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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아이
실비 제르맹 지음, 이창실 옮김 / THE CIRCLE PRESS / 202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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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아이> 실비 제르맹, THE CIRCLE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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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가득 채운 개기일식 이미지가 묘하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매트한 질감으로 처리된 양장본 책의 표지에 넘쳐 흐르는 검은 원과 하얀 코로나.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본 표지는, 환했던 태양을 검은 원이 천천히 집어삼키는 참혹함과 그 소설의 서사를 완벽히 대변하는 결정적 상징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기 넘치던 한 아이의 세계가 짙은 어둠에 잠식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완전히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빛이 아주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까지. 『메두사 아이』는 한 인간의 삶에 드리운 길고 아픈 개기일식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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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뤼시의 세계에는 경계가 없었다. 아이는 동식물과 바람, 늪,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도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었고, 친구 루페와 함께 올려다보는 밤하늘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자유롭고 풍성했던 유년이 한순간에 짓밟히는 장면은 더욱 참혹하다. 어떤 참혹한 사건을 겪게 된 뤼시는 그 사건 이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폭력은 아이가 가진 거의 모든 세계를 파괴한다. 뤼시는 자신의 고통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은 도리어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폐쇄된 감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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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남은 것은 집요한 '시선'이다. 시선만으로도 타인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신화 속 메두사처럼, 아이는 자신에게 끔찍한 위해를 가한 존재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그 눈은 복수의 무기이자 더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만들어 낸 방어막같은 것이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괴물의 얼굴을 하고 살아가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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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제르맹의 문장은 숲과 빛, 냄새와 소리를 정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생생하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비극이 아름답고 고운 언어로 표현될 때 오는 묘한 불편함마저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아이의 파괴된 정신세계를 체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이 소설은 상처를 극복하고 단숨에 행복을 되찾는 식의 손쉬운 결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사라진다고 해서 훼손된 시간이 되돌아오지 않으며, 복수가 끝난다고 해서 곧바로 온전한 삶으로 귀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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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아이』는 섣부른 희망이나 막연한 회복을 장담하지 않아서 역설적으로 깊은 신뢰감을 주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그 상처가 남긴 흉터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비가역적인 결말을 낳는 상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가 내 삶 전체를 영원히 통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순간을 찾아올 수 있다면 좋겠다. 상처를 가진 누구에게든 말이다. 책장을 닫고 다시 바라본 표지에 그려진 개기일식의 태양을 보며 빛은 잠시 가려졌을 뿐, 결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 @woojoos_story 진행으로 단체디엠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출판사 : @thecircle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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