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책 -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 지식여행자 2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언숙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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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책 요네하라 마리/ 이언숙 옮김/ 마음산책

 

660여 장이나 되는, 비교적 많은 분량이나 주어진 눈길은 여유를 가지며 순조롭게 산책한다.

절반 정도는 1부로 독서일기라 칭하며, 2부는 서평이다.

독서일기는 그때마다 특정한 책을 거론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피력하는데 실제 내용면으로 봐서는 2부보다 1부가 알짜배기이다. 2부의 경우 소개되는 책 대부분쯤? 안타깝게도 국내에 번역되지 않아 공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을 소재로 한 내용의 단계를 뛰어넘어 현대 러시아의 제 방면을 터치하기도 하고 세계조류를 설파하기도 한다. 여태 듣지도 읽지도 못한 기발한 세상 이야기도 있다. 마리의 글을 여기서 일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내용들이 책장을 넘기는데 활력소가 된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여기 한국에 대한 몇 가지가 서술되기도 하는데 깜짝 놀랄 내용들이 나온다. 이런저런 점에서 저자의 해박한 식견에 감탄한다.

내가 기억하는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부터 여러 작품으로 국내에서 꽤 알려진 작가인데 등장하지 않음은 의외. 일본 자국에선 인기가 별로 이거나 작품성이 떨어 진다는 건지, 일본 판 보수 꼴통 이어선가? 나쓰메 소세키도 언급되지 않는 점도 의외이다.

그러나 이 책, 특히 1부를 읽으며 주워담는 상식 이상의 것은 대단히 쏠쏠하여 대단히 유익.

또한 그러나책 제목은 맘에 차지 않는다.

여느 저자나 심혈을 기울여 각 장르의 작품을 탈고하게 되는, 즉 대단한 노력의 산물로서 피와 땀이 서린 작품이거늘 제목이 대단한 책이라마치 작품에 낙서를 휘갈겨 쓴 형상처럼 여겨진다.

마리의 비망록’, ‘책을 거니는 산책’ ‘책의 숲어서등 좀 다듬어진 제목을 달았다면 금상첨화?

 

-스탈린은 민족의 개념 규정에 언어를 결정적 기준으로 삼으며 이 언어에는 계급성이 없다고 보는데, 이는 객관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또 그는 “10월 혁명은 오랜 사슬을 끊고 잊혀졌던 많은 민족을 등장시켜 그들에게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발전을 안겨 주었다고 했다.

 

-일본의 어느 역사교과서에 네루 자서전을 왜곡하여 러일전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런데 네루는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거둔 승리가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들을 기쁘게 했지만 그 직후 성과는 소수 침략적 제국주의 국가가 하나 더 늘어난 정도의 결과이고, 이 참담한 결과를 가장 먼저 맛보아야 했던 나라가 조선이었다고 했다.

 

-최근 100년 동안, 전 무슬림 세계는 서구 경제의 자원 공급지로서 서구 제국주의에 착취당해 왔다. 이는 종교로서의 이슬람의 정체성에 영향을 끼쳤다. 본래 십자군으로 시작된 무슬림 여러 국가에 대한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은 최근에 들어서서 경제적인 약탈의 성격이 커졌다.

 

-플라톤은 문자에 의존하게 된 인간은 스스로 생각해 내는 힘을 잃었다고 소크라테스에게 말한다. “사실 장대한 서사시를 기억하는 시인에게 문자지식을 전한 순간 모든 기억을 잃고 말았다는 예가 세계 각지에서 보고되고 있다.”

 

-(아프간) 자급자족의 평화스러운 생활을 파괴한 자(미국)에게 분노하고, ‘인도적 원조라는 말이 파괴자의 입에서 나오는 오만과 허위를 규탄하는 말들이 피를 토하듯 격렬하게 쏟아진다.

