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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김영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누가 보아도 좋은 책일 것 같다.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면 더더욱 흥미를 가질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술가들은 저항이 아닌 창조라고 하기엔 그런것 같고 그냥 아무튼 다른 방향으로 무엇인가를 보는 듯하다.
첫챕터 사물도 나를 본다부터 심상치가 않다. 인사동 길에서 작가가 쓴 글 내용은 누군가 정말 한번쯤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금 타자를 치고 있는 모니터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내가 타자를 치는 순간에 뒤에서 누가 보고 있지는 않을까?? 암튼 화가는 보이는 것만 그리지는 않는단다. 세잔이 원근법적 시각을 타파했다고 한다. 사과 그림 익숙하긴 한데 누가 그렸는지 관심은 없었다. 원근법을 타파했다는 것도 의외였다. 당연히 잘 그린 그림은 소실점이 있고, 가까운 것은 선명하게 먼것은 흐릿하게 이러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닌 것이다. 누가 그렇게 정했단 말인가? 가끔은 누구의 그 무엇도 아닌 존재 나도 그럴때가 있고 싶다.
밀레의 만종을 보기위해 30분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가? 정말일까?아직 오르세 미술관에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림은 신에게 혹은 자연에 감사하며 서 있는 부부인지 둘의 관계는 모르겠다. 암튼 감사의 기도는 하고 있는 듯 하다. 30분 이상 줄을 서지 않고 책에서는 바로 볼수 있어서 좋긴하다. 그런데 실제로 보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21세기가 아닌 15세기의 그림을 현재에 보면서 무엇을 보아야 할것인가? 그냥 보면 되는 듯하다. 누가 보는가에 따라서도 다른 그림일듯 하다. 사과 그림을 보면서도 이 사과가 어떤 상황 또는 맛일까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느낌이 틀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잘 그린 그림일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 똑같이 보인다면 그것은 예술의 가치가 떨어질듯하다. 가격이 비싸지는 것은 주인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그려오기라는 부분을 보면서 물고기 그리기라는 경험을 떠올렸다. 창조 관련된 내용의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냥 노트에 물고기를 그려보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고기의 입과 눈이 오른쪽으로 향하게 그린다. 95%정도가 그렇게 그리고 나머지 5%는 왼쪽아니면 위, 아래 정말 특별하게 그리면 정면으로 그린다고 한다. 그런게 저항인듯 하다. 아니 창조일수도 있겠다. 이 책을 보면서 안타까운 사실은 대부분 인용된 작품이 우리나라 화가들의 작품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