명에서 출발해 폴란드 귀족 양코프스키와 연해주, 한반도 근현대사로 가지를 뻗는 이야기는 자못 경이롭다. 작은 이름 하나를 들여다보았을 뿐인데 백석과 이효석의 문학, 조복성의 곤충 채집기가 줄줄이 끌려 나온다. 세계적인 대작 『롤리타』를 남긴 작가 나보코프가 평생 나비를 좇았던 이야기나, 거대한 부를 쌓은 금융 재벌이 수십 년간 벼룩 표본을 모았다는 일화도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명성이나 부를 거머쥔 인물이라도 무언가에 깊이 마음을 빼앗긴 순간만큼은 영락없는 '곤충 덕후'였다는 사실에서 묘한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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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직접 카메라에 담은 사진들도 책의 생동감을 올려준다는 점에서 정말 좋았다. 나뭇잎처럼 자신을 완벽히 감춘 풀벌레, 금속성 광채를 내뿜는 딱정벌레, 털과 비늘이 촘촘한 나방의 미세 구조를 확대해 보면, 우리가 '벌레'라는 무심한 한 단어로 뭉뚱그려왔던 생명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롭고 정교한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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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곤충에서 시작된 서사가 역사, 문학, 미술, 정치로 끊임없이 가지를 뻗다 보면 방금 전까지 무슨 곤충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길을 잃을 느낌이 들 정도로 놀라운 순간들이 많은 책이었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바로 그 우회로에 있는 것 같았다. 단편적인 곤충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대상 하나를 열심히 파보다 보면 얼마나 무궁무진한 세계가 있는지를 몸소 증명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 이 책은 초봄책방(@paperback_chobom)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곤충인문학 #이상헌 #초봄책방 #북스타그램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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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나에게 단 한 번의 아침이 남아 있다면 (굿모닝 에디션) - 오늘이 끝나기 전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들
존 릴런드 지음, 최인하 옮김 / 북모먼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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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나에게 단 한 번의 아침이 남아 있다면 (굿모닝 에디션) - 오늘이 끝나기 전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들> 존 릴런드, 북모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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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기자인 저자가 취재를 위해 뉴욕에 사는 85세 이상 노인 여섯 명의 삶 속으로 불쑥 걸어 들어와, 1년 동안 그들과 함께 숨 쉬며 기록해 낸 현실적이면서도 다정한 삶의 현장이 기록된 책이었다. 여든다섯을 넘긴 이들에 관한 책이다보니, 그들의 방으로 들어서면 예쁜 감성 에세이에 나올 법한 따스한 햇살만 반기지는 않는다. 잘 낫지 않는 관절의 통증, 약봉지가 가득한 식탁, 좁은 복도를 구르는 보행기의 마찰음과 요양원의 헐거운 침대가 책 속에서 등장하는 다소 익숙치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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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노년의 빈곤과 질병, 고립을 조명하는 차가운 사회적 기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취재의 흐름은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몸은 서서히 마비되고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데도, 이들은 대체 무엇으로 오늘 하루를 견디고 심지어 미소 짓는가를 주안점에 두고 쓰여진 책이었던 것이다. 심장질환과 당뇨로 병원과 재활원을 오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며 눈을 반짝이는 프레드가 있는가 하면, 남편과 아들을 차례로 잃은 참혹한 슬픔 속에서도 스스로를 위로하는 주도권을 결코 남에게 넘겨주지 않는 핑이 있다. 요양원이라는 제약된 울타리 안에서 뒤늦게 설레는 사랑을 시작한 헬렌이나,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다가올 죽음보다는 오늘 당장 써 내려갈 글과 영화에 마음을 쏟는 요나스의 일상은 삶을 향한 열망이 얼마나 고집스러운 것인가를 증명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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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서사를 따라가며 가장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도움을 받는 법'이었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자기 몫을 스스로 해내는 것만이 어른의 태도라고 배운다. 타인의 호의를 받으면 마음 한구석에 빚이 쌓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고 도움을 청하는 일을 스스로의 무능이라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겠다는 고집은 타인과의 깊은 연결을 거부하는 벽이고 고립으로 향하는 지름길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나를 도울 수 있도록 내 옆 자리를 내어주는 일, 그 고마운 호의를 받아들인 뒤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만 온기로 되돌려주는 것 역시 서로를 잇는 다정한 사랑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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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노인들은 가혹한 현실을 무작정 긍정의 힘으로 포장하는 무책임한 낙천주의자가 아니다. 아픈 몸은 여전히 괴롭고 외로움은 좋은 생각 몇 번으로 쉽게 가시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쇠약해진 몸을 '실패'라 부르며 자책하는 대신, 지금의 조건 안에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낼 줄 안다.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와 통증을 곁에 둔 채로도, 그들은 포도 한 접시를 비우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친구와 싱거운 농담을 나누는 삶의 기술을 발휘한다. 타인의 노년을 취재하러 갔다가 30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자신의 삶과 늙어가는 어머니를 다시 돌아보게 된 저자처럼, 이 기록은 타인의 생을 깊이 들여다보며 스스로 더 다정한 인간이 되어가는 사람의 여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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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면 '단 한 번의 아침이 남아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오늘을 살아내는 실재하는 감각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다. 아마 우리 역시 인생에서 대단한 과업을 이루기보다는, 그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창밖을 바라보는 평범한 순간이 더 소중한 날이 많을 것이다. 좋은 날과 나쁜 날이 얼룩덜룩 섞여 있더라도, 그 어수선한 일상을 껴안으며 "이만하면 참 괜찮은 삶이었다"라고 나지막이 고백할 수 있는 용기.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내가 아직 손닿을 수 있는 작은 온기들을 조금 더 오랫동안,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 이 책은 북로망스(@_book_romance)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 : @_book_moment