…..(아프간) 2000만 명의 굶주린 국민 가운데 30%는 난민이 되었고 10%는 죽거나 살해되었으며 나머지 60%는 아사 직전이다. (바미안)석불은 그처럼 위엄을 갖추었으면서도 이 끝없는 비극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존재인지를 느끼고 수치스러워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부처의 청빈과 안녕 철학은 밥을 찾는 구민 앞에 너무나 부끄러워 용기를 내어 부서져 버렸다. 부처는 세계에 이 모든 빈곤, 무지, 억압, 대량 살상을 전하기 위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게으른 인류는 불상이 무너졌다는 것만 들으려 한다. 아무도 무너져 내린 불상이 가리키고 있는, 죽을 지경에 이른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보지 않았다.

 

-‘디나모라는 명칭을 단 당시 러시아와 동구권 국가들의 축구팀에는 내무성과 비밀경찰 산하 클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소련의 간판작가 고리키’. 10월 혁명 당시 볼세비키를 지지했지만 레닌과 대립하여 이탈리아로 이주. 1933년 귀국하여 스탈린 체제확립에 협력하는 어용작가로 변신. 사망 2년 전부터 저항.

 

-아마추어리즘에 대해 아름답고 순수하고 멋지다는 이미지를 대개 가지지만, 아마추어리즘은 당초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지가 신분의 상징으로 스포츠의 장에서 신체 활동의 프로인 육체노동자를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 낸 차별 사상일 뿐이다.

 

-세계 최대의 대량살상무기 보유국이자 개발국이며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무기 모두 최초로 인간에 사용한 것은 미국. 이 미국은 건국 당시 원주민 인디언을 대량 학살한 사실을 은폐 정당화함으로써 성립하는 국가이며, 이 부끄러운 과거의 죄상을 은폐 미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정대 정의의 체현자라는 환상아래 온 세계에서 끊임없이 정의라는 이름 아래 전쟁을 증명해 가야 하는 것이다. 또 유일신앙(일신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과 관련 지어 자신에게 정의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악마가 필요한 것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담배를 싫어했던 반면, 연합국 측의 처칠 스탈린 루스벨트가 대단한 애연가였다는 사실.

 

-한국과 관련된 내용.

 1. ‘세계전쟁범죄사전에 베트남 전쟁에 동원된 한국군에 의한 학살 사건을 언급한다.

 2.’북한을 잇는 남자에서 남로당원이었던 박정희가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지만 동료 50명 가까이를 당국에 팔아 넘겨 자신의 목숨을 건지고 그 후 13년 뒤에 쿠데타를 일으켜 한국 대통령이 된 일을 설명한다. 또한 김성주라는 소련 첩보부 출신이 항일의 영웅 김일성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묘사된다.

3.올드 보이의 최민식’,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 거론된다.

 

에 다방면에서 세상 돌아가는 현상과 담겨진 맥을 긁어서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해주는 요네하라 마리의 필담은 어지간한 이들에게 아는 기쁨을 충분히 안겨줄 것이다. 직접 읽어 보시라!

작가는 2006 518일자 <주간 분순>내 몸으로 암 치료 책을 직접 검증하다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기고를 마치자 마자 525일 난소 암으로 별세했다. 독신으로 살다 간 그녀는 가족인 개와 고양이들을 두고 작별 인사는 제대로 했을지?

기회가 되면 요네하라 마리의 다른 작품들도 봐야겠다.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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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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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前作 연을 쫓는 아이를 마치고 바로 잡았다.

동일 작가의 작품을 이어 읽는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끌어 당기는 재미가 있다.

첫 작품에서는 자주 찡한 마음으로 눈물을 보였지만 여기서는 비교적 담담한 자세가 될 수 있었다. 작가 성향에 기반을 두어 벌써 단련된 탓일까. 암튼 세 번째 소설 그리고 산이 울렸다은 시간차를 두고 봐야 멜로드라마 무드를 다시 향유하지 싶다.

