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 - 교토의 명소,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13년 5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0주년 기념 강연이 있었다.

(http://blog.naver.com/star146/140189625370)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들을 수 있는 유홍준 교수님의 강의라는 것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참석하게 되었다. 그 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집필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의 여정이 규슈와 아스카 ∙ 나라를 거쳐 네 번째 이야기인 교토의 명소편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함께한 시간이 그렇듯이 일본편의 이야기를 보며 들으며 답사 현장에 동행한 답사객은 아니었지만, 글을 읽는 한 명의 독자로 그들의 답사길에 동행한 느낌이다.

  특히, 교토 이야기를 다룬 일본편 3권과 4권에 내가 더 주목하게 된 것은 비록 하루 코스였지만, 청수사와 금각사의 이야기가 실려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술을 비롯한 문화미란 아무런 노력 없이 획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p.12) 에 봤지만 무엇인지 몰랐고, 읽었지만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던 나 스스로가 아쉬울 뿐이다.


  교토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만 17곳에 이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처럼 가봐야 할 곳, 이야기해야 할 곳이 많은 곳인데, 저자가 "즐겨 말하는 미적분 풀이 방식(의) 해답을 찾"아 (p.6)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사실상 교토의 아름다운 정원을 두루 답사하는 순례기" (p.5) 이다.

  답사기 일본편을 따라 읽지 않았다면 "독자들이 다소 어렵게 느끼며 읽기 힘들어 할지도 모" 르지만 (p.7) 저자 특유의 문체 (수다체라고 불리는) 덕분에 한결 부드럽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일본미의 해답을 찾아가는 교토의 여정이라는 ‘일본 문화’ 이야기. 그리고 답사기 일본편 전체를 꿰뚫고 있는 다른 하나의 축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 를 보는 것이다. 저자가 지은원과 건인사를 찾은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일본인들)은 내력이 있어 이 절(지은원)을 찾지만 우리(한국인)는 사연이 있어서 이 절을 찾아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p.44) 결국 이런 과정을 우리가 우리나라 안에서만의 닫힌 시각이 아닌 일본을 통해서 우리를 열린 자세로 볼 수 있다. 쌍방적인 시각을 통해서 우리의 것을 다시 바라 보는 것이 해외답사를 장점이다.

  금각사는 "내가 아는 미에 관한 형용사를 다 동원해보아도 금각의 아련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기엔 부족함이 있다." (p.151) 라고 마음껏 찬미하며, "용안사 석정은 관조의 정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선 그 자체를 정원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p.168) 라고 표현한다. 가쓰라 이궁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용안사가 단편소설의 명작이라면 가쓰라 이궁은 장편의 명작이라고 했다. (p.298) 는 인용을 한다. 답사처 혹은 자연경관이 멋진 곳에 가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감탄사나 “멋지다” , “예쁘다” 정도이다.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여서 느껴지는 감동도 덜하고, 시간이 지나서 그곳에 다녀왔다는 기억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로, 스토리텔링으로 기억될 때 느껴지는 울림이 더 커지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것을 제대로 표현해 주는 것이 답사기만의 매력이다. "사물에 대한 언어가 발달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에 대한 인식이 섬세하다는 의미" (p.273) 인데,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적은 나의 안목을 돌아보게 된다.

  아름다움을 마음껏 찬미하기도 하지만, 국내 답사기처럼 아쉬운 점에 대해서도 답사 고수답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시각은 공정해야 하고, 잣대는 똑같아야 한다." (p.60) 에서 나온 태도일까? 

