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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 - 이태준 단편집 ㅣ 한빛문고 8
이태준 지음 / 다림 / 2000년 4월
평점 :
늦은 밤,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였다. 그 아픈 머리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나는 옆 책꽂이로 손을 뻗었다. 내게 잡힌 책은 우연히 어떤 단편집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되라는 식으로 아무 곳이나 펼쳐 읽기 시작했다. 한참을 읽었고, 나는 그 중에서 재미있는 단편 하나를 찾아냈다. 이태준의 ' 달밤 ' 이라는 이야기였다.
달밤은 이야기의 화자가 ' 황수건 ' 이라는 한 반편이를 관찰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는 그다지 정상적이지는 않은, 그러나 지극히 천진스러운 인물이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소박한 꿈만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매정하기만 하다. 기껏 얻은 일자리도 빼앗겨 버리고, 하려는 장사마저 파산해버리고 만다.
의문이 든다. 과연 이렇게 선천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른 평범한 사람과 같은 행복도 누려보지 못하고 생을 끝마쳐야 하는지 말이다. 갑자기 같은 학교의 한 아이가 생각난다. 유난히 어리고 천진스러운 아이, 항상 웃으면서 다니는 아이이다. 그러나 아이가 바보스럽기 때문일까? 애들은 그 아이를 때리고, 이용한다. 준비물마저 뺏어버리고, 심부름도 시키고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 그러한 아이를 괴롭힌다. 보는 사람이 더 애처롭다. 막아보려하지만 한 사람의 노력이 반 전체 아이에게 영향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사회에 나오면 사기를 당하고 파산하는 일, 학교에서 머리가 떨어지는 애들을 이용해 먹는 일 등등, 그 모든 것이 안타깝지만 모두 자연의 이치에 맞는 일들이다. 오히려 고치려는 사람이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맞는지 그러한 사람들도 결국은 사회의 물결에 순응하고 만다. 작가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결말에서 ' 나 ' 는 황수건이라는 인물의 문제를 결국 해결해주지 못하고, 단지 그가 걸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기 때문이다.
과거 일제 시대, 일본인들이 본 조선인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신하들까지 약삭빠른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어수룩하게만 보였을 것이다. 또 안타깝지만 그들의 생각은 사실 옳은 것이었다. 세상이 돌아가는 물정에 눈을 뜨지 못하고 과거의 유물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을 속이기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결과 조선인들은 철저히 개돼지만도 못하게 멸시 당하였고, 동시에 쓰러질 때까지 그들의 손에 농락 당하였다. 그러한 과거를 돌아보고 느낀 아픈 마음이 작가가 이 작품을 쓰도록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딱 한가지뿐이라는 생각이다. 황수건 같은 인물들만 살 수 있는 그러한 동네를 만드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사악한 사람이 없는 그러한 동네 안에서라면 범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구성원 모두가 누구에게도 고통받지 않고, 서로간에 도우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