출판사 현대문학은 출판계에서 중량급 이상에서 포진하는 회사인데 이 좋은 소설의 표지에 ‘2007년 미국 최고의….영화화 결정!’이라는 군더더기 소제목을 첨가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떤 조심스런 독자에게는 이런 문구가 도리어 선택을 주저케 하는 반감을 심어주지 않을까?

 

행복은 오직 무난히 찾아오는 법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애초 행복한 생활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지만 암만해도 스스로는 깨달을 수 없기도 하다.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도, 소설을 통해서도 관통하는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전쟁을 치르는 군인이나 게릴라가 아니어도 가만히 앉아있는 집안에서 무작위로 쏟아지는 로켓포에 즉사하는 현실에서도 별 세계가 있어 남성우위의 폭행까지 얹어지는 지독히 음울한 여건에서도 살아남은 공과가 있어 평범한 가정생활로 귀착하는 것에 조차 우린 행복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라일라마리암이 한 마음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신의 축복이자 대단한 행복이다. 아프간의 환경으로 보아 논픽션일수도 있는 이런 사정을 거의 알 수 없었고 경험하지 않은 나와 내 주변사람들은 또 그 동안 얼마나 행복했으며 대한민국의 제 여건이 아프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하니 살아생전 내내 행복하다는 등식도 가능하다.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인가.

진정한이라는 수식어가 있는 만큼 마리암이 아닐까.

어머니 나나는 항상 구박했지만 그 구박은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이었고 아버지 잘릴은 친절하고 자상하지만 면피용이다. 15세 소녀가 강제로 30년 연상 홀아비에게 시집갔으나 거듭되는 유산으로 배우자 취급보다는 불만해소용 하인쯤으로 전락한다. 마침내 라일라의 등장으로 절정에 이르는 치욕과 수모는 차라리 반전된다. ‘라일라의 어머니 언니 친구가 되어 폭군 라시드앞에선 연합군이 되어 라일라를 살리기 위해 예기치 않게 라시드를 살해한다. 총살형을 언도 받는 재판정에서 서명, 27년 전 강제 결혼식 때 서명과 더불어 일생 동안 단 두 번의 서명은 그녀에게 절대 절명이자 반전 없는 전환점이다. 잡초였지만 라일라와의 조우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이 되었고 마지막 독백은 간단하지 않은 생각을 남긴다. ‘이렇게 죽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이건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었다라고.

 

공식적인 전쟁이 아닌 거주지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전투의 와중에서도 일상이 전개되는 것, 남자들에게 성욕이 존재하고 애들은 뛰어 놀고 인간적인 탈레반도 있으며, 뭣보다 재판정도 개정한다는 내용은 그래도 사람은 살아가게 되어있다는 걸 대변한다.

라일라가 딸 아지자를 고아원에 맡기고 헤어지는 장면에서 딸의 행동거지를 설명하는 부분 발을 질질 끌며 가는 모습..’ ‘말을 더듬던 것에 대해…’ ‘단층에 대해..표면에서 느끼는 건 약간의 흔들림 뿐이라고…’에서는 그 다음의 전개를 위한 복선으로 봤는데 소설을 마칠 때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내가 과장되게 민감했던 것 같지만 혹 작자가 소설을 마무리하면서 깜박 잊은 건 설마?

 

라시드로 인해 처음엔 마리암, 나중엔 라일라도 겪게 되는 불안감은 경우는 아주 다르지만 유사하게 경험한 난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그 불안한 마음을.

타리크4인 가족을 이루어 평화스런 생활 중에서도 불안한 꿈을 꾸게 되는데 역시 동감이다. 육군병장으로 군복무를 마친지 30년 이상 경과한 후에도 군대 꿈을 꾸곤 아침에 일어나 군인신분이 아닌걸 알고 한 숨을 쉬며, 직장인 시절로 되돌아가 일 마감시점을 놓쳐 안타까워 하고 역시 잠 깨서는 그 때가 아님에 안심하는 것이다. 생사의 문턱을, 인간으로서 막다른 길에 까지 다다른 경험에 몸부림쳐야 했던 아프간 여인네들에 비하면 찻잔 속의 태풍도 못되건만.