  금각사의 놓여진 벤치 3개에 대해서 "그것도 촌스러운 파란색이다. 뜻은 알겠지만 볼 때마다 좀 금각사다운 품격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p.148) 또 용안사 연못가의 플라스틱 보호책 (p.191), 태평양 전쟁 때 버마에서 죽은 이를 위한 위령탑 (p.192)의 허점에 대한 부분도 "내가 남의 나라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면서 이런 유감을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용안사는 스스로 말하듯이 세계유산이기 때문이다." (p.192)


  처음 답사기 일본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직 우리나라에도 남은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국내편은 앞으로 지속된다. 답사기 일본편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결국 우리 문화에 대한 보다 풍성한 시각이다. 문화에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는 훌륭한 석정이 있는데, 수학원 이궁이라는 멋진 정원이 있는데 우리는? 이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이것이 우리 지성의 현실이다. 대부분 자기 문화, 자기 역사에 깊은 애정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없었으면서 남의 문화에 경탄하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진다." (p.359)
  "일본에는 선의 정원인 석정이라는 뛰어난 관조의 공간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삶의 내용을 다 받아내는 마당이 있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 훌륭한 공간을 갖고 살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p.195)
  우리나라의 마당이 그런 공간이고, 보길도의 고산 윤선도의 원림이라는 소중한 공간이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 손에 있는 보물은 알지 못하고 남이 가진 것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하는 내 삶의 태도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개인에게 자존(自尊)이 중요하듯이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은 것이 필요하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백제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란 의자왕, 삼천궁녀, 낙화암처럼 멸망 직전의 혼란기에 대한 이야기뿐일까? 백제 문화의 우수함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역사는 문화유산과 함께 기억할 때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이것이 문화사적 시각의 강점이다." (p.10) 한국사교육의 문제도 이런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조금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답사기를 읽으며 좋은 것, 책을 읽으며 좋은 것은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내가 약간 달라졌다고 생각될 때이다. 이웃이라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 막연한 이미지로만 알고 있다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다시 보게 된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생각하는 일본의 보편적인 특질은 깔끔한 것, 획일적인 것, 인공적인 것, 섬세한 것, 그리고 작은 것에 대한 집착이다. (……) 간소하면서도 집약적인 미학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 웅대하고 대담한 세계를 개척한 창조력도 있다. 극과 극의 공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p27, p.28)
  "일본은 원래 하나의 룰이 정해지면 일사 분란하게 따르는 전통이 있어." (p.134)
  "일본 사람들은 한번 해놓은 것은 잘 바꾸지 않습니다." (p.191)

  답사기를 따라 읽으며 가장 좋은 것을 하나 꼽으라면, 아무래도 (p.166) ‘답사처의 동선’ 에 대한 이야기이다. 답사처에 따라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보아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여행기와 가장 다른 점이다.
   "지난번 대각사에 갔을 때 안내원에게 대각사 낭하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거침없이 정침전 앞쪽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p.80) 국내편의 서산마애불 관리인 성원 할아버지 이야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p.32), 경복궁 관리소장의 "비오는 날 꼭 근정전으로 와 박석 마당을 보십시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p.36) 처럼 문화유산과 오랫동안 함께 한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천룡사는 "주차공간과 관람 동선을 차단하여 번잡스럽지가 않다." (p.105) 또, "천룡사 답사는 그 피날레가 죽림이라는 것이 큰 매력이네요. 다시 온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되돌아가는 것과는 여운이 다르잖아요." (p.119)
  이처럼 답사를 단순하게 그 문화유산을 보는 것만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여정과 언제 가서 보는 것, 어떤 곳에서 봐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가를 알려준다. 은각사의 참도 (p.205) 처럼 그런 동선을 거쳐서 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야기한 그대로 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그렇게 해보고 싶어진다. 문화유산이 있는 곳에 그냥 차를 타고 가서 인파를 해치고 빨리 보고, 기념 사진만을 찍고 빨리 다른 것을 보는 것과는 분명 히 느끼는 감동이 다를 것이다.

