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만행 - 신정민 시집
신정민 지음 / 헥사곤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히 아침마다 읽는 신문 한 켠 시란에  실린 시인의 시 일부를 보고는

너무도 사무침이 느껴져 그 전문을 보고자 하는 마음에 시집을  구했다.

 

그런데 이 전율감이란...

몇 장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다가

나는 다시 처음의 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소리를 내어 낭독을 시작했다.

- 거실에서 카톡에 여념이 없는 딸도 들어보라고 읽어주고, 점심시간 직장동료들에게도 읽어주고. 빈 집에서 하루종일 외로웠을 늙은 개에게도 읽어준다. 마치 책 읽어주는 남자처럼, -

결국 마지막 장까지 소리를 내어 읽었다.

어떤 글들은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고 그렇게 읽다가 가슴이 미어져 소리가 흐려지기도 했다.

 

산문집 같기도 하고 시집같기도 하고 중간 중간 끼워진 흑백의 사진들. 

차분한, 그래서 명상하듯 의식함 없는 호흡으로

시인이 떠났던 티벳으로의 여행 길을 같이 다녀온 느낌.

시인이 남겨 놓은 그 여백과  글의 행간덕으로

그 공간에서 나도 떠돌고, 앉아서 쉬고, 하늘을 바라보며 또 다른 나만의 여행을 한 느낌.

- 하지만 그 공간은 완성되는 순간 쓸어버린 만다라.(p.23 )

 

-만년설이 된 바다. 소금덩어리가 된 시간(p.56 )

티벳으로의 여행은 공간 여행보다는 시간 여행인가보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접선지. 산과 나무와 꽃의 이름이 없는 땅 (p.33)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시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

- 바람에 깃발을 내걸듯 마음을 내거는(p.41) 사람들에게서

- 돌덩이로 바람을 잡아둘수는 없는 법(p.125)임을 배운다.

- 죽음 위에 앉아 있는 삶, 신이 인간에게 느끼는 유일한 질투(p.164),

- 고통을 '나'라고 여기는 '너'(오체투지를 하는 소년)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길을 떠났다.

  어차피 죽을 몸, 길에 바치기로 했다. ( p.102 )

 

그랬던거다.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의 길을 떠나는거였던게다.

- 어디로 가라고 이 길의 이정표는 저리 높이 서있는가(p.180)

길은 어디로던 갈 수 있다고 유혹하고

이정표는 어디로던 가라고 등떠밀지만

갈 길 정해져 있지 않는 방황하는 나, 마음만 유목민인 나는 어느쪽으로 머리를 두어야 할까?

늘 준비해서 꾸려둔 베낭은(박성원의 캠핑카를 타고 울란바토르를) 결국 저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채 먼지가 쌓이고

나는 길을 떠나기는커녕 내 마음속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맴돌기만 하지 않을까 두렵다.

- 비어 있는 마음에 길을 낸다.(p.66)

- 길은 그렇게, 제 몸에서 걸어나온다.(p.115)

 

-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걷느라 길을 잃고 헤매었구나

  없는 길을 가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는다. (p.26)

그래, 용기를 얻는다.

나도 나의 길을 걷는다.

회귀없는 여행을 떠난다.

 

개인적으로 올 해 읽은 책 중 주저함 없이 모든 쟝르를 통틀어 최고의 책으로 선정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콧수염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1. 집안의 욕실.

어느날 주인공 '그'는 결혼한 지 5년 넘도록 한번도 자른적이 없는 콧수염을 아내를 놀래켜줄 요량으로 자른다.

하지만 그의 아내도, 그의 친구들도, 그의 동료들도, '그들 모두'는 그가 콧수염을 자른 것에 대해 전혀 눈치 채지도 못하고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다.

이런 음모적인 장난을 잘하는 아내의 작당으로 시작된 몰래카메라 같은 장난으로 생각했던 그는

점점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말한다. '그'가 수염을 길러본 적이 없다고, 그가 기억하는 자바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다고, 방금까지도 전화 부재중 녹음에 담겨져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기억하는데 1년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그의 기억이 부정당하고 있다. 내 기억이 문제인가, 그들이 문제인가....-

처음에는 장난으로 생각했다가 아내의 정신적 이상으로 생각했다가 자신의 정신적 문제로 생각했다가 다시 그들의 추악한 음모로 생각하는

상상의 연쇄작용 후에 그는 파리를 떠나 홍콩, 마카오로 간다.

 

#2. 다시 마카오의 호텔 욕실.

그는 면도를 한다.

몇일째 깍지 않은 수염을 자르고 피부의 껍질을 벗기고, 살점을 도려내고 턱뼈가 드러나도록 계속 면도를 한다.

아내는 객실 침대에 누워 잡지를 보고 있다.

 

 

콧수염은 실재 존재했는지, 콧수염을 자른 행위는 실재로 일어난 건지,

기억하는 일들은 실재했던 일인지, 조작된건지? - 이러한 물음에 나는 O/X 로 답할수 있는가?

나는 나를 증명할 수 있는가?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 배명훈의 '안녕,인공존재'에서는 존재를 '부재'를 통해 존.재.했.었.음.을 증명했다.

임마뉘엘 카레르는 '드러내기'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 것인가?

자신의 의식이 존재하는 순간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살점의 포장 하나하나를 벗겨내고 그 속을 '드러내는' 결기를 통해서?