 

전작 연을 쫓는…’은 역자가 이미선 님, ‘천 개의…’는 왕은철 님이다.

일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밝히고 소견을 적는다.

이 미선 님의 것에 비해 왕은철 님의 번역본은 좀 더 신경을 써서 읽어야 한다.

아무개가 ~~~. 그리고 그가~~~. 그녀는~~’ 등으로 사려있는 독자는 아무개후에 전개되는 그녀가 누구인지 단박 파악하지만 가끔 나 같은 독자는 그녀가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 다시 앞줄로 거슬러 봐야 하는 시간낭비가 있었다. 다소 우매한 나 같은 독자를 위해서라도 연결되는 문장에서도 친절심을 발휘하여 재차 인명을 기재하여 서술해주시면 좋겠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카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17세기 페르시아 시인의 시에서 차용한 제목인데, 우리가 같은 문화권이었다면 그 공감은 대단했을 터. ‘마리암의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이 마침내 적법하게 마무리되면서 만신창이 카불도 아름다울 수 있어 천 개 만큼의 찬란한 마음이 될 수 있으니 인간이여, 삶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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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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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할레드 호세이니/ 이미선 옮김/ 열림원

 

책을 소개하는 어떤 글을 보고 아프가니스탄인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이 전개되는 내용이라 호기심에서 책을 들었다. 결론적으로 흡인력 만땅. 이 나이에 눈시울 붉혀가며 새벽까지 읽고 말미가 궁금해 사람 만나러 갔던 도서관에서 찾아 읽기도 했다.

 

소련 지배하에서 평화를 꿈꾸던 사람들이 탈레반의 등장에 환호하나 소련치하는 세발의 피. 만신창이가 되는 아프간 국민들의 삶을 보면 한 나라의 위정자, 정치인들의 자격과 역할이 중차대함을 본다. 아프간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혼란으로 빠지진 않았을 테다. 무능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위정자가 국가경영은 망각하고 국민들의 평화스런 삶을 위한 비전이나 정책도 안중에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도 지금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부터 후퇴하고 있는듯한 현상이라 보는데 깨어있는 국민들의 의식으로 견제하지 않으면 아프간 꼴 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에게 반했다.

동행하는 남편과 애기가 있음에도 겁탈하려는 소련군에게 저항하는 바바같은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조국에서의 부귀영화는 물거품이 된 미국에서도 아들을 위한 일편단심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완전무결한 인간은 없듯 그의 명예에 반하는 하산이 있다지만 바바의 일생은 세상 모든 아버지의 귀감이다. 장성한 아들 둘을 둔 내가 부끄러워진다.

둘도 없는 바바친구 라힘 칸의 편지를 통해 작자는 메시지를 전하며, 바로 이 소설의 주제가 된다. “양심이나 선이 없는 사람은 고통스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선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속죄일 것이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연날리기. 덤으로 옛 시절이 떠오른다.

부산역이 마주 보이는 달동네. 지금은 흔적도 없고 빌라촌으로 변했다.

사이다 병을 깨어 풀과 함께 개어 몇 명이 길게 늘어서 실에 풀을 먹인다. 대개 까불이 연, 방패 연이 떠서 싸움이 벌어지고 떨어지는 연을 쫓아 애들이 달리고….아이들의 놀이엔 국경이 없다.

 

아미르의 계략으로 하산 부자가 집을 나서던 때, 가지 말라며 애원하고 생일선물로 언청이 수술까지 행하는 바바’. 어쩐지 과할 정도였는데 역시 하산의 아버지였다.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소설이다. 그 클라이막스는 소랍을 구조하기 위해 카불을 찾아가 조우하는 아세프의 등장이다.

