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불안 - 어느 도시 유랑자의 베를린 일기
에이미 립트롯 지음, 성원 옮김 / 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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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stant”의 한국판 제목이 "온전한 불안"으로 확정되기까지 여러 고민과 노력들이 있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제목은 아니다. 물론 작품 전반에 수시로 드러나는 주인공이 불안한 감정을 종종 드러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게 압도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오히려 그 외의 다양하고 중요한 감정선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현학적이고 문학적인 느낌의 옷을 입은 제목 대신, 직관적이고 솔직하게 영어 제목을 그대로 번역해서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중간중간 번역이 어색하거나 잘 와닿지 않는다고 느껴지는데, 번역자가 여자가 아니거나 젊은 사람이 아니거나 혹은 둘 다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도시, 다양한 나라, 다양한 환경에서 옮겨다니며 살아온 내 개인적인 경험들이 없었더라면 모국어 번역으로 묘사하는 그 대상들을 과연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어떻게 느꼈을까' 하는 의문이 내내 들었다. 그게 내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이 책은 번역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애초에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다 읽어내고 나니, 그런 생각은 내가 이 작가의 이전작 덕분에 얻어진 명성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 미리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면서 책을 읽어내려갔기 때문에 잠시 헷갈렸던 것일뿐, 절대 난해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다른 독자들은 다른 부분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투사하여 다른 감정을 느끼며, 다른 부분에서 공감하거나 감동하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독,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욕구나 욕망은 인류보편적인 성질의 것들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점은 이 작품이 일기의 형태를 수시로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독일어인 "페른베(Fernweh)", 영어로는 "Distance Pains", 즉 "다른 어딘가에 있고자 하는 감정"인데, 한때 많이 회자되던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실제로 디지털 노마드는 현재진행형이자 여전히 미래형이다. 특히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은 격리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동시에 그와 반대로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구글어스나 구글맵과 같은 도구들을 통해서, 방구석에서조차 알지 못하는 먼 곳에 대한 지리적 탐험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렇듯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늘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지금 바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대한 정보와 이미지를 제공한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휴대폰 앱을 통해서 달, 조수의 흐름,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다.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의 과도기에서 본거지를 떠나 움직이는 과정들과 가고 싶은 곳들을 도표화하기 위해 계속 휴대폰 앱을 사용한다. 베를린에서의 일년은 13개의 달을 통해 서술되는데, 그러면서 주인공이 겪는 욕정, 사랑, 상실은 마치 차오르고 저무는 달의 움직임과 유사하지 않나 싶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자기 자신 그대로이며, 자기 스스로인 "나"를 찾아 여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주인공은 자신의 성욕과 연애 감정에 대해서 직선적으로 고백하고 자신의 본능과 감성에 충실한 매운 맛의 존재이다. 그와 더불어, 디지털 시대에서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연결하는 방법에 대한 고찰, 자연에 대한 탐구, 새로운 대상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은 고대의 지식인 음력으로 표현되는 달을 양념으로 해서 잘 버무려진다. 갓 버무려진 김치처럼 풋내 나지만 알싸하고 감칠맛 도는 그런 맛의 작품이다. 갓 담근 김치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점도 참고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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