#만일나에게단한번의아침이남아있다면 #인문 #책추천 #베스트셀러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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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쓰는 AI만 멍청해 보일까? - 같은 AI를 써도 결과가 달라지는 진짜 이유
이한빛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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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쓰는 AI만 멍청해 보일까? - 같은 AI를 써도 결과가 달라지는 진짜 이유> 이한빛, 생능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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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의 개요를 잡거나 다량의 문서와 자료를 정리할 때, 혹은 아이디어를 디벨롭 시키고 싶을 때 AI를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벽에 부딪힐 때가 생긴다. 분명히 의도를 잘 명시해서 명령했는데 엉뚱한 답변을 내놓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면, "왜 AI가 갑자기 이렇게 멍청해졌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바로 그 AI가 보이는 답답한 행태의 진짜 원인과 해결 방안을 이 책은 체계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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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AI 답변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를 단순히 프롬프트를 잘 쓰지 못해서라고 보지는 않는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사용자가 말하지 않은 채 머릿속에만 남겨둔 설명의 공백이다. "보고서처럼 써줘", "전문적으로 정리해 줘", "자연스러운 문체로 만들어줘"라는 요청에는 사실상 아무런 구체적 기준이 들어있지 않다. 누구를 위한 자료인지, 어떤 의사결정을 위한 글인지, 절대 피해야 할 표현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은 채 상대가 알아서 의도를 파악해 주길 기대하는 셈이다. 사람은 표정이나 관계, 맥락을 통해 그 빈틈을 파악해 낼 수 있지만, AI에게는 그런 눈치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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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제안하는 '설명 엔지니어링'은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꺼내는, 일종의 언어 습관에 가깝다고 할 수있다. 즉 AI에게 좋은 답변을 끌어내는 힘은 사용자가 자신의 기준과 판단을 얼마나 구체적인 언어로 정리해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정리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상태 : 내가 지금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는가?

- 목적 : 이 결과물로 무엇을 달성하려는가?

- 제약 : 반드시 지키거나 피해야 할 경계는 무엇인가?

- 단계 :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결과를 전달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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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설명되지 않은 공백을 AI가 가장 무난하고 평균적인 방식으로 채워버린다는 부분이었다. 무엇을 중요하게 볼지 기준을 세우지 않은 채 결론부터 요구하면, 우리는 AI가 내놓은 평균값을 자신의 판단처럼 착각하기 쉽다. 편리를 얻는 대신 생각의 출발점과 주도권을 기계에 넘겨줄 위험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모든 문제의 원인이 사용자에게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맥락을 완전히 파악해 지시해도 AI는 여전히 환각(hallucination)을 일으키고 복잡한 조건에서 오작동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할 수 없는 모델의 한계를 탓하기 전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설명의 명확성부터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해준다. 그 점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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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복사해서 쓸 프롬프트 모음집을 찾는 이들에게는 다소 원론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AI가 내놓는 답변이 늘 어딘가 밋밋하고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다고 느꼈던 이들에게는 명확한 이정표가 되어주는 좋은 책이란 생각을 했다. AI를 잘 쓴다는 것은 그저 기계에게 프롬프트를 잘 입력하는 기술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는 내가 처한 상황과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스스로 설정하는 능력이 아마도 훨씬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다. 대AI 시대에 AI를 정말 잘 활용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 이 책은 생능북스(@booksr_official)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왜내가쓰는AI만멍청해보일까 #이한빛 #생능북스 #북스타그램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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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아이
실비 제르맹 지음, 이창실 옮김 / THE CIRCLE PRESS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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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아이> 실비 제르맹, THE CIRCLE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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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가득 채운 개기일식 이미지가 묘하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매트한 질감으로 처리된 양장본 책의 표지에 넘쳐 흐르는 검은 원과 하얀 코로나.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본 표지는, 환했던 태양을 검은 원이 천천히 집어삼키는 참혹함과 그 소설의 서사를 완벽히 대변하는 결정적 상징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기 넘치던 한 아이의 세계가 짙은 어둠에 잠식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완전히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빛이 아주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까지. 『메두사 아이』는 한 인간의 삶에 드리운 길고 아픈 개기일식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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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뤼시의 세계에는 경계가 없었다. 아이는 동식물과 바람, 늪,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도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었고, 친구 루페와 함께 올려다보는 밤하늘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자유롭고 풍성했던 유년이 한순간에 짓밟히는 장면은 더욱 참혹하다. 어떤 참혹한 사건을 겪게 된 뤼시는 그 사건 이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폭력은 아이가 가진 거의 모든 세계를 파괴한다. 뤼시는 자신의 고통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은 도리어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폐쇄된 감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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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남은 것은 집요한 '시선'이다. 시선만으로도 타인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신화 속 메두사처럼, 아이는 자신에게 끔찍한 위해를 가한 존재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그 눈은 복수의 무기이자 더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만들어 낸 방어막같은 것이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괴물의 얼굴을 하고 살아가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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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제르맹의 문장은 숲과 빛, 냄새와 소리를 정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생생하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비극이 아름답고 고운 언어로 표현될 때 오는 묘한 불편함마저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아이의 파괴된 정신세계를 체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이 소설은 상처를 극복하고 단숨에 행복을 되찾는 식의 손쉬운 결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사라진다고 해서 훼손된 시간이 되돌아오지 않으며, 복수가 끝난다고 해서 곧바로 온전한 삶으로 귀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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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아이』는 섣부른 희망이나 막연한 회복을 장담하지 않아서 역설적으로 깊은 신뢰감을 주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그 상처가 남긴 흉터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비가역적인 결말을 낳는 상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가 내 삶 전체를 영원히 통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순간을 찾아올 수 있다면 좋겠다. 상처를 가진 누구에게든 말이다. 책장을 닫고 다시 바라본 표지에 그려진 개기일식의 태양을 보며 빛은 잠시 가려졌을 뿐, 결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 @woojoos_story 진행으로 단체디엠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출판사 : @thecirclepress