소설의 명성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전혀 아니지만, ‘아세프를 따돌리고 소랍과 함께 탈출하는 장면에서 소랍이 쏜 새총 덕분으로 아세프를 물리치는 내용은 약간 부자연스럽다.

 

소라야에게 청혼하던 때, 비밀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직접 말하겠다는 소라야의 현명함이 빛난다. 그리고 아미르의 동의를 구하고는 우는 소라야에게 누가 돌을 던질 것인 가. 신뢰를 구축하고 시작하는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라도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아침을 열쇠로 바꿔서 우물에 던져요.

천천히 가요. 내 사랑하는 달님, 천천히 가요.

아침 해에게 동쪽에서 뜨는 걸 잊게 해줘요.

천천히 가요, 내 사랑하는 달님, 천천히 가요.

흔히 결혼식에서 부른다는 아프간의 노래라는데 민요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첫날밤을 맞이하는 그들에겐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영원히 정지하는 시간을 꿈꾸었겠다.

 

여러 장면에서 눈물을 훔쳤다. 비교적 성실하게 지내지 못한 근래 생활에서 반성도 하며 번지는 감정에 이 소설을 맴도는 동안이라도 내 마음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카타르시스의 해소!

소련치하에서, 무자비한 탈레반의 폭정에서, 현재도 절대 불안한 치안상태에서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어제 후속작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구입했다. 조만간 읽을 것이다.

성장소설이라고 평하는데 불만이다. 일부 어른들은 성장소설은 청소년의 읽을 거리로 단정하여 손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차라리 청소년보다 어른부터 읽어야 할 소설이다. 절망에 가까운 환경 속에서도 정칙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어른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기 때문에라도.

 

또 하나.

내가 읽은 책은 열림원에서 출판, 2009 8월 개정판 105쇄 발행본인데 현재는 옮긴이와 출판사가 다른 책이 판매되고 있다. 저작권 관계에 문제 있었던 건 아닐테고잘 나가던 번역본이 옷을 갈아입은 뭔 이유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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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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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이노우에 야스이/ 임용택 옮김/ 문학동네

 

부산 지하철 2호선 중동역과 지게골역까지 운행시간은 정확히 22분이다. 7월 중순 시대흐름의 압박으로 마침내 스마트폰으로 갈아탔다. 결과는 무지 만족. 바꾸기 전까지 출퇴근 지하철 속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을 응시하는 승객들을 바라보며 개탄했다. ‘책을 읽거나 눈 감고 잠을 불러야 할 자투리 시간에 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느냐고 힐난했다.

그런데부끄러울 정도로 예찬론자가 되었다. 의도적으로 운행하던 차를 사무실 근처 주차장에 세워두고 지하철을 탄다. 자주. 자동차 연료비용도 아낄 겸 독서와 음악감상을 위해서이다. 특히 귀가 길엔 거의 종점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므로 100% 앉아서 간다. 둔황은 주로 지하철을 오가며 이어폰을 통해 음악감상하며 여유롭게 바라본 책이다.

 

둔황 하면 서유기의 모델인 현장스님, 실크로드, 타클라마칸, 위구르 라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엄연한 역사이면서 옛 인물들의 숨결이 들리는듯하고 서역으로 출정하는 관문으로 한족, 몽골족, 티벳족, 위구르족 등 다양한 민족들이 격돌한 중앙아시아가 그 동안 서양사관에 가려져있다 이제 조명을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 일본의 경제발전 여파에 힘입은 바도 있겠으나 당시에 이를 소재로 소설을 창작한 일본의 저력은 칭찬할 만 하다.

 

일단 손에 쥐면 놓치기 어렵다. 우선 복선을 흘리고 들어가는 처음부터 재미가 쏠쏠해 계속 책장을 넘겨야 한다. 덤으로 옮긴이의 번역이 무척 매끄러워 우리 작가의 소설을 보는 것과 똑 같다.

