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생각 Meta-Thinking - 생각 위의 생각
임영익 지음 / 리콘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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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창의적 인재를 요구한다. 아마 스티브 잡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영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창의적 인재를 요구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여전히 창의적이지 못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임영익의 메타생각이란 책을 읽으면서 결국 우리가 창의적 생각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는 수학을 기본으로 메타생각을 이야기하는데 메타생각이란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것으로 생각의 기술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즉 생각의 기술을 하는 방법을 수학적으로 풀어 쓴 책이라고 할까.

 

수학을 풀기 위해서는 단순히 공식을 달달 외워서 대입하지 말고 생각을 통해 찬찬히 접근하라고 하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물론 단순히 외운 것이 당장에는 문제를 더 쉽게 풀 수 있게 하지만 조금만 응용이 되면 문제를 풀지 못한다. 이건 결국 생각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재미있는 건 그저 수학을 딱딱하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중3 학생을 등장시켜 대화하면서 수학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낸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의 사고를 달리할 수 있는 것들을 바로 학생의 입장에서 고민할 수 있게 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심지어 수학을 접근함에 있어 요즘 유행하는 융합을 보여준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뇌과학을 소개하고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수학과 무슨 상관이랴 할 수 있지만 결국 창의적 생각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마지막 부분에 다양한 예시를 통해 직접 상상력을 가지고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책들은 그저 이야기만 하고 직접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데 반해 이 책은 정말 다양하리만큼 많은 예시를 주어 다른 생각 즉 메타생각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게 하였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창의성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말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왜? 라는 질문에 대해 그냥 이런 줄 알으란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선생님의 말과 어른의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것이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이제라도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으려면 바로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상한 눈초리가 아니라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적 변환이 필요하다. 메타생각이란 책이 그런 변화의 필요에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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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 도시들 경쟁하다 - 수직에서 수평으로, 랜드마크의 탄생과 진화
송하엽 지음 / 효형출판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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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살다보니 서울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고교 시절 서울 하면 떠오르는 건 63빌딩이었다. 그 중에서도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63빌딩을 가보고 싶었다. 친구들과 함께 공휴일에 63빌딩을 간 기억이 떠오른다.

 

서울하면 대표하는 특이성 있는 시설이나 건물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수의 사람들은 아마 남산타워를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양에서 가장 높다는 63빌딩은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오는 사람들이라면 늘 만날 수 있는 서울의 랜드마크다.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조차도 이미 오래 전에 가장 높은 건물의 자리에서 밀려나 있지만 여전히 상징성 만큼은 그래도 최고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에 동대문 디자인 공원이 개장을 앞두고 있다. 송하엽의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란 책은 바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는 동대문 디자인 공원이 엄청난 자본을 들여 새롭게 건설되는 것이니만큼 새로운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 도시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동대문 디자인 공원도 너무 많은 비용과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우주선 같은 모양을 보이고 있어 사람들의 걱정을 낳고 있다. 처음부터 호의적인 랜드마크는 없었다. 심지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설계한 요른 옷손의 경우는 오페라 하우스를 완공하지 전에 사임하였고 서로가 좋지 못한 모양새였기에 두 번 다시 시드니를 방문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실물 오페라 하우스를 보지 않았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에펠탑 같은 경우도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것이고 모든 랜드마크가 그렇듯 어느 것 하나 쉽게 만들어진 것이 없었다. 요즘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건축물을 세우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도 곧 100층 이상의 높이를 자랑하는 제2롯데월드가 한창 건축 중이다. 랜드마크가 단순히 높이를 자랑하는 것만이 아니라면 이런 것 보다 차라리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같은 비록 높이가 그렇게 높지 못해도 어떤 상징과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랜드마크는 건물 자체의 관심이 아니라 이것이 얼마나 공공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로 내가 살고 있는 수원은 화성이라는 근대의 건축물은 공공성으로 확립하여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지금 수원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동대문 디자인 공원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랜드마크 나아가서 한국의 랜드마크를 새롭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고 싶은 건 이왕이면 좋은 효과를 창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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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연금술 - 인간의 열정에 관한 아포리즘
에릭 호퍼 지음, 정지호 옮김 / 이다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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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짧은 글 속에서 빛니는 성찰의 의미를 생각하곤 한다. 아포리즘은 바로 이런 짧은 글이다. 이런 글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속엔 참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시와는 또 다르다. 시는 문학적 가치를 두지만 아포리즘은 문학보다는 이론적 가치를 둔다는 점이다.

 

에릭 호퍼의 영혼의 연금술이란 책을 읽으며 우선 저자가 떠돌이 노동자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책을 많이 읽어 깊은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지만 단순히 책만 많이 읽는다는 행위로 이런 놀라운 사상을 가지게 되었을까? 책 읽는 것과 함께 필요한 건 사고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보고 이런 과정들이 없다면 이러한 아포리즘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로 이 책은 단순히 무언가를 말하려는 책보다는 깊이 있게 다가온다. 비록 짧은 한 마디로도 저자는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이런 물음 속에 글 하나 하나를 읽어 갔다.

 

"흔히 권력은 부패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나약함 역시 부패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아포리즘 하나씩 읽어가면서 정말이지 생각을 해보지 않은 어쩌면 고민을 하지 않은 것들을 저자는 참 많이도 고민하고 생각했다는 느낌을 가졌다. 나약함이 부패한다고? 사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지만 저자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정도 수긍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것이 바로 사유의 힘인지도 모른다. 그저 한 가지 사실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두루 생각하여 다른 것을 발견해 내는 것이 필요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 때론 단순하게 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나친 단순화로 인해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이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공장 같은 단순한 것을 반복하는 노동자들에게 있어 늘 강요되는 건 바로 단순한 사고다. 이런 사고를 강조하는 건 쉽게 복종하여 일을 하게 만드는 일종의 기계적 인간을 키워내는 것에 불과하다.