#메두사아이 #우주서평단 #실비제르맹 #더써클프레스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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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바꾼 지구의 역사 - 식물과 동물, 그리고 진화의 위대한 로맨스
라일리 블랙 지음, 조정남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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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바꾼 지구의 역사 - 식물과 동물, 그리고 진화의 위대한 로맨스> 라일리 블랙,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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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역사를 다룬 서적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주인공은 늘 거대한 발톱과 이빨을 지닌 공룡, 혹은 사나운 포유류들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빽빽한 숲이나 풀밭은 그저 동물이 뛰어놀고 먹이를 찾는 배경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라일리 블랙의 『식물이 바꾼 지구의 역사』는 바로 그 배경 구석으로 밀려나 있던 초록의 생명들을 무대 한가운데로 불러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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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2억 년 전 바닷속 광합성 생물에서 출발해 육상 진출과 거대한 숲의 탄생, 꽃과 열매의 혁명, 그리고 빙하기 이후의 생태계까지. 식물은 결코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바위를 부수어 생명이 자랄 비옥한 흙을 만들고, 대기의 성분을 바꾸어 생물들이 숨 쉴 산소를 공급하며, 거대한 탄소를 몸 안에 저장해 기후의 균형을 맞추었다. 동물들이 살아갈 터전을 갈고 닦은 것은 다름 아닌 식물들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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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식물과 동물의 진화를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은 연쇄 반응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식물을 섭취하는 동물이 등장하자 식물은 잎을 질기게 만들거나 치명적인 독을 품었고 식물이 어여쁜 꽃과 달콤한 꿀을 내놓자 곤충과 박쥐는 그에 맞춰 몸의 구조를 바꿨다. 부제에 붙은 '진화의 위대한 로맨스'라는 표현처럼,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용이 아니라 수억 년에 걸쳐 서로를 밀고 당기며 정교한 생태계를 완성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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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지질학적 사실을 풀어내는 연출력이었다. 각 장의 도입부는 특정한 지질시대의 풍경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설같이 묘사한다. 습한 숲속에서 풀을 뜯는 초식공룡의 모습이나, 고대의 바닷가 풍경이 한 편의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물론 식물이 산소를 만들고 꽃과 곤충이 공진화했다는 거시적인 줄기 자체는 과학책을 즐겨 읽는 이들에게 아주 낯선 사실은 아니긴 했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도 '식물'을 중심축에 놓고 모든 것들을 다시 연결하는 순간, 지구의 역사는 전혀 다른 모양과 온도로 재구성되는 것만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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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계절 잎과 꽃을 피워내는 그 느린 식물들의 움직임 속에, 수억 년 동안 이 지구의 숨통을 트이게 했던 위대한 역사의 숨결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용하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세상을 빚어온 생명. 우리가 지금 숨 쉬고, 먹고, 발을 딛고 서 있는 모든 세계는 그 아름답고 정직한 초록의 시간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정말 좋은 책이었다!



* 이 책은 세종서적(@sejongbook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식물이바꾼지구의역사 #라일리블랙 #세종서적 #북스타그램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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