해설편의 언급대로 주변정경의 묘사도 리얼하다. 작자가 막상 둔황을 여행한 것이 출판 후 20년이 지난 후라고 하며 그 간극은 문헌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했다고 하는 자세도 대단하다.

 

역사와 민족과 종교를 통한 인간의 삶을 묵묵히 응시해온 위대하고 유구한 자연을 본다는 해설도 와 닿는 글이다. 그런데, 위구르 여인으로부터 건네 받은 조행덕의 목걸이를 목격하곤, 목걸이는 두 개이다, 다른 하나는 누구에게 있느냐, 소지한 자를 찾아내어 죽이고서라도 획득할 것이다 등등 두텁게 제시되던 복선이 말미에는 터진 실 뿐 산산히 흩어진 구슬처럼 복선 역시 허무하게 뭉개어져 허전한 느낌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속았다는 느낌은 나 뿐인가?

물론 주왕례의 경우, 치열한 접전 중에 애지중지하던 목걸이가 사라짐과 동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설정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집요하게 목걸이를 소유하고자 하는 위지광의 행동거지로 보아 결말엔 극적인 반전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개할거라는 기대야말로 그 사막-타클라마칸쯤 되겠다- 에 묻혀 망연자실하게 된다.

위구르 왕족 여인과의 조우에서 불심이 시작되고 여인의 죽음으로 종교적 성찰에 도달하는 조행덕의 불심인데 그 연결고리도 좀 느슨하게 보인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인연설과 닮은 꼴인데 제한된 지면이지만 각성하고 심화되는 조행덕의 내면을 좀 더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편 조행덕과 여인의 우연한 조우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정하섭과 소화의 만남을,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과 곤궁에 처한 사대부 집 딸(부인이 된다)의 조우를 떠올리게 되는데 개똥철학 관점에서 보면 남녀의 러브스토리는 필연적으로 우연, 숙명, 운명적으로 미팅이 시작되는 데서부터이다. 믿거나 말거나.

 

학교에서 배워온 세계사를 놓고 보면 중국 미국 유럽, 그리고 러시아 외엔 등장하지 않는다. 근래 책을 통하여 실체를 보는 실크로드의 무대인 중앙아시아는 그 동안 존재하지 않았었다. 서구에 함몰된 비뚤어진 역사관의 산물이라는 자각이 이제야 고개를 드는 것인데 그 동안 가려졌던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소프트웨어 측면은 얼마나 왜곡되었을까.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이 역사 또한 그들 위주의 역사관으로 도배질하는 원리는 여기 대한민국에서 작동된다. 위안부는 1941년 이후에서야 제도화되었으며 자발적으로 따라 나섰다거나, 안중근과 유관순 등은 테러리스트, 일제치하 덕분에 왕조시대를 끝장내고 현대국가로의 이행에 순기능이 있었다는 친일사관이 고교 교과서에 실릴 판이고, 심지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겠다는 대표적인 친일파의 아들 김무성은 이런 교과서를 두둔하는 판이다. 탐탁치 않은 선거의 결과로 여당의 입지를 굳힌 측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입맛대로 만드는 꼴이란!

 

어느 책에서 번쩍 뜨이는 글귀가 있었다.

국민은 영원히 성숙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사실에 기초하여 국가의 품격을 위해 첫째, 포퓰리즘에 에 좌우되지 않는 진정한 엘리트 집단을 육성해야 하며, 둘째, 논리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풍부한 정서(교양)를 길러야 하는데 이는 수학이나 문학처럼 눈앞의 이익에 직결되지 않는 행위에 몰두하는 인간이 많을수록 국가의 품격-나아가서는 국익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둔황은 독서여건 조성에 안성맞춤이다.