아직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세월이 흘러도 만약 네가 아무데도 안 갔다면, 너는 아직도 그 곳에 있는 거겠지. 그렇지?(p.271)"

'기차는 철로를 달렸고, 세월이 흐르면 이 풍경들도 먼지로 화화리란걸 알았다.(p.310)'

 

세월이 가면서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래서 기억해 내지 못한다면 실재했는지도 모르고 잊혀지는 것들이 있다.

많은 것들이 세월 앞에 먼지처럼 속절없이 흩어진다.

하지만 반짝하는 햇빛처럼 누군가의 기억이 우연찮게 우리 기억의 창가로 스며드는 순간 '엘리너 파존의 다락방 먼지'처럼잊혀진 줄 알았던 존재들이, '채송화 씨앗처럼 작고 미미한 것들이 키득키득 짓궂게 웃으며 고개를' 내밀게 된다.

 

사카린, 뉴슈가, 신화당 가루, 소다가루, 쌉쌀하고 고소한 원기소(내게는 텁텁했던), 아궁이와 부뚜막 - 작가는 이런 감미료와 영양제, 요리를 할수 있는 공간의 단어를 되살려 내는 것만으로도 30년도 더 된 세월을 거슬러 여행할수 있는 마법의 약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달콤하고 알록달록하고 행복한 원기를 한 없이 부풀어 오르게 하는 마법의 약을 고맙게도 양껏 뿌려준다.

 

등장 인물들의 이러저러한 고뇌와 아픔, 회상, 회귀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풀어가는데

이런 이야기의 전개 과정중에 들려주는 어린시절 읽어 보았음직하거나 또는 생소한 동화의 얘기는 소설의 줄거리 만큼이나 인상적이다.

 

한때 유행가 가사는 노래했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주인공 둘녕은 말한다.

'내 속의 소녀도 변했지만 또 변치 않았다'고

 

한때 유행가 가사는 노래했다.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난 빈의자...'

주인공 둘녕은 말한다.

'잠옷을 입으렴...'

- 외롭거나 잠이오지 않으면, 안식이 필요하다면 지금 입은 옷을 벗고 잠옷으로 갈아 입으렴.

어릴적 아랫목 이불속에서 느끼던 그 온기와 안식을 느낄수 있을거야.

 

나도 수안과 둘녕과 같이 잠옷을 입고 그 시절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 포플러 잎파리는 작은 손바닥/ 잘랑잘랑 소리난다 나무가지에

언덕 위에 아~아~ 저 손들/ 나를 보고 흔드네 어서 오라고 오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수학의 정의를 소재로 삼았다는 소재의 신선함에다가 

시대적 배경을 기원전 6세기경의 그리스, 이탈리아 땅을 배경으로 하는 

지역적, 시대적 배경이 단순이 한국적인 독자에 그치지 않고  

전세계 독자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열어 놓은 작품이다. 

피타고라스라는 현인의 학파에서 수학하는 학자들의 

지식 자체에 대한 열정과 지식의 권력화라는 측면의 야망이 뒤섞여 펼쳐지는 스토리속에 

유리수와 무리수라는 난해하기만 하던 수학적 용어를 재미난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는 덤까지 안겨준다. 

최근에 중학교에 입학할 딸에게 수학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중학교 1학년 1학기 과정중에 유리수라는 것을 배운다. 

유리수라는 것이 어떤건지 무리수라는 것이 어떤건지 정확히 구분해서 설명해 주지 못했는데 

오늘 돌아가서 설명을 해 줄 수 있을것 같다. 

책 내용중에 19금 부분이 있어서 딸에게 읽어보라고 책을 권하지 못함이 안타깝지만 

또 이부분은 성인 독자의 재미를 위해서 필요한 부분인지라...ㅋㅋ 

책을 다 읽고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의 분량이 좀 작다는 느낌. 

도중의 스토리 전개를 조금더 밀도있게 조절한다면 2권 분량을 만들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학외적인 - 상품적인 생각 -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한국의 좋은 작품들이 한국적 정서에는 큰 공감을 불러오지만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오기에는 

스토리의 시대적, 시간적 배경. 감정적 요소에 한계가 있지 않나 싶은 반면에

'천년의 침묵' 이 책에서 전 세계의 독자에게 무난히 받아들여 질 수 있을 가능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영역본으로 외국에서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10. 2. 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읽으면서 연신  빙긋이 웃게 되고  

표지 안쪽면에 있는 작가의 사진을 보게 되고  

프로필이 궁금해서 인터넷도 찾아 보았다. 

소설속의 '성내'라는 배경이 첫 몇 문장만 보고도 내가 아는 그 곳 인듯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고향이 바로 고창이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소설속 문장 하나 하나가 딱 고창의 너른 들과 낮은 구릉과 방풍림 같이 

부드럽게 속살거리는 정감을 느끼게 한다. 

높은 산맥을 넘나들듯이 격정적으로 휘몰아치지도 않고  

큰 강물 흐르듯 바쁜 템포로 문장을 재촉하지도 않으면서 

보리밭을 넘어온 바람결같이 부드럽게 감싸서는 

어느새 독자를 소설속 구석진 마루 한 켠에 같이 앉혀 놓는다. 

 

외할머니 손에 자라는 '진이'라는 약간  시니컬한 12살 여자 아이- 감정이 격동하는 1인칭 주인공  

싯점을 가진 아 이가 아닌 관조적인 3인칭 관찰자 싯점을 가졌다는 얘기다 -를 화자해서

 1969년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왜 책의 제목을 새의 선물로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알을 깨고 나온 새'의 비유나  

아이때는 보이던 새가 시근이 들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어느 책에선가 본듯한 비유처럼

아이가 어른이 되기 직전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어른들에게 들려주는 

추억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담은 걸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