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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책 -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 ㅣ 지식여행자 2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언숙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대단한 책』 요네하라 마리/ 이언숙 옮김/ 마음산책
660여 장이나 되는, 비교적 많은 분량이나 주어진 눈길은 여유를 가지며 순조롭게 산책한다.
절반 정도는 1부로 ‘독서일기’라 칭하며, 2부는 서평이다.
‘독서일기’는 그때마다 특정한 책을 거론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피력하는데 실제 내용면으로 봐서는 2부보다 1부가 알짜배기이다. 2부의 경우 소개되는 책 대부분쯤? 안타깝게도 국내에 번역되지 않아 공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책’을 소재로 한 내용의 단계를 뛰어넘어 현대 러시아의 제 방면을 터치하기도 하고 세계조류를 설파하기도 한다. 여태 듣지도 읽지도 못한 기발한 세상 이야기도 있다. 마리의 글을 여기서 일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내용들이 책장을 넘기는데 활력소가 된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여기 한국에 대한 몇 가지가 서술되기도 하는데 깜짝 놀랄 내용들이 나온다. 이런저런 점에서 저자의 해박한 식견에 감탄한다.
내가 기억하는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부터 여러 작품으로 국내에서 꽤 알려진 작가인데 등장하지 않음은 의외. 일본 자국에선 인기가 별로 이거나 작품성이 떨어 진다는 건지, 일본 판 보수 꼴통 이어선가? 또 ‘나쓰메 소세키’도 언급되지 않는 점도 의외이다.
그러나 이 책, 특히 1부를 읽으며 주워담는 상식 이상의 것은 대단히 쏠쏠하여 대단히 유익.
또한 그러나…책 제목은 맘에 차지 않는다.
여느 저자나 심혈을 기울여 각 장르의 작품을 탈고하게 되는, 즉 대단한 노력의 산물로서 피와 땀이 서린 작품이거늘 제목이 ‘대단한 책’이라…마치 작품에 낙서를 휘갈겨 쓴 형상처럼 여겨진다.
‘마리의 비망록’, ‘책을 거니는 산책’ ‘책의 숲어서’ 등 좀 다듬어진 제목을 달았다면 금상첨화?
-스탈린은 민족의 개념 규정에 언어를 결정적 기준으로 삼으며 이 언어에는 계급성이 없다고 보는데, 이는 객관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또 그는 “10월 혁명은 오랜 사슬을 끊고 잊혀졌던 많은 민족을 등장시켜 그들에게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발전을 안겨 주었다”고 했다.
-일본의 어느 역사교과서에 네루 자서전을 왜곡하여 러일전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런데 네루는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거둔 승리가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들을 기쁘게 했지만 그 직후 성과는 소수 침략적 제국주의 국가가 하나 더 늘어난 정도의 결과이고, 이 참담한 결과를 가장 먼저 맛보아야 했던 나라가 조선이었다고 했다.
-최근 100년 동안, 전 무슬림 세계는 서구 경제의 자원 공급지로서 서구 제국주의에 착취당해 왔다. 이는 종교로서의 이슬람의 정체성에 영향을 끼쳤다. 본래 십자군으로 시작된 무슬림 여러 국가에 대한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은 최근에 들어서서 경제적인 약탈의 성격이 커졌다.
-플라톤은 문자에 의존하게 된 인간은 스스로 생각해 내는 힘을 잃었다고 소크라테스에게 말한다. “사실 장대한 서사시를 기억하는 시인에게 문자지식을 전한 순간 모든 기억을 잃고 말았다는 예가 세계 각지에서 보고되고 있다.”
-(아프간) 자급자족의 평화스러운 생활을 파괴한 자(미국)에게 분노하고, ‘인도적 원조’라는 말이 파괴자의 입에서 나오는 오만과 허위를 규탄하는 말들이 피를 토하듯 격렬하게 쏟아진다.
…..(아프간) 2000만 명의 굶주린 국민 가운데 30%는 난민이 되었고 10%는 죽거나 살해되었으며 나머지 60%는 아사 직전이다. (바미안)석불은 그처럼 위엄을 갖추었으면서도 이 끝없는 비극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존재인지를 느끼고 수치스러워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부처의 청빈과 안녕 철학은 밥을 찾는 구민 앞에 너무나 부끄러워 용기를 내어 부서져 버렸다. 부처는 세계에 이 모든 빈곤, 무지, 억압, 대량 살상을 전하기 위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게으른 인류는 불상이 무너졌다는 것만 들으려 한다. 아무도 무너져 내린 불상이 가리키고 있는, 죽을 지경에 이른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보지 않았다.
-‘디나모’라는 명칭을 단 당시 러시아와 동구권 국가들의 축구팀에는 내무성과 비밀경찰 산하 클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소련의 간판작가 ‘고리키’. 10월 혁명 당시 볼세비키를 지지했지만 레닌과 대립하여 이탈리아로 이주. 1933년 귀국하여 스탈린 체제확립에 협력하는 어용작가로 변신. 사망 2년 전부터 저항.
-아마추어리즘에 대해 아름답고 순수하고 멋지다는 이미지를 대개 가지지만, 아마추어리즘은 당초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지가 신분의 상징으로 스포츠의 장에서 신체 활동의 프로인 육체노동자를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 낸 차별 사상일 뿐이다.
-세계 최대의 대량살상무기 보유국이자 개발국이며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무기 모두 최초로 인간에 사용한 것은 미국. 이 미국은 건국 당시 원주민 인디언을 대량 학살한 사실을 은폐 정당화함으로써 성립하는 국가이며, 이 부끄러운 과거의 죄상을 은폐 미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정대 정의의 체현자라는 환상아래 온 세계에서 끊임없이 정의라는 이름 아래 전쟁을 증명해 가야 하는 것이다. 또 유일신앙(일신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과 관련 지어 자신에게 정의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악마가 필요한 것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담배를 싫어했던 반면, 연합국 측의 처칠 스탈린 루스벨트가 대단한 애연가였다는 사실.
-한국과 관련된 내용.
1. ‘세계전쟁범죄사전’에 베트남 전쟁에 동원된 한국군에 의한 학살 사건을 언급한다.
2.’북한을 잇는 남자’에서 남로당원이었던 박정희가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지만 동료 50명 가까이를 당국에 팔아 넘겨 자신의 목숨을 건지고 그 후 13년 뒤에 쿠데타를 일으켜 한국 대통령이 된 일을 설명한다. 또한 김성주라는 소련 첩보부 출신이 항일의 영웅 김일성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묘사된다.
3.올드 보이의 ‘최민식’,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 거론된다.
外에 다방면에서 세상 돌아가는 현상과 담겨진 맥을 긁어서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해주는 ‘요네하라 마리’의 필담은 어지간한 이들에게 아는 기쁨을 충분히 안겨줄 것이다. 직접 읽어 보시라!
작가는 2006년 5월 18일자 <주간 분순>에 ‘내 몸으로 암 치료 책을 직접 검증하다’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기고를 마치자 마자 5월 25일 난소 암으로 별세했다. 독신으로 살다 간 그녀는 가족인 개와 고양이들을 두고 작별 인사는 제대로 했을지?
기회가 되면 ‘요네하라 마리’의 다른 작품들도 봐야겠다.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