때묻은 마음으로 복선, 연결고리를 빌어 힐난했음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번역과 소지하고 다니기 좋은 반 양장판 외형도 깜직하다.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는 후반에 역사소설에 몰두하였다는데 그렇다면 일본판 월탄 박종화 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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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낮잠 - 사진, 여행, 삶의 또 다른 시선
후지와라 신야 글.사진, 장은선 옮김 / 다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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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낮잠 후지와라 신야/ 다반

 

독서에 대한 낮잠은 이 책의 제목인 인생의 낮잠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 선 구월이 채 더위가 물러가진 않은 점도 있었지만 이 좋은 무렵 책 읽기를 방기한 나는 반성해야 한다.

제목과 개와 돼지가 자는 모습은 담은 책 표지는 의외이면서 차라리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지은이가 사진작가 아니랄까 봐

 

그의 전작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도 읽었지만 책장을 넘기며 뭔가 스치는 감이 든다.

잔잔히 스며들며 치열히 전개되는 삶의 몇 발자국 뒤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사유하는 일상을 거니는 것이다. 그리곤 알맹이가 꽉 찬 내용을 펼치고 다시 무대를 접는 후지와라 신야의 기법이라고 봐야겠다.

 

독수리 군단에서 지적하는 종군기자에 관한 만행에 가까운 행태는 일반 세계인들에겐 낯선 감각이었다. 난민들을 먹이감 삼아 눌러대는 행위가 죽은 사람의 살을 뜯는 독수리처럼 보인다는 글에 동조하고자 한다.

 

연애소설의 조건에서 지은이의 여성에 관한 글이나 사진이 없는 이유를 밝히는 중 일본 극우파로 유명한 자로 할복한 미시마 유키오가 마르고 해골바가지 모습이었고 보디빌딩으로 육체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고양이 섬 탐방 1’에서 지구가 원래는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것, 들개나 길 고양이를 잡으려는 인간의 오만함을 질타하곤 인간이 멋대로 소유한 결과 지구 생태계 파괴와 다른 동식물까지 휘말려 들게 하는 현상을 탓한다.

 

자살 미수의 가을은 울컥하게 한다.

60대 회사원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 자살을 앞두고 모종의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고 눈물을 흘린다는 행위 자체에 그리움을 느낀다. 도대체 이렇게 운 것이 몇 년 만인가 자문해보기도 한다. 주변 인기척에 몸을 숨기게 되고 멀리 아래 세상에서 아이들 뛰어 노는 소리가 들리도록 한참을 추스리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고 야경을 바라보며 다시 눈물을 흘린다. 낮에는 느끼지 못했건만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뜨거웠다는 생각을 한다….나중에 자살 미수자의 생각은 또 있다. 죽은 아내가 땅 밑의 황천세계에서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리가 그때 인기척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영국의 어느 도시.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엔 노동자 계급이, 그로부터 10~15분 더 달려가는 곳엔 중급 주택가이고 다시 30분 정도 더 가야 하는 곳에 상류주택지, 주거지엔 번쩍이는 네온사인은 커녕 평범한 광고간판마저 없다는, 일본이나 한국에선 상상도 못하는 주거환경이 부럽다.

또 부동산을 판매할 때 토지가는 거의 변하지 않고 집 자체의 가격만이 부동산 가격의 기준이 된다는 언급에선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 광풍이 일상화된 한국은 지옥 아닐까.

 

후지와라 신야의 책은 현재 12권이 번역되어 있다. 어디 장거리 여행에 지참하고 마주하면 차창에 풍경이 스치듯 일상생활에서 무심히 바라본 현상이나 생각들을 무단 마주하여 내면을 두드리는 극적 효과를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긴다고 해서 통속적이란 색깔을 입힐 필요는 없다. 요즘 유행어로 옷을 입히자면 힐링이다. 생활전선에서 칼칼해진 마음을 보듬어 인간성을 드러내게 하는 힐링으로 이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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