  여행을 하면 어느 곳에 가든 꼭 잊지 않고 가게 되는 곳이 있다. 내 지인은 유럽여행을 가면서 꼭 가야 할 곳으로 어떤 도시를 가든 ‘클럽’과 ‘시장’을 꼭 간다는 원칙이 있었다. 반면에 저자가 말하는 여행의 기술은 저자는 먼저 "걸어야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 느낄 수 있" (p.365) 으며, "에브리바디(everybody)의 에브리데이 라이프(everyday life)를 느낄 수 있는 곳" (p.367) 으로 "그 도시의 대표적인 유적지를 본 다음에는 첫째는 박물관, 둘째는 책방, 셋째는 번화가 뒷골목, 넷째는 앤티크 숍, 다섯째는 재래시장 또는 마트" (p.367) 를 꼽았다. "그러나 문제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많아서다." (p.366)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나의 표준 일정표(?) 혹은 나침반을 얻은 기분이다.

  답사도, 여행도 결국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나눈 이야기가 오래 기억된다. 답사처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사가의 죽림을 보며 헤겔의 논리학을 떠올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p.124) 상국사의 「묵산수」를 보고 회화사 전공자가 느끼는 감각적 직감에 대해서 뉴욕 거리에서 만난 동양인의 비유로 표현하여 (p.139) 초심자에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해준다. 문화유산 답사라고 해서 과거만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p.164)
  새치기를 하면서까지 셋슈 서거 500주년 기념전에 입장하고, (p.142), 고봉암 입구에서 비질하는 관리인을 피해 다실로 들어가는 앞마당의 사진을 찍는 모습이 (p.292) 눈에 선하게 그려져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한국에서라면 ‘관리인의 유도리 덕분에 입장할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하며, 역시 "일본은 유도리가 너무 없고, 한국은 유도리가 지나치게 많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p.13) 는 말이 한치도 틀리지 않았다.

  시간의 경과함이 느껴져 마음을 한없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그 옛날 구속학생이던 나는 어느새 정년퇴임하는 나이가 되었고 어머니 친구분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p.218) 
  지식인으로 답사기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난들 왜 귀찮고 힘들지 않겠는가. 그럴 때면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해서 그에 응하는 것이니 지겨워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 바 있다. (......) 그러나 내 나이도 이미 정년을 넘겼으니 그게 얼마나 이어질지는 나도 모르겠다." (p.245)
  헤이안도(平安堂) 고서점의 주인이 바뀐 것을 보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책을 열 권쯤 구입하고 나와 간판 앞에서 처음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돌아왔다. 내 추억을 위하여." (p.371) 
  시간이 지나는 것에서 모두가 같지만, 독자의 욕심으로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한 나의 기대는 여전할 것이다.
  "한국사를 동아시아 역사 전체 속에서 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항시 우리의 시각을 국경선 너머로 넓혀야 한다고 생각" (p.8~9) 으로 "진작부터 중국 답사기와 일본 답사기를 염두에 두" 었다. (p.9) 미완의 여로로 남아 있는 답사기의 다음 이야기. 다음 번 답사기로 국내편이 될지, 중국편이 될지 잘 모르지만, 그 여정에 늘 기대하며 기다릴 것이다.

  답사기 일본편을 이전부터 따라 읽지 않았다면 약간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다. (나도 이전의 책을 펼쳐보며 시대와 공간에 대해서 비교하며 읽었다.) 나 같은 독자를 배려하여 책 중간 중간에 요점 정리도 해주시고 새로운 정원의 양식을 설명하시며 앞의 이야기도 다시 확인이 되어 이해하였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부탁을 했다.
  "그것은 세 번째 책은 드러누워서 읽지 말고 앉아서 읽어 주십사는 부탁이다. 책상에 앉아 밑줄까지야 그을 일 있으리요마는 이야기의 행간에 들어 있는 상징과 은유를 간취했을 때만 나의 뜻이, 아니 문화유산의 진실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부탁 드린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p.13)
  이 부탁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을 먼저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이후에 읽을 독자에게 한다. 
  끝으로 답사기 일본편이 일본학 입문서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성실한 믿음으로 이웃과 교류" 하려는 (p.441) 우리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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