 

한 가지 생각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들 속에 기꺼이 들어가야만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사유를 하였던 사상가들의 아포리즘을 읽는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글들 속에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고를 경험하여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너무 많은 걸 풀어가는 것보다 떄론 짧게 풀어가는 아포리즘이 더 쉽게 다가오는 것 같다.

 

[흔히 권력은 부패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나약함 역시 부패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권력은 소수만을 부패시키지만 나약함은 다수를 부패시킨다. 증오와 악의, 무례함, 의심은 나약함의 산물이다. 나약한 자의 분노는 자기들이 받은 부당한 대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무력하고 무능하다는 자각에서 생겨난다. 이들은 악의가 아닌 나약함을 증오한다. 나약한 자기 힘을 가지면 장소를 불문하고 보이는 대로 나약한 것을 파괴한다. 약자가 약자의 희생양의 되었을 때의 그 비통함이란! 약자의 자기혐오는 나약함에 대한 증오를 나타내는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놀라운 일이지만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한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미워할 때 다른 사람도 미워하며 자신에게 관대할 때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함을 보인다. 자신을 용서할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을 떄 다른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기 쉽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근원은 자기 사랑이 아니라 자기 증오이다]

 

[어떤 사람에게서 증오를 빼앗으면 그는 신념 없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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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아르뱅주의
신광은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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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불편하다. 그 이유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미 개독교란 말은 심심치 않게 쓰는 말이 되었고 신뢰도는 바닥이다. 교회가 이지경까지 온 이유는 무엇일까?

 

천하무적 아르뱅주의는 이런 물음에 대해 완벽한 답변은 아니더라도 좋은 답변을 주는 책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박철수 목사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란 말은 칼뱅주의 예정론의 요약이다. 하지만 칼뱅은 위에서 말한 식으로 예정론을 가르치지 않았다. 예정이 오직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 속에 감추어져 있으니 성화의 열매를 통해서 자신이 택자로 예정되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확증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아르미니우스주의의 반론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유포되고 있는 구원의 확신 교리는 칼뱅주의도 아니고 아르미니우스주의도 아니다. 신약성서의 가르침은 더더욱 아니다." 잘못된 신학이 원인이라고 했다.

 

신교의 출발은 카톨릭 교회가 발행한 면죄부에 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출발이다. 면죄부란 쉽게 이야기해서 죄를 사해주는 증서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교회가 바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카톨릭 교회에서 보여주는 면죄부를 발행한다니 처음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자는 영화 밀양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초대교회의 회심이란 교리에 대한 동의와 소속과 행동이 분명한 변화를 모두 의미하는 것이라 밀양의 살인범이 예수를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면 그의 고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검증과정을 반드시 거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검증되어야 할 것이 바로 신애(전도연)에게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신앙문답 과정이 있으며 침례를 받기 위한 준비과정이 있다. 즉 초대교회 상황에서는 영화 밀양과 같은 일이 벌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책은 진작에 나왔어야 할 책이다. 사실 이 책이 이렇게 나오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칼뱅주의도 아니고 아르미니우스주의도 아니라 여기도 저기도 지지를 못받는 오히려 공공의 적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의 한국 교회를 위해서 이 책을 계기로 진지한 성찰을 이루어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야 다시 한 번 날개를 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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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예수 - 불의에 저항한 예수 '마태오 복음' 해설
김근수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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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기본적으로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진다. 구약은 세상이 처음 탄생하게 된 배경에서 예수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까지를 다루고 신약은 예수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종말의 때에 이루어질 이야기까지이다. 성경 자체가 워낙 방대한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어 전체를 한 번 읽는다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며 읽는다는 건 더더욱 어렵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과정도 어렵게 만든 요인이다.

 

그 중 신약의 첫 번째 책이라고 알려진 마태복음을 풀어 놓은 책이 행동하는 예수이다. 이 책에서는 마태오복음이라고 하는데 마태복음이나 마태오복음이나 같은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당혹스러웠던 것이 있다면 나 역시 기존의 교회에서 배웠던 성경의 말씀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우선 예수가 사단에게 유혹을 받는 장면이 있다. 사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문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란 양식이지 우리가 먹을 떡과 빵 즉 밥이 아니란 것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지적한다. "어떤 설교자들은 이것을 오해하여 빵보다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간단히 해설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건 밥과 말씀은 둘 다 중요한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마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한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여러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만약 이 책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교회를 다닌 사람들이 읽는다면 속된 말로 시험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만큼 교회에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파격적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쩌면 교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책의 저자는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이야기할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성경을 다양하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리를 왜곡해서는 안되겠지만 성경을 어느 하나의 기준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다. 하나의 건축 작품을 보아도 여러모로 봐야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성경은 정말이지 다각도로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 한국 교회가 그동안 이런 작업을 하면 너무나 쉽게 자유주의니 이단이니 했던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이런 작업을 통해 진리를 지키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지만 그 반대로 잃어버려야 했던 아니 잊혀져야 했던 상상력을 펼쳐 다각도로 해석하는 성경의 놀라운 말씀들을 놓쳐야 했던 것이 뼈아픈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이 소중하게 다가옴은 이런 해석으로 새롭게 마태복음